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시인에게]나희덕과‘어두워진다는 것’

2001.05.20 19:42

(새벽에 잠시 목이 말라서 일어났을 때에 나희덕 시인의 ‘첫 나뭇가지’란 시를 읽었었다. 물먹고 오줌을 누고 방문을 따고, 시집을 덮었더니 이른 아침이었다)

‘죽은 나뭇가지를 꺾어/산 나뭇가지 사이에 내려놓을 때/그것은 어떤 시작의 순간인가’

산길의 초입에서 서성이는, 굵은 나무들의 몸가짐을 보고 하늘 한 자락을 꺼내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오월, 오월은 그 날처럼 푸르구나, 나그네는 옷깃을 스쳤던 잎새와의 인연도 잊고 타는 목마름으로 가슴을 친 나무의 검은 밑둥치를 살피게 되었다. 너희들, 흉내내어 자랄 수 없는 상처의 삶이 도처에 있구나, 스러진 고목의 산길을 오르는데 불현듯 잠꾸러기인 내가 이 길을 스스로 걸어온 게 아니로구나, 게송을 하나 외우고 싶었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오래 전에 불렀던 그 민주주의의 함성은 지금 어디 있을까, 봉우리를 세어보니, 퍽, 그 생각이 뇌리에 스쳤고 이제 메아리조차 조심스러운, 절간의 배후가 그저 쓸쓸해 이만 내려갈까 생각했었다. 잠시 후, 귀를 열어놓는 새의 울음과 어여쁜 들꽃을 바라보는 일도 만만찮아서 다시 걷게 되었다. 걷다, 뒤돌아서서 왔던 길을 찬찬히 읽었고 일찍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영혼들의 옷을 오늘 같은 날은 저 푸름으로 대신하고 싶은 충동에 이르렀다.

‘누구도 꽃을 잃고 완고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6층에 와서 벽오동의 上部를 보며 배운다’

나그네의 한 손엔 내내 나희덕 시인의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이 쥐어져 있었다. 나그네의 배낭과 더불어 분명히 무거운 시집이었다. 그 시집을 데리고 절간의 불이문을 덜컥 들어왔으니 이제 그것의 존재가 점심 공양보다 더욱 소중해졌다. 왜 그랬을까, 시집은 마음의 속을 파내어 완성한 바루와 같은 존재로 마음에 닿았다. 그 바루에 나그네의 상처를 모으고 마음을 씻으니 오랜만에 붕대를 풀어내는 기분이었다. 붉은 오월 그 아픔의 붕대를 풀다가, 나그네는 초파일이 지나서 이제야 등(燈) 떼어내는 일에 열중인 보살들의 작업을 지켜보게 되었다. 불당 앞은 이른 새벽까지 아주 밝았으리라, 그 등의 얇은 가슴이 뜯겨져서 결국은 철사와 몽땅 초 한 자루를 남기는 걸 보니 참으로 묘묘했다.

나그네는 숲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파지의 연잎을 먼저 보게 된 것이리라. 나그네는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고 시인의 시집을 벌려 햇빛을 좀 떠 넣어주고서 하산하자, 하고 걸음을 바꾸었다… 그때, 속계의 비명을 가지고 온 한 쌍의 연인이 불쑥 나그네 앞에 나타나서 사진기를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서너 걸음을 극락전 쪽으로 양보하게 되었으므로 나그네는 정성을 다해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어두워진다는 것’은 시인에게, 상처의 동심원을 매일매일 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찰칵, 어느덧 오월의 끝자락이 내려오는 것 같다.

(시인의 동심원을 맨 처음 본 것은 ‘뿌리에게’란 시집이었다. 그 뿌리가 내 시의 어두운 폐가를 잡아준 적이 있었다)

〈이기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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