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성·여성 아닌 ‘제3의 성’ 인정

2019.01.10 21:16 입력 2019.01.11 20:01 수정

EU 중 첫 ‘간성’ 법적 허용

독일 시민단체 ‘드리테 옵티온(세번째 선택)’ 활동가들이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인정하자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다(왼쪽 사진). 2016년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 화장실에 남성·여성도 아닌 중립적인 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드리테 옵티온 트위터·더럼 | AFP연합뉴스

독일 시민단체 ‘드리테 옵티온(세번째 선택)’ 활동가들이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인정하자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다(왼쪽 사진). 2016년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 화장실에 남성·여성도 아닌 중립적인 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드리테 옵티온 트위터·더럼 | AFP연합뉴스

관련 법안 새해부터 발효
성 중립 ‘다이버’ 선택 가능
사회적 수용은 지켜봐야
트랜스젠더 등은 보호 못해
표기 자체 없애자는 의견도

독일이 유럽연합(EU) 최초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간성’(intersex·間性)을 법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국가 공식 문서에 이를 표기하도록 한 법이 지난 1일(현지시간) 마침내 발효된 것이다. 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이 법에 대해 간성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정체성을 인정받게 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향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남았다”고 지적했다.

■법적 투쟁 거쳐 ‘제3의 성’ 얻다

독일인 린(34)은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 그를 여자로 키우기로 결정한 부모 의견에 따라 두 살 때까지 7번의 수술을 받았다. 어린 시절 50명의 연구자가 자신의 벗은 몸을 관찰한 기억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부터는 성장 억제제, 고용량의 호르몬을 달고 살았다. 정체성 혼란에 10대가 된 린은 자해를 시작했고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남자들과 좀 더 잘 어울리는 자신을 발견했을 땐 스스로 ‘남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아이 무리에서조차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다. 린은 “나는 내 몸과 불화했고 아무도 내 몸과 화해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돌연변이’ 같다고 여겼던 린은 20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간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사회가 성별의 이분법적 정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린과 같은 독일의 간성인들은 이제 여성과 남성, 다이버(Divers)라는 성 중립적 호칭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유엔에 따르면 간성인들은 전 세계 인구의 0.05~1.7%로 추산된다. 간성인들의 이 같은 법적 지위는 그들 스스로가 이끌어냈다.

독일 의회는 2013년 자신이 여성이나 남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성별란을 빈칸으로 남겨둘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북부 니더작센에 사는 간성인 반자(가명)가 “중간 성별을 나타내는 용어를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공문서상에선 여자이지만 염색체 분석에서 X염색체가 하나뿐인 터너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결국 최고 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는 2017년 11월 “남성, 여성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성 정체성도 인격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제3의 성 법제화를 주장해 온 시민단체 ‘드리테 옵티온(세번째 선택)’은 “성별 분야의 작은 혁명에 근접했다”고 환영했다. 헌재는 2018년 말까지 ‘제3의 성’ 표기를 신설할 것을 의회에 명령했고, 의회는 지난달 14일 관련 법안을 승인했다.

■성별 표기 자체를 없애야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 많다. 반자는 “올바른 방향을 위한 첫 단계이지만 사회적 수용도는 법원 판결로 강제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간성인들이 꼽는 최우선 과제는 의료 수술 중단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많은 간성인들이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고통스럽고 불가역적인 생식기 수술을 받는다. 이 수술이 성 정체성 형성 전인 유년 시절, 당사자 동의 없이 결정되는 것도 문제다. 영구 불임이나 통증 같은 부작용을 동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지난해 8월 간성 아이들에 대한 수술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미국 최초로 통과시켰다.

‘제3의 성’임을 인정받기 위해 ‘의료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도 비판받는다. 간성은 아니지만 트렌스젠더처럼 신체적 성별(지정 성별)과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사회적 성)이 불일치하는 이들은 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시티대 법학대학원 선임강사 그리트제 바스는 “성별 표기를 없애는 것이 성별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라며 “출생기록부에 종교나 인종이 적혀 있지 않다고 해서 흑인이나 가톨릭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는 건 아닌 것과 같다”고 말했다. 독일 헌재 판결문에도 “공식 문서에서 일반적인 성별 표기 자체를 없앨 수도 있다”는 권고안이 포함됐다.

일상에서의 변화도 필요하다. 네덜란드 철도회사 NS는 2017년 7월 ‘신사숙녀 여러분’이란 표현을 ‘승객 여러분’으로 바꿨다. 일본 공립 고등학교에서는 성소수자인 수험생을 고려해 입학지원서의 성별란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 중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간성인들은 ‘그’나 ‘그녀’같이 성별이 드러나는 대명사 대신 성 중립적인 대명사의 사용을 요구한다.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국가는 독일 외에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몰타, 네팔 등이다. 미국에선 몇 개 주에서만 인정된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의회에서도 현재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간성이란? (출처: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간성은 생식기나 생식샘, 성호르몬이나 염색체 구조와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생물학적 특징에 대한 개념으로,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사회적 성별)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간성은 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일 수 있다.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인식할 수도, 그 어떤 쪽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정부 공식 문서에 ‘제3의 성’ 인정하는 국가

독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몰타, 미국(캘리포니아·뉴욕 등 일부 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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