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효과 없었다…가장 절실한 사람은 못받는 국민지원금

2021.09.05 15:00 입력 2021.09.05 16:52 수정

서울역 광장 임시선별진료소 앞에서 한 노숙인이 난간에 기대어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역 광장 임시선별진료소 앞에서 한 노숙인이 난간에 기대어 있다. 김창길 기자

이석명씨(50·가명)는 서울역과 용산역을 오가며 노숙생활을 한다. 이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전라남도 신안군.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온 이씨는 전입신고 없이 생활하다 거리로 나왔다.

이씨에게 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 수급 문턱은 높다. 본인 명의 신용카드, 휴대폰이 없는 이씨가 지원금을 받으려면 신안군 내 주민센터로 가야 한다. 지원금 지급 규정상 방문 신청은 주민등록상 주소지 관할 읍·면·동 주민센터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안군까지 갈 교통비 마련이 요원한 이씨는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에도 이씨는 용산구 갈월동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신안군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고 지원을 포기했다. 그나마 이씨는 안내라도 받았다. 신청 방법조차 모르는 노숙인이 부지기수다.

코로나19 상생지원금은 국민 88%에게 지급된다. 그러나 정작 긴급 지원이 필요한 노숙인들은 상생지원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해 지급된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과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해 5월 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지원단체가 서울 주요 거리 노숙지역 노숙인 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씨처럼 서울 외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노숙인은 약 40%에 달한다. 재난지원금을 받았다고 응답한 노숙인은 전체의 11.8%에 불과했다.

노숙인 지원단체는 지난해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노숙인들의 실거주지 중심으로 지원금을 신청받고 지급받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5일 “노숙인 지원금 지급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 거주지, 실 생활권 신청 가능 여부”라며 “수차례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가장 도움이 절실한 취약 계층을 가장 먼저 배제시켰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노숙인 시설에 거주하는 ‘시설 노숙인’의 경우 담당 공무원이 시설을 방문해 신청 절차를 밟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실 거주지에 서류상 등록할 ‘집’이 없는 거리 노숙인은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직접 가서 신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인은 이번에도 아예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일정 거주지가 있으면 주소 변경을 하면 되겠지만 그게 어려운 경우에는 주민등록상 지역 주민센터로 가서 신청해야 한다”며 “노숙인 지원 사각지대는 현재로선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불거진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국민지원금의 경우 성인은 개별적으로 신청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 자녀에 대한 지원금은 여전히 세대주에게 일괄 지급된다. 양육을 하지 않는 세대주가 임의로 자녀 몫을 받아갈 수 있는 구조다. 위탁 아동의 경우에도 양육하는 보호자 대신 세대주가 아동 몫의 지원금을 받는다.

정부 코로나19 상생국민지원금 상담센터 등에는 미성년자 지원금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지원금 상담센터 관계자는 “미성년자 지원금은 세대주 수령이 원칙이라고 안내하고 있다”며 “세대주가 가로챈다고 해도 방지할 방법이 없고 사후 환수 조치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행안부는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는 세대주가 자녀 지원금을 편취한 경우 이의 신청 절차를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며 “내부 지침은 있는데 아직 현장에는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된 사례들을 일선 상담센터에 주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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