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이 '10년 후' 달력을 선물하는 이유

2021.04.11 15:32 입력 2021.04.11 22:08 수정

이광형 카이스트 신임총장이 지난 9일 서울 도곡동 캠퍼스 1층 미팅룸에서 미국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의 ‘꽃’을 배경으로 앉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평소 책·음악·미술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다양화하려 노력해온 그가 직접 고른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카이스트 대전 본원에는 400평 규모의 미술관을 건립 중이다. / 이준헌 기자

이광형 카이스트 신임총장이 지난 9일 서울 도곡동 캠퍼스 1층 미팅룸에서 미국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의 ‘꽃’을 배경으로 앉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평소 책·음악·미술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다양화하려 노력해온 그가 직접 고른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카이스트 대전 본원에는 400평 규모의 미술관을 건립 중이다. / 이준헌 기자

“선물이 있어요.” 지난 9일 카이스트 서울 도곡동 캠퍼스에서 만난 이광형 카이스트 신임총장(67)이 건넨 것은 2031년 달력이었다. 미래 시점에서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훈련을 하라는 의미에서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이 총장은 “모든 보직 교수들께도 이 달력을 드렸다”면서 “항상 결제할 때 이 달력을 한 번 보고 내가 지금 사인하는 것이 10년 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생각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미래학자 이 총장다운 발상이다.

개교 50주년인 올해 3월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TV를 거꾸로 놓고 보는 괴짜 교수’ ‘카이스트 벤처 창업의 대부’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99년 방영된 SBS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괴짜교수 박기훈(안정훈 분)의 실제모델이기도 하다.

이 총장의 개혁은 예고돼 있다. 그는 “카이스트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너무 성적에 매몰돼 세상을 모른다”며 “전공공부할 시간을 10% 줄이고 적어도 한 학기는 아르바이트나 인턴실습, 혹은 독서를 통해 넓은 세상을 체험하고 인성과 리더십을 키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총장상으로 성적 우수상 외에 독서왕, 봉사왕, 도전왕, 질문왕을 선발하고, 한 학기당 일주일 정도는 교수들이 독서, 토론 등 다른 활동을 진행하도록 하겠다는 것도 그 일환이다. 질문왕 선발 이유는 “질문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게 그의 오랜 소신이기 때문이다. 과거 그는 학생들의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 질문자에겐 출석점수를 보너스로 주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의 창업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1990년대부터 그의 연구실은 벤처 창업의 요람이었다. 그의 연구실에서 오늘날 한국부호 2위에 오른 김정주 NXC 대표를 비롯해 김영달(아이디스), 김준환(올라웍스), 신승우(네오위즈) 등 한국의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이 배출됐다. 이들을 길러낸 비결로 그는 ‘자유방임’을 꼽았다. “꿈을 찾은 학생은 그 꿈이 가슴 속 불덩이가 돼 스스로 필요한 것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의와 도전정신이 강한 학생들이 모인 카이스트는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토대로 세상에 없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듦으로써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에 필요한 자본은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에 그의 답은 간명했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돈(투자금)은 따라오게 돼 있다”고 했다. 그는 “나도 교수시절 보너스가 나오면 격려 차원에서 제자들의 아이디어에 400만~500만원씩 투자했다. 잃은 것도 많지만 큰돈이 되어 돌아온 아이템도 많다”고 말했다. 또 실패는 성공의 디딤돌이기에 “전세계 실패사례를 연구하는 실패연구소도 설립할 것”이라고 했다.

의사과학자를 양산하는 의학전문대학원 설립도 추진 중이다. 연구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정국에서 우리나라는 백신을 못 만들고 있는데 원인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안해서”라며 “한국의 의사들은 임상만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졸업생 중 고작 1~2명만 연구직으로 가기에 연구직 선택에 용기가 필요해요. 하지만 인간의 영원한 욕망인 불로장생의 길 위에 돈과 국력, 명예가 있습니다. 카이스트는 연구하는 대학인 만큼 연구 의사를 배출하는 데 최적이죠.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을 통해 1년에 이런 인력이 수백명씩 배출되면 20년 후엔 몇십만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겁니다. 20~30년 전 우수 인력이 전자공학을 공부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각각 산업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후 프랑스 리옹제1대학교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 총장은 1985년 카이스트에 부임했다. 이후 주변의 반대에도 학문 간 융합을 이룬 바이오및뇌공학과를 비롯해 지식재산대학원, 과학저널리즘대학원, 미래전략대학원을 잇따라 설립하는 도전을 거듭해왔다. 그는 자신이 섬길 사람이 누군지 알기 위해 총장실에 조직도를 거꾸로 붙여놓았다. 또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매일 퇴근하면 사택 거실에 거꾸로 매달린 TV로 또 다른 세상을 본다. 혁신가이자 퓨처리스트인 이 총장의 임기 4년의 실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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