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신화 비판’ 녹색사상가, 자연으로 돌아가다

2020.06.25 21:55 입력 2020.06.25 23:27 수정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별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녹색적 삶’의 가치를 선구적으로 전파하고 한국 사회 담론의 지평을 확장했다. 그는 생태운동과 더불어 평화운동에도 앞장선 이론 겸비의 실천가였다. 사진은 2018년 10월 주간경향과 인터뷰하는 모습.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녹색적 삶’의 가치를 선구적으로 전파하고 한국 사회 담론의 지평을 확장했다. 그는 생태운동과 더불어 평화운동에도 앞장선 이론 겸비의 실천가였다. 사진은 2018년 10월 주간경향과 인터뷰하는 모습.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생태·평화운동 앞장선 실천가로
기존 문명과 제도 꾸준히 비판
기본소득·숙의민주주의 제안도

한국 사회의 성장제일주의와 반생태적 가치관에 대해 급진적 비판과 대안을 내놓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김 발행인의 유족은 이날 새벽 고인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녹색적 삶’의 가치를 선구적으로 전파한 김 발행인은 한국 사회 담론의 지평을 확장하고, 생태운동과 더불어 평화운동에도 앞장선 이론 겸비의 실천가였다. 고인은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6·25 전란을 겪었다. 전쟁 이후 마산에서 중·고교를 나왔다.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주로 시에 대한 역사주의적 해석과 비평에 힘썼다. 2004년 교직을 그만두고 녹색평론 편집·발간에 전념했으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녹색당 활동에도 참여했다.

김 발행인은 ‘근본적 생태주의자’이자 생태 문제를 문명사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녹색사상가’였다. 그가 1991년 11월 창간한 격월간 ‘녹색평론’은 무한 성장 신화에 빠져 있던 한국 사회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그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창간사에서 “오늘날 생태학적 재난은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문명의 위기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주장했다. 최신호인 2020년 5·6월호(172호)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30년 가까이 지속해왔다.

고인은 ‘녹색평론’을 창간하는 데 동독 출신 녹색사상가 루돌프 바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2016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밝혔다. 1983년 미국 뉴욕에서 바로의 “핵무기에 반대하려면 먼저 뉴욕시를 질주하는 자동차 문명에 반대해야 한다”는 말에서 충격을 받은 뒤 기존 문명과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그의 주장을 두고 급진적 혹은 근본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기후위기와 그 위기에서 파생된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오늘날 더욱 울림이 있는 외침이었다.

그는 지난해 펴낸 책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 비판의식의 고갱이를 고스란히 담았다. “선진화를 향한 사회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은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다. 출생, 양육, 교육, 취직, 주택, 의료, 노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 모든 국면에서 우리의 삶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끊임없이 유린되거나 뒤틀리고 있다.”

이러한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창하고 소농체제로의 전환에서 지구와 인류 생존의 희망을 찾았다. 지금처럼 경제성장에 매달려서는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인간 파괴를 막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으로 생계를 보장해 경쟁의 절박함이 줄어들면, 사람들이 성장과 공동체에 대한 성찰을 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또한 지구의 유한한 자원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농촌 중심으로 재생가능한 에너지와 생산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정치제도에 있어서도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오늘날 기존 대의민주주의 대신 시민의회가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숙의민주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고인은 경향신문에 ‘나무 아래서 나누는 한담’이라는 의미의 칼럼 ‘김종철의 수하한화(樹下閑話)’를 7년간 연재했다. 저서에는 <시와 역사적 상상력>(1978),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 <간디의 물레>(1999).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2008), <땅의 옹호>(2008). <발언 I, Ⅱ>(2016), <大地의 상상력>(2019) 등이 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2002),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2007)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고인은 생전 마지막이 된 지난 4월17일자 한겨레신문 칼럼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에서 오늘날 사회에 대한 진단을 남겼다.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모두의 정신적·육체적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향이라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의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도 마스크도 손씻기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씨(전 인제대 교수)와 아들 형수씨(대학강사), 딸 정현씨(녹색평론 편집장)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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