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포럼

팬데믹으로 복잡다단해진 ‘안보위협’…국가는 지구화·지정학 조율사 역할 필요

2022.06.20 21:34 입력 2022.06.20 21:35 수정
김상배 서울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장

기고

김상배 서울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장

김상배 서울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장

지난 40여년을 돌아보면, 시대적 전환에 대응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1980년대는 국가론의 범람 시대였다. 자본주의 국가론과 발전국가론, 사회구성체 논쟁 등이 유행했다.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몰려온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물결은 국가보다는 경제와 사회의 역할에 눈을 돌리게 했다. 국제정치에서도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시민운동, 테러 네트워크 등과 같은 초국적 행위자들이 조명을 받았다. 반면 활동주체이자 분석단위로서 국가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국가의 실종은 아니더라도 국가론은 실종된 듯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시대적 흐름이 바뀌면서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담론이 떠올랐다. 위기에 대응하는 일국 차원의 노력을 넘어 선진국 정부들의 협의체도 가동됐다. 이어 그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반발하는 국가의 반격이 출현했다. 2010년대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과 함께 민족주의와 권위주의 흐름이 주요 국가들에서 나타났다. 다국적 기업들의 초국적 활동에 대응하는 보호주의도 대두했다. 미·중 패권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국제정치적 갈등의 축도 강대국 간 지정학으로 옮겨갔다. 지구화의 선봉장이었던 미국마저 자국 우선주의로 회귀하면서 이른바 탈(脫)지구화의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최근 들어 ‘신흥안보’로 개념화되는 새로운 안보위협에 직면하여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 극복과정에서 국가 전환의 시대적 사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실제로 오늘날 안보위협은 과거 거시적인 시각에서 본 국가안보의 프레임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해졌다. 생활 속의 ‘안전’ 문제가 집단과 조직의 ‘보안’ 문제가 되고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의 ‘안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야말로 코로나19 팬데믹의 보건안보 위협과 공급망 교란의 경제안보 문제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이라는 전통적인 지정학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위기 속에 살고 있다.

큰 위기는 대전환의 노력을 요구한다. 글로벌 전환, 디지털 전환, ‘녹색 전환’으로 대변되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자본과 데이터,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는 시대를 과거의 국가 프레임으로만 헤쳐나갈 수는 없다. 국가재정의 양적 투입이나 공정 논리 일변도의 규제 마인드만으론 안 된다. 그렇다고 개인자유와 자율규제의 논리를 내세워 무작정 국가를 눌러앉히는 것도 대안은 아니다. 대전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제들을 잘 풀면서도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제대로 챙기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동할 개방적 국가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글로벌 전환의 과정에서는 지구화와 지정학의 균형이 큰 과제다. 지구화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을 뿐 아니라 현재 직면한 초국적 과제들은 일국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재(再)지구화를 위한 국가의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디지털 전환의 과정에서는 성장촉진과 공정규제의 조화가 과제다. 혁신기업들이 공정한 규칙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게 도와야 한다.

녹색 전환의 과정에서는 생태환경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도 사회통합 문제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일상회복과 새로운 질서의 구축,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갈등을 조율하는 ‘메타 거버넌스’의 역량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미래 한국의 좌표를 담아낼 국가의 역할을 놓고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글로벌 전환의 파고 속에서 ‘낀 나라’의 위기를 중견국의 기회로, 디지털 경제 시대의 전환 과정에서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는 국가로, 녹색 전환의 시대를 맞아 효율적 성장국가에서 미래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규범국가로 도약해야 한다. 안과 밖으로 개방된 네트워크를 포용하는 새로운 국가모델도 설계해야 한다.

통일한국의 미래국가론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은 과거 좁게 설정된 국가이익의 정의를 넘어서려는 국민적 합의의 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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