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1만명 모인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국민의견'…“n번방 반복되지 않도록 제대로 처벌해야”

2020.03.25 08:25 입력 2020.03.25 10:24 수정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국민의견’을 모집하는 공동 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화난사람들 사이트 갈무리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국민의견’을 모집하는 공동 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화난사람들 사이트 갈무리

공동 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이 지난 1월30일부터 모집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국민의견’(국민의견)에 25일까지 1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불법촬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박사’ 조주빈씨(25)가 검거되며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도 큰 관심을 끌었다.

조씨가 검거된 후 일주일만에 1만여명이 추가로 ‘국민의견’에 동참했다. 지난 18일 조씨 검거 직전에는 1000명 정도 참여한 상태였다. 시민들은 범죄자들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선 안 된다고 요구했다. 과거 디지털 성범죄로 각각 징역 4년, 1년을 선고받은 소라넷, 다크웹 운영자를 예로 들었다. 한 시민은 ‘국민의견’을 제출하며 “소라넷, 웹하드, 카톡방, 텔레그램…. 플랫폼은 변해도 범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죄를 죄답게 처벌해주세요. 계속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라는 인식조차 사라져갔을 겁니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국민의견’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양형기준은 법원에서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하는 기준이지만,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양형기준이 없었다. 가중·감경사유가 재판부 재량에 맡겨져왔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6월 양형기준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최초롱 화난사람들 대표와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국민의견’을 통해 시민들에게 디지털 성범죄 가중요소와 감경요소를 물었다. 김 변호사는 성폭력위기센터 이사이자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 회원이다. 이들은 31일까지 ‘국민의견’을 모집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한다.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최초롱 대표(이하 최)와 김영미 변호사(이하 김)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초롱 화난사람들 대표(좌)와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우)가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법무법인 숭인 소통팀 제공

최초롱 화난사람들 대표(좌)와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우)가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법무법인 숭인 소통팀 제공

-‘디지털 성범죄 처벌 국민의견’을 모집한 계기는

최=과거 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디지털 성범죄는 양형기준이 없다 보니까 재판부마다 통일성 없이 형이 선고되곤 했습니다. 형사사건은 양형기준에 따라 형을 선고하는데, 디지털 성범죄도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대법원이 올해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정한다는 보도를 보고 김영미 변호사님을 찾았어요. 단체나 기관이 아닌 생생한 여론을 전달해야겠다 싶었죠.

김=디지털 성범죄가 2014년쯤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단순 촬영이 다수지만, 피해 정도가 심각한 불법촬영물을 촬영·유포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때 피해자의 피해 정도는 정말 심각한데 실질적으로 선고되는 형 자체는 적은 거에요. 디지털 성범죄는 직접적인 신체적 성폭력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는 인식이 있는거죠. 대법원이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만든다고 하면서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어요. 이번 기회에 피해 당사자나 일반 시민들의 생각을 전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필요한 이유는

김=엄벌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판사마다 양형을 들쑥날쑥하게 처리하는 문제가 있어요. 어느 정도까지 감경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천차만별인거죠. 그런 측면에서 양형기준이 꼭 필요해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양형 자체도 낮아요.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에서 최고형이 촬영과 유포는 징역 5년, 영리목적 유포는 7년이지만 70~80%가 벌금형이에요.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2017년에 2011년~2016년 약 5년치 카메라 등 이용촬영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했을 때 단순 촬영의 경우 대부분이 벌금형이고, 징역형 나오는 경우는 매우 적었습니다. 이후 징역형이 조금 늘긴 했지만, 특히 ‘유포’는 피해 정도의 심각성에 비해 처벌이 낮아 현실의 인식과 괴리가 있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2017년 분석한 2011년부터 2016년 4월까지 판결 중 촬영물이 유포된 64건에서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은 17건이었다. 6건은 선고유예, 20건은 벌금형, 21건은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유포행위에 징역형이 선고된 17건 중 가장 낮은 형은 4월, 가장 높은 형이 3년이었다. 2017년에 선고된 분석 대상 판결에선 징역형 및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다소 증가했으나, 불법촬영물이 유포된 34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은 8건에 그쳤다.

