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힌 스타일 싫어요, 톡톡 튀는 졸업앨범

2013.05.27 21:37

교장선생님 사진은 맨 뒤로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 담고

별명·장래희망·인사글까지

교사들 유행어·특징도 적어

보통 졸업앨범을 열면 교장 집무사진이 첫 장을 장식하고 교사·학생 사진이 이어진다. ‘교복 입고,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한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학생들’ 사진이 대부분이다. 사진 순서가 학교의 위계질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재미와 추억은 담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졸업앨범의 관례를 깨고 최근에는 변화를 모색하는 학교들이 등장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모현중학교에서는 ‘학생 중심’의 특별한 졸업앨범을 만들고 있다. 기존의 졸업앨범이 갖고 있던 형식적 틀을 벗어나 ‘학생이 주인공’이라는 모토로 졸업앨범을 재구성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교장의 집무사진이 사라진 것이다. 이 자리에는 3년간 학생들이 참여한 학교 행사와 특별활동 사진이 실린다. 딱딱한 느낌을 주는 학급별 단체사진보다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팀을 꾸려 자유롭게 여행하는 사진이 주를 이룬다. 1~2학년과 3학년 1학기까지는 이런 활동사진을 주로 수집하고 3학년 2학기에 들어가자마자 학생 설문조사를 해 졸업앨범에 들어갈 내용을 확정한다. 교장 사진은 맨 마지막 장에 교사들과 함께 실린다. 사진 크기도 작아졌다.

보통의 졸업앨범에서는 3학년 담당 교사들의 사진만 게재하기 때문에 1~2학년 때 가르쳤던 교사 사진은 찾기 힘들었지만, 모현중 졸업앨범에는 졸업생들이 1~2학년 때 배웠던 교사들의 사진까지 함께 찾아 싣는다. 다른 학교로 간 교사도 여기에 포함되고, 교사들의 유행어나 특징도 사진과 함께 기재됐다. 학교 이곳저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평소보다 개수를 늘렸다. 윤여일 모현중 교장(57)은 “20~30년 후에 졸업앨범을 보면서 자신이 학교에 다녔을 때의 교정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학교 사진을 더 늘렸다”며 “교지처럼 학생들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는 졸업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 모현중학교의 올해 졸업앨범. 왼쪽에는 학생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오른쪽에는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롤링페이퍼로 구성돼 있다. 모현중학교 제공

경기 용인시 모현중학교의 올해 졸업앨범. 왼쪽에는 학생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오른쪽에는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롤링페이퍼로 구성돼 있다. 모현중학교 제공

지난 2월 나온 졸업앨범에서 학생들의 사진은 재미있고 풍부해졌다. 학급별 사진과 학생 개인 사진은 다양한 소품과 의상을 활용하도록 했다. 자신의 꿈과 개성을 접목한 독특한 캐릭터를 연출해 사진을 장식한 것이다. 한복을 입은 아이, 얼굴에 글씨를 쓴 아이, 꽃을 입에 문 아이, ‘전교 1등’이라는 팻말을 든 아이, 밀짚모자를 쓴 아이 등 가지각색의 연출이 동원됐다. 개인 사진 밑에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불렸던 별명과 장래희망을 적는 난도 생겼다. ‘개그맨 김준현’ ‘펭귄’ ‘배빡이’ ‘하마’ 등의 별명만 봐도 아이들이 반에서 어떤 캐릭터를 갖고 생활했는지 알 수 있다. 장래희망도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아니라 ‘목성을 주름잡는 우주 대스타’나 ‘일러스트레이터’ ‘경찰 서장’ ‘펫 시터’ 등으로 다양했다. 오는 9월에는 현재 3학년 학생들의 촬영이 시작된다.

창의적인 편집 방식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앨범 한쪽에는 학생들의 어린 시절 사진도 함께 실었고, 재학하는 동안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던 영화나 드라마 이미지를 아이들이 직접 삽화로 그려넣었다. 보통 각 반에서 임원을 맡는 아이들이 해왔던 졸업앨범 편집위원도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구성했다.

졸업생들이 다양한 소품과 의상을 활용해 찍은 사진.  모현중학교 제공

졸업생들이 다양한 소품과 의상을 활용해 찍은 사진. 모현중학교 제공

롤링페이퍼 페이지에는 졸업하는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목소리가 담겼다. 한 아이는 “너희랑 헤어져서 너무 슬프다. 고등학교 가서도 연락하자!”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넣었고, 다른 아이는 “너희들을 만난 건 나에게 행운이었다. 사랑하고 나중에 동창회에서 만나자. 멋진 슈트 입고 나갈게!”라고 썼다. 한편에는 “우리 반 잊지 못할 거야, 사랑한다 얘들아”라는 담임교사의 메모도 있었다.

전에 없던 졸업앨범을 만드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걱정과 우려도 있었지만 졸업앨범 제작 업체에서도 학교의 좋은 취지를 받아들여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윤 교장은 “졸업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학부모와 아이들이 졸업앨범의 주인이 됐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며 “학생의 꿈과 추억을 품은 참신한 졸업앨범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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