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단 시위, 언론 조작으로 통제… 크림반도는 치밀한 시나리오 따라 합병”

2014.03.28 20:27

우크라이나인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교수가 본 ‘크림 사태’

크림반도 합병 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대규모 군병력을 집결시켜 긴장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의 대치선에 놓인 우크라이나의 현재를 지난 19일 경향신문을 찾은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사진)에게서 들어보았다. 쉐겔 교수는 지난 2월 초부터 한 달간 우크라이나 키예프 독립광장 인근에 있는 고향집에 머물면서 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거까지 숨가빴던 사건의 흐름을 직접 느꼈다. 그는 “지난달 19일과 20일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을 때 집 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봤다”며 말을 뗐다.

“마이단 시위, 언론 조작으로 통제… 크림반도는 치밀한 시나리오 따라 합병”

그는 크림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마이단 혁명과 크림반도 무력 점거 전까지의 러시아 행동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쉐겔 교수는 러시아가 마이단 진압과 동부 우크라이나 분리, 크림 합병으로 이어지는 3단계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2월19~20일 시위대를 저격한 배후에 러시아가 있었다”며 “대규모 희생에도 시위대가 결국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을 몰아내자 계획을 바꿔 동부에서 분리주의 운동을 부추겨 이 지역을 독립시키거나 자치공화국으로 만들려고 했고, 동부의 친러 세력이 기대만큼 모이지 않자 다시 크림반도로 초점을 옮겼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지난 3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마이단 사태를 악화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베르쿠트’와 반정부 시위대에 침투했고, 크림 군사점거 몇 주 전부터 우크라이나 친러 세력과 급변 사태 이후 대처를 논의하고 친러 무장세력과 시위를 조직했다고 보도했다.

쉐겔 교수는 야누코비치 집권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군이 사실상 사라진 데도 러시아 입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야누코비치 정권은 징병제 폐지를 추진하며 병력을 줄인 대신 해마다 경찰을 크게 늘려 4500만 인구 중 경찰 수가 50만명에 달했다”며 “우크라이나를 경찰국가로 만든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사개입을 용이하게 하고 친서방 야권을 단속하기 위해 군대를 줄이고 경찰을 키웠다는 뜻이다.

그는 반정부 시위대를 신나치, 파시스트로 매도한 러시아의 언론 조작도 고발했다. 쉐겔 교수는 “러시아 국영 이타르타스통신이 지난 2일 1~2월 사이 67만5000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키예프의 극우주의자를 피해 러시아로 들어왔다고 보도한 며칠 후 러시아 방송이 그 근거라고 보여준 화면은 러시아와의 국경이 아닌 폴란드와의 국경에 있는 세기니 검문소로 들어가는 차량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크림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 그곳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처음 3일 동안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며 “러시아는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언론을 모두 차단하고 오직 러시아 방송만 볼 수 있게 했다. 초기 정보전에서 우크라이나가 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쉐겔 교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넘어 남부와 동부에서도 추가 군사행동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비관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마이단 혁명은 부패와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줬다”며 “비록 지금 크림 사태가 일어나면서 어려움에 처했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족정체성과 국가통합이 한층 확고해지고 시민사회도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