정권차원 민심 왜곡… 무너진 청와대 도덕성

2009.02.13 18:09 입력 2009.02.14 01:45 수정
최재영기자

스스로 공권력의 정당성 훼손 시켜
“개인문제” 치부 사후조치·인식 안이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앞세워 ‘용산 참사’와 관련, ‘촛불집회’를 덮으려 했다는 청와대의 ‘홍보 지침’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가 나서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공권력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청와대가 이 같은 의혹이 공개되기 전 문제의 e메일을 보낸 이성호 청와대 행정관을 3차례 조사해 진상을 알고 있었음에도 부인과 변명, 거짓말로 일관하다 뒤늦게 ‘개인 서신’으로 한정짓고,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아 ‘은폐’와 ‘축소’에 급급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권차원 민심 왜곡… 무너진 청와대 도덕성

◇사건 폭로에서 확인까지 = 청와대의 홍보 지침은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지난 11일 용산 참사 관련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김 의원은 이날 “청와대가 경찰청에 문건을 보내 용산 사고와 관련한 여론몰이를 유도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면서 “문건에는 ‘용산 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답변에 나선 한승수 총리는 그 같은 내용을 부인하면서도 “청와대에서 무슨 메일이 갔는지 뭐가 갔는지는 모르지만 알아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13일 “내가 ‘문건’이라고 말한 것을 총리가 ‘메일’로 바꿔 말하는 것을 보면서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4일 해당 e메일을 확보했다. “대단히 신뢰할 만한” 익명의 제보자가 ‘지난 3일 청와대가 경찰청에 내린 지시’라면서 ‘발신: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이성호 행정관, 수신:경찰청 홍보담당관’으로 된 e메일을 타이핑해 팩스로 의원실에 보낸 것이다. 김 의원 측은 팩스가 원본이나 사본이 아닌 타이핑이 돼 있었고, 경찰이 부인하자 ‘만약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결국 청와대가 13일 시인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됐다.

정권차원 민심 왜곡… 무너진 청와대 도덕성

◇무너진 청와대 도덕성 = 청와대는 13일 이성호 행정관이 e메일을 보냈음을 인정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이 행정관에게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라”는 식의 ‘구두 경고’ 조치를 내린 데서 잘 나타났다. 하지만 그의 직급이 ‘행정관’이고, 청와대 발표대로 설사 개인적 차원이라 하더라도 ‘청와대’의 e메일을 받는 정부기관이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후 조치나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화면 오른쪽)이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를 상대로 용산참사에 대해 질의하는 모습이 본회의장 모니터에 나타나고 있다.|박민규기자

민주당 이석현 의원(화면 오른쪽)이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를 상대로 용산참사에 대해 질의하는 모습이 본회의장 모니터에 나타나고 있다.|박민규기자

더욱 심각한 문제는 e메일이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삿거리를 제공해 (용산 참사와 관련한)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달라’는 식으로 용산 참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는 점이다. 특히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구속, 경찰의 용산 참사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 동원 의혹,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에 대한 청와대의 ‘비판 글 자제’ 경고 등과 맞물려 정권 차원에서 민심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고 여론을 호도하려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해당 행정관이 순수한 충정심에서 그랬든, 오버를 해서 그랬든 e메일 내용이 공적이고, 여론을 환기시켜 국민의 관심을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으로 끌고가려 했다는 점에서 여론조작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가 ‘사신’ 운운하며 개인적 사안으로 치부하고 있는데, 그런 식이라면 공무원의 부패·독직 사건도 다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청와대는 책임을 행정관에게만 떠넘기려 할 게 아니라 정확한 진상 규명과 함께 상급자도 문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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