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금기·여성 목사 불허…낡은 교리에 반기 든 교인들

2021.09.05 21:10 입력 2021.09.05 21:17 수정

일산 은혜교회 목사들에
일방적 사임 권고 나오자
투표로 교단 탈퇴 결정

“수천년 전 만들어진 성경
시대착오적 해석 멈추길”

이광하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는 최근 마음이 번잡했다. 지난해 1월 교회 담임목사가 된 그는 청빙(개별 교회가 목사를 구하는 행위) 1년 만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경기북노회가 지난 4월 교회 협동목사인 김근주·한선영 목사에 대해 올해 말까지 사임하라는 권고를 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5일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교인들이 교단의 논리에 수긍하기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교단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경 해석을 했다며 김 목사가 목사 사역을 유지할 수 없다고 봤다. 한 여성 목사에 대해선 ‘여성 목사 안수는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단 정책을 근거로 사임을 권고했다. 이 목사와 교회는 교단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대신 지난달 29일 교단에서 탈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목사는 “교단법을 근거로 목사를 쫓아내라는 주장이 일단 일방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교회 입장에서 목사들은 가족 같은 공동체의 일원인데, 사임 권고에 앞서 교단은 교인들의 합의를 구하지 않았다. 여성을 배제하는 규정이나 동성애 옹호에 죄를 묻는 교단의 입장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가 동성애를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교단 차원에서 동성애 반대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만, 결과를 내기 전에 교회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신중한 대화와 숙의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논의를 해보지도 않고 성경 해석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러나라는 건 폭력입니다.”

교단 권고 이후 일산은혜교회는 장로와 집사, 청년으로 구성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교단의 사임 권고에 대한 교인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 목사보다 교인들이 논의에 앞장섰다. 공청회에서 교단 관계자로부터 사임 권고 이유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이후 두 목사 해임에 대한 성도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을 했다. 노회 조치에 반대하는 응답자가 84%에 달했다. 교단 탈퇴도 투표로 결정했다. 교단 탈퇴에 찬성한 투표자가 519명 중 453명(87.28%)이었다.

김 목사는 이번 사태가 특정 교단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반의 문제라고 했다. “지금 교회는 수천년 전 만들어진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시대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과거의 규정으로 오늘날 엄연히 존재하는 동성애를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는 교회의 동성애 반대가 일관성이 없다고도 했다. 돌로 사람을 쳐죽이라는 문구를 현실에서 적용하는 사람은 없는데, 동성애에 대해서는 유독 ‘문자 그대로’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한국 교회가 동성애·여성 목사 사역 등 그간 금기로 여겨졌던 논의에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본다. “교회 신자 중에도 동성애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목사 사역을 원하는 여성도 많습니다. 교회가 당사자와 충분히 대화하고 연구를 진행했다면 어땠을까요.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될지언정 감히 교회 안에서 혐오발언이나 쫓아내자는 논의는 할 수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언론에 교단 탈퇴 공고가 난 지난달 31일, 이 목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렇게 적었다. “그동안 걸어왔던 방향을 지키기 위해서 길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 함께 평화’로 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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