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2018.02.26 20:46 입력 2018.02.26 20:48 수정

ⓒ김진옥

ⓒ김진옥

진달래와 아리랑이 없다면? 이 겨레의 이 마음을 그 어디에 의탁하랴. 그것이 없는 것만으로 아찔할 반열의 품목으로 가야금도 들 수 있으리라. 한 달 전, 황병기 명인의 부음을 들었다. 문득 영화 <공동경비구역>에서 송강호가 김광석을 두고 했던 대사를 흉내내고 싶어졌다. 아니 왜 이리 빨리도 떠나시는 겁니까.

가야금 소리에 귀를 종종 적시는 한편 명인을 소개하는 글이나 인터뷰는 가급적 챙겨보았었다. 중학생 때 가야금에 반했다는 명인한테 부러운 게 있었기에 다음의 글을 적기도 했다. “… 내 마음이 쏠리는 건 5년 연상의 소설가를 평생의 반려로 맞이한 것도 아드님의 출중한 수학실력도 아니었다. 감히 가야금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것은 황 선생이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졸저, <인왕산일기>에서 인용함)

명인의 명복을 빌며 구석에 있는 가야금을 보았다. 오래전 동묘 풍물시장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소리나 한번 뚱땅거려 보자는 허영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저는 기억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제 죽겠죠. 그러면 그걸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가야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를 나룻배 모양으로 파낸 소리통에 호두나무를 깎은 안족(雁足·기러기발)을 올려놓고 명주실을 걸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명인이 가야금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갈비뼈 근처에서 꺼낸 또 다른 자기를 눕혀놓고 어르고 달래는 형국인 것도 같다. 나룻배의 몸통에 기러기의 발. 선생은 이런 가야금에 인생의 비의를 깨닫고 불현듯 떠난 것일까. ‘사람살이 머문 곳이 무엇과 같은가? 눈 위에 잠시 쉬어 간 기러기 발자국 같은 것.’ 천년 전에 이런 시를 남기고 잠시 세상을 다녀간 소동파처럼.

앞서 내가 적은 건 잘못 안 사실이었다. 선생은 가회동에서 태어나 북아현동에서 평생 머물렀다. 이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으니 그 한 뼘의 차이를 따지는 건 부질없는 일이겠다. 오동나무는 물론 호두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덧없는 시간을 실어나르는 명인의 가야금 소리 울려나올 듯! 호두나무, 가래나무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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