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막을 수 있었던 7번의 기회

2016.05.02 22:44 입력 2016.05.03 08:51 수정

숱한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는 크게 일곱 차례의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무능과 안전불감증,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 등 느슨한 안전 그물망 탓에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순간마다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지적한다.

피해자들이 2013년 4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2013년 4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①1994년 첫 가습기 살균제 출시…가습기 불안심리 이용 시장 진입

환경·보건·산업 당국이 살생물제의 호흡기 침투 위험에 의문을 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의 시장 진입 자체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박동욱 교수 “당시 외국에서는 가습기 자체로 인한 폐질환에 대한 보고가 많이 나와 있었고,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에 대한 불안한 심리를 파고든 상품이었다. 살균제 쓰는 것이 좋다는 식의 광고가 허용된 것도 피해를 키웠다” (독성물질 전문가)

②1997년 환경부 “유독물 아님” 고시…산자부도 초기 규제 실패

환경부는 관보에 PHMG 물질에 대해 “유독물에 해당 안됨” 고시. 산업자원부는 이 물질을 세정제로 간주해 판매 허가. 가습기 살균제는 ‘자율안전확인대상 공산품’으로 취급됨. 사용방법에 따라 독성 여부가 크게 달라지는 물질이 생활용품에 들어가도록 허가하면서 적절한 규제를 취하지 않은 것.

피해 어린이가 2013년 7월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피해 어린이가 2013년 7월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③2000년 옥시, 독성실험 없이 살균제 출시…기업 윤리의 부재

옥시가 2000년 10월 한국에서 PHMG의 흡입 유해성 검사도 실시하지 않은 채 ‘옥시싹싹뉴가습기당번’ 출시. 옥시 측이 인체 영향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대목.

④2003년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 유독성 확인하고도 무시

호주 수출 과정에서 여러 정황상 PHMG 생산업체인 SK케미칼과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은 이미 독성 여부 확인. 그러나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은 독성 여부를 확인하고도 무시. 막대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 무산.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파악조차 하지 못할 만큼 무능.

2013년 11월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의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오른쪽)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홈플러스의 도성환 사장이다.

2013년 11월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의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오른쪽)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홈플러스의 도성환 사장이다.

⑤2006~2008년 환자 잇단 발생…‘괴질’ 치부, 원인규명 뒷전

2006년부터 3년째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가 서울 소재 큰 병원들에 잇따라 찾아오자 2008년 봄 주요 병원 의사들이 관련 질환에 대한 회의 개최, 질병관리본부 인플루엔자바이러스팀 관계자도 참석. 2009년 피해자의 증상과 사망자 수 등이 담긴 논문이 발표됐지만 질본은 원인 조사조차 미실시. 당시 질본 관계자가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보고하고, 질본이 역학조사에 나서 원인을 규명했다면 이후의 피해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환경단체와 전문가들).
방통대 박동욱 교수 “감염병에 대해서는 국가적 감시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피해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유독물질 중독에 대한 감시체계는 전무한 상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2014년 8월25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제조회사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2014년 8월25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제조회사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⑥2011년 동일 증상 산모 환자 몰려든 병원서 우연히 원인 발견

2011년 한 병원에 피해자들이 몰리며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드러나기까지 정부의 안전 그물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음. 서울아산병원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산모 7명이 우연히 같은 시기에 입원했고, 4명의 산모가 사망. 각기 다른 병원에 갔다면 원인 파악에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됐을 가능성. 질본은 8월 원인미상 폐손상 원인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

⑦2011년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공식 피해 판정까지 3년 허송

2011년 원인 발표 이후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 문제라며 방관. 환경부, 복지부가 서로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피해자 조사를 위한 민관합동위원회가 복지부 어깃장 탓에 공전하는 사이 피해자들은 철저히 외면당함. 공식 피해 조사결과 발표와 판정은 3년 만인 2014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처음부터 현재까지 국가는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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