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한국 원전가동률 90%, 사고날 확률은 80%가 넘어”

2012.07.03 21:05

민주·탈핵·생태주의 대담

이케가미 “일본 도심 10만 시위는 60년대 안보투쟁 후 처음”

“일본은 데모를 할 수 있는 사회로 변했다.” 일본의 지성 가라타니 고진은 지난해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를 지켜보며 이렇게 선언했다. 일본 잡지 ‘겐다이시소(現代思想)’의 이케가미 요시히코 전 편집장(56)은 지난달 29일 경향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뒤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 총리 관저 앞에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는 시민 10만명 이상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1960년대 안보투쟁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케가미는 이날 창비가 주최한 한·중·일의 16개 진보 성향 잡지 편집장 모임인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뒤 그는 김종철 녹색평론 대표(65)와 민주주의, 탈핵, 생태주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왼쪽)과 이케가미 요시히코 전 겐다이시소 편집장이 지난달 29일 연세대에서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 참석한 뒤 한·일 양국의 탈핵 운동 등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왼쪽)과 이케가미 요시히코 전 겐다이시소 편집장이 지난달 29일 연세대에서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 참석한 뒤 한·일 양국의 탈핵 운동 등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사고는 아직도 진행 중

김종철=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체르노빌·후쿠시마 같은 대형 원전사고가 날 확률이 10~20년에 한 번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향후 5년 안에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날 확률이 80% 이상이라고 봅니다. 일본은 원전 가동률이 60% 정도였는데 한국은 90%입니다. 가동률이 높다는 것은 더 많이 사용됐다는 얘기고 훨씬 노후화됐다는 의미입니다. 일본도 지금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가 위험한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케가미=많은 사람들이 4호기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다고 단숨에 뭔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느려도 착실한 변화는 있습니다. 사고 이후 과학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원전의 구조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1000만~2000만엔 하는 기계를 공동으로 사서 방사능을 측정하는 시민그룹도 생겼습니다. ‘민중의 과학’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김종철=이 예민한 시기에 일본에서 원자력 이용에 안보 목적을 추가한 원자력기본법 개정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정치가, 관료, 원자력업계, 금융계, 언론 등 막강한 원자력 마피아와 원전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맞부딪혀 있습니다. 일본의 4대 은행이 가장 집요하게 원전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원전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수익을 내지 못하면 파산한다는 것이지요.

이케가미=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상대가 너무나 거대하고 날이 갈수록 무서운 상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다 총리 퇴진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일본·한국 어느 한 나라의 문제도 아닙니다. 일본에서 54기의 원전이 멈췄을 때 적어도 1년 정도는 갈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벌써 역공세가 시작됐습니다.

■ 북핵보다 일본 원전이 더 위험

이케가미=원전은 미국이 강매한 겁니다. 원자폭탄도 미국이 투하했죠.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 미국과 재협상하겠다고 했고, 이제부터 아시아로 눈을 돌리겠다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언론에서 ‘바보’라는 평가를 들으며 사임해야 했지요.

김종철=역시 미국과의 관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으냐는 생각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자주 외교는 미약합니다. 미국이 힘이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몰락기에 가장 위험합니다. 중국의 위협을 내세워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 동맹관계를 강화하려고 합니다. 신냉전의 도래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북한을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케가미=미국과 관계를 끊자는 게 아니라 반원전 운동은 미국을 객관화·상대화하는 관점까지 나가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최근에는 그래도 시위 현장에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북한 핵이 아니라 일본의 원전이다’라는 플래카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호를 당당하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없었습니다.

김종철=좀 늦긴 했지만 고무적인 신호입니다. 민중들이 시대를 제대로 읽고 있는 것입니다. 핵무기도 미국이 그만두겠다고 하면 깨끗이 없어질 문제입니다. 원전도 핵무기에 대한 야심과 연결돼 있지요.

이케가미=최근 한·일 정보보호협정 추진도 결국 배후에 미국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이렇게 미국이 필사적으로 나오는 걸 보면 정말로 북한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말씀대로 거대한 세력은 쇠퇴기에 가장 위험합니다.

김종철=배제할 수 없습니다. 냉전체제란 상대 국가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해 지배층의 권력을 유지하는 적대적 공생관계입니다. 이번 협정은 패잔병들끼리 서로 돕고 권력을 유지하자는 표현입니다. 사실 한·중·일에서 민주화투쟁을 열심히 하는 것이 미국의 횡포를 줄여나가는 길입니다.

■ 결국은 민주주의의 문제

김종철=일본은 본래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반핵운동이 벌어졌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운동은 몇몇 지식인과 활동가에 국한됐고 일반 국민들과 연결이 안됐습니다. 독일에서는 녹색당 중심의 대중적 반핵운동이 40년 이상 벌어졌습니다. 68혁명 당시 독일의 학생운동 세력이 녹색당으로 들어갔다면, 일본의 학생운동 세력은 대기업으로 가거나 관료가 됐지요. 결국 동아시아 정치의 빈곤은 녹색당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케가미=핵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하셨는데 100% 찬성합니다.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방사능물질로 오염된 채소를 먹지 않는다는 것, 나아가 원전을 정지시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패전 이후 강력한 사회운동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정치적인 힘으로 연결되는 회로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일본의 문제입니다.

김종철=원전 사고는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한·중·일의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우선 각 사회가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희망이 있다면 공산주의 운동 이후 유일한 국제주의적 정당인 녹색당의 성공 여부입니다. 녹색당이 지향하는 것은 국가를 초월한 논리, 국경을 넘어선 해결책입니다. 핵문제와 관련된 동아시아 민중 포럼도 한·중·일에서 연속적으로 열었으면 합니다.

이케가미=처음부터 핵무기를 없애자라고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거부해 나가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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