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심사평 - “균열·의외성… 자본의 시대, 시가 필요한 이유 증명”

2014.12.31 20:33 입력 2014.12.31 20:45 수정
이시영·황인숙 | 시인

이시영(오른쪽), 황인숙 시인이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이시영(오른쪽), 황인숙 시인이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선자들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네 편이었다. “벚꽃은 지상에서 초속 5센티미터/ 속도로 떨어지고 있겠지”라는 빛나는 감성을 품은 ‘휠체어 드라이브’는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직관을 형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세계를 조용히 응시하는 이 시편은 시인의 상상력이 뜻밖의 시적 전개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간밤 느티나무 찻상이 쩍/ 갈라졌다”는 직핍으로부터 출발한 ‘느티나무 찻상’은 사물의 갑작스러운 붕괴로부터 빛과 향을 흡입하는 착상이 신선하고 발랄했다. 그러나 이 시인 역시 예상 가능한 상상력의 구도에서 비약하지 못한 채 익숙한 은유로 생의 비의를 드러내는 데 안주했다. 어느 병동에서의 남녀의 갈등을 바둑에 빗대어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결심을 가진 백과/ 그것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흑 사이”로 묘사하며 사뭇 긴장감을 자아내는 ‘직선을 이탈한 두 남녀가 모이는 점’ 역시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아프게 드러냈으나 곳곳의 상투적인 시행들의 병렬로 인해 이른바 언어 자체가 살아있는 ‘물활’(物活)의 경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응모작들 중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선수들’이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그러했지만, 이 시인은 무슨 제재를 다루든지 일거에 대상을 장악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리듬으로 시를 운산(運算)하는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다. 특히 표제작인 ‘선수들’은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며 파열하는 섬광 같은 것을 뿜어내면서 자기 시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삶의 트랙으로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이 시는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다른 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이 주밀한 자본의 세계에서 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균열과 의외성이다. 트랙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결말을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의 이 과감한 투신의 성과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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