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플라스틱, 어디서 왔나 봤더니

2021.01.31 07:50
이하늬 기자

‘플라스틱 신상조사’ 직접 해보니… 생수병에 플라스틱 종류가 3가지

각종 플라스틱 용기들. / 조해람 기자

각종 플라스틱 용기들. / 조해람 기자

미세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아크릴 수세미 대신 천연 수세미를 사용한 지 오래다. 고체비누 형태의 샴푸를 사용하고 자연분해되는 대나무 칫솔을 사용한다. 이만하면 성실한 시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분리배출하는 날이면 플라스틱이 한가득이다. 음료나 음식이 담겼던 플라스틱은 씻어서 말린다. 페트병 뚜껑이나 일회용 수저 같은 소형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되지 않기에, ‘플라스틱 방앗간’에 보내기 위해 따로 모은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소형 플라스틱을 세척·분쇄해 치약짜개를 만드는 곳이다.

지난해 10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진행하는 ‘플라스틱 신상조사’에 참가했다. 우리 집에서 배출하는 플라스틱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참가자격은 ‘플라스틱 사용량이 대한민국 평균치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 최대한 줄이기)를 ‘지향’한다고 생각해 잠시 망설이다 신청했다.

망설임이 착각에서 비롯됐음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캠페인에 앞서 교육이 시작됐다. 플라스틱의 종류와 분류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그린피스 캠페이너가 낯선 용어들을 쏟아냈다.

“흔히 생각하는 플라스틱류랑 비닐류, 이렇게 나눌게요. 플라스틱 PET(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PS(폴리스티렌), OTHER로 분류해주세요. 비닐도 PET, PP, HDPE, LDPE, OTHER로 분류해주세요. 예를 들어 생수병을 볼게요. 몸통은 플라스틱 PET고, 뚜껑은 HDPE, 라벨 비닐은 PP나 PS입니다.”

플라스틱과 비닐의 생소한 분류
PET는 생수병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이다. 고밀도인 HDPE는 페트보다는 딱딱한 플라스틱 용기를 생각하면 쉽다. 샴푸나 세제 용기 등이다. 열에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저밀도인 LDPE는 말랑한 플라스틱이다. 약간 고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PS는 얇은 플라스틱으로, 일회용컵 뚜껑이나 바나나맛 우유 용기가 PS다.

비닐도 보자. PET는 두꺼운 비닐이다. 안쪽에 뽁뽁이가 붙어 있어 ‘안전봉투’로 불리는 비닐이 PET에 속한다. PP는 생수병 라벨 정도의 두께와 느낌이다. LDPE는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비닐이다. ‘비닐봉지’로 통칭되는 비닐과 지퍼백 등이다. HDPE는 좀 더 두꺼운 비닐이다. 택배용으로 사용되는 진회색 봉투를 생각하면 쉽다.

OTHER은 2개 이상의 재질이 합쳐졌거나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플라스틱류, 비닐류를 포함한다. 이들은 재활용이 안 된다. 즉석밥 용기가 대표적이다. 이 정도 설명을 듣자 ‘멘붕’이 왔다. 플라스틱의 세계가 이렇게 넓고도 촘촘했다니. 이 분류법에 따르면 생수병 하나에 나오는 플라스틱은 하나가 아니라 3개다.

참가 첫날, 점심을 먹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었다. ‘유기농 곤드레나물밥’이 한가득 보였다. 커다란 비닐 포장 안에 냉동밥 2개, 양념간장 2개가 각각 포장돼 있다. 후식으로 얼린 홍시를 2개 먹었다. 뚜껑은 비닐류 PP, 용기는 플라스틱 PET다. 점심 한끼에만 플라스틱 9개를 배출했다.

오후가 되니 입이 심심해 롯데제과 ‘카스타드’를 2개 꺼냈다. 동서식품 ‘카누’를 곁들였다. 모두 비닐류 OTHER이다. 저녁에는 컵라면을 먹었다. 뚜껑과 수프 2개는 모두 비닐류 OTHER이다. 종이처럼 보였던 컵라면 용기도 플라스틱류 PP다. 이날 20개가 넘는 플라스틱을 배출했다. 이후 일주일도 비슷했다.

택배가 오는 날에는 배출하는 플라스틱 양이 확 늘었다. 아이스팩이 딸려오는 냉동식품과 낱개 포장된 과자 등은 물론이고 ‘친환경’을 앞세운 생활협동조합도 플라스틱 사용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협에서 주문한 자연방사 동물복지 계란은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비닐봉지에 싸여 배달됐다.

생산자가 직접 보내주는 과일이나 식재료 역시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뽁뽁이에 싸여 있었다. 게다가 이런 플라스틱에는 종류가 기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설문지에 ‘모르겠다’고 표시해야 했다. 일부 대기업은 재활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라벨, 스티커 등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놨지만, 작은 업체에서 구매한 제품은 그런 것도 없었다.

우리 집 플라스틱, 어디서 왔나 봤더니

플라스틱 쓰레기의 80%가 식품 관련
동물과 자연에 끼치는 해를 줄이고 같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생산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길 바라서 한 소비였는데, 널브러진 플라스틱 포장재를 보고 있으니 씁쓸해졌다. 생협과 생산자에 비닐포장을 대체할 수 방법이 없는지 물었지만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재생종이로 만든 완충재는 비닐 뽁뽁이 2배 가까운 가격일 뿐더러 물에 젖으면 기능이 떨어져 식품 포장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식품 관련 플라스틱은 피하기 어렵다.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1월 15일 발표된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260가구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1만6626개이고, 이중 식품 포장재가 1만1888개로 가장 많았다. 가정 내 플라스틱 쓰레기 중 7개(71.5%)가 식품 포장과 관련된 것이다. 배달용기 플라스틱 7.5%까지 포함하면 식품 관련 플라스틱은 79%에 이른다.

플라스틱 배출량이 많은 식음료 제조사 순위는 동원F&B, 농심, 롯데칠성음료, CJ제일제당, 오뚜기, 롯데제과, 풀무원, 동서식품, 오리온, 남양유업으로 나타났다. 제조사와 플라스틱 종류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7.5%, 4.1%로 나타났다.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에 가장 책임이 큰 제조사로는 CJ제일제당,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농심 순으로 꼽혔다.

플라스틱 배출량 조사에 이어 추가 설문조사가 이어졌다. 플라스틱 배출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한 기업을 꼽으라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2.2%(140명)가 기자와 똑같이 답했다.

결국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모든 식품이 플라스틱에 담겨 유통되는 세상에서 개인이 플라스틱을 줄이려는 노력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대기업의 포장 방식이 바뀌면 포장용기 제조 업계가 바뀐다. 다양한 포장용기, 방식이 나오면 생협이나 소규모 생산자의 선택지도 늘어난다. 대기업은 이를 가능하게 할 인력과 자금을 갖추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보여달라는 얘기다.

실제 풀무원은 사탕수수 추출물로 만든 바이오 페트 용기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해부터 라벨 없는 생수 ‘오아시스 에코’를 판매 중이다. 오리온은 2014년부터 과자 포장 크기를 줄여왔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포장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다가오는 설 선물세트에서도 170t 이상의 플라스틱을 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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