최=기존 범죄와 비교해서 형을 선고하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는 강간이나 강제추행보다는 가벼운 범죄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떻게 불법촬영 범죄를 강제추행보다 더 높게, 혹은 유사하게 처벌하나’는 인식으로 형이 낮아지는 거죠.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법원도 인식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가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가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박사’ 조주빈씨 등 텔레그램 성착취 불법촬영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이들은 어떤 혐의로 처벌할 수 있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나.

김=조씨는 우선 강제추행죄 간접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본인이 직접 촬영·제작한 건 아니지만, 피해자를 협박해 영상을 찍도록 요구한 유사 범죄에 대해 대법원에서 2018년 강제추행죄 간접정범으로 인정한 판례가 있어요. 성착취 불법촬영물 촬영·유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들은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봐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경우 범죄 유형이 다양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행위마다 별도로 판단해야 해요. 현재 피의자 처벌 정도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오는 건 양형기준 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법 조항 자체가 적다보니 적용할 때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거죠.

최=수사기관은 일단 최대한 혐의를 적용해서 공범들을 처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잖아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해석을 거치며 새로운 판례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의견’ 일부를 소개한다면

김=주로 가중요소에 대해 의견이 많이 들어왔어요. 촬영·유포 횟수가 많거나,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를 촬영한 경우, 강간·협박이 동반된 경우, 미성년자를 촬영한 경우 가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어요. 계획적으로 범죄가 이뤄진 경우 가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피해 경험이 있는 분들도 의견을 주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편이에요. 인터넷에 유포했는지, 촬영물로 협박해 또 다른 불법촬영물을 받았는지 등도 따져봐야 한다는 식입니다.

최=감경요소는 ‘없다’는 답이 많았지만,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피해자에게 진지한 사과를 하고, 영상 삭제를 위해 노력했는지 등에 대해서요. 피해 당사자가 ‘기타’ 의견란에 피해 사례를 적기도 해요. 학교나 회사에서 불법촬영을 당해서 신고를 했는데 흐지부지 넘어갔다 이런 경험담도 꽤 올라왔어요.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은 대부분 범죄에서 감경요소로 적용할텐데,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특수성이 고려돼야 하나

최=우선 디지털 성범죄에서도 양형기준으로 고려해야 하긴 합니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선 중요한 양형기준이 됩니다. 피해 회복을 원하는 피해자가 있기 때문인데요. 민사 소송을 통해 피해를 입은 만큼 배상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고, 형사 사건에서 금전적으로 피해를 어느 정도 보상받는다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김=양형기준으로 고려돼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피해자와의 합의를 감경사유로 반영해 형을 대폭 낮추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디지털 성범죄는 강간 등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불법촬영물이 한 번 유포되면 피해 당사자와의 합의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영상이 유포될 수 있으니까요.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피해가 계속됩니다. 합의 사실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형을 감경하는 일은 경계해야 합니다.

최초롱 화난사람들 대표(좌)와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우)가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법무법인 숭인 소통팀 제공

최초롱 화난사람들 대표(좌)와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우)가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법무법인 숭인 소통팀 제공

-양형기준 설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을 꼽는다면

김=‘국민의견’과 마찬가지로 촬영·유포 횟수가 많은 경우 가중요소가 돼야한다고 봐요. 피해 대상이 아동·청소년인 경우도 가중해야 합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협박을 통해 피해자에게 촬영물을 요구하거나 강요한 행위 역시 가중요소로 적용돼야 한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유포’에 대해선 엄벌이 필요해요. 유포의 경우 피해자는 주변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불법촬영물을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불법촬영물이 유포됐을 때 영상이 영원히 삭제되지 않는 한 피해자는 늘 불안에 떨며 피해가 지속되는 겁니다. 직접적인 신체적 위해가 되는 강간과 피해 정도가 거의 같다고 봅니다.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국민의견’을 냈다. 앞으로의 계획은

김=1만5000명이나 참여할 줄은 몰랐어요. 양형기준안이 결정되기 전에 모집한 ‘국민의견’을 분석한 뒤 결과물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단순한 의견으로 보는 대신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반영해주길 바랍니다.

최=저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참여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텔레그램 n번방이 이슈가 되고 사람들이 분노하다 보니 많이 참여한 듯 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개인의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려는 것 같기도 해요. 법원에 있을 때 ‘국민의 법감정’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번 기회에 현실적인 법감정이 어떤지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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