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동아 보드게임, 지혜 완구”…죽음의 전쟁을 ‘신나는 놀이’ 미화

2016.10.28 20:50 입력 2016.10.28 21:06 수정
글·사진 |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전쟁과 놀이

인형 옷 입히기 놀이의 원형격인 메이지 시대 종이인형 놀이판. 1896년에 인쇄된 이 놀이판에는 일본 기마병과 보병, 깃발, 대포, 장총, 어뢰 등이 그려져 있어 어린이들에게 ‘멋진 군인’의 환상을 심어줬다.

인형 옷 입히기 놀이의 원형격인 메이지 시대 종이인형 놀이판. 1896년에 인쇄된 이 놀이판에는 일본 기마병과 보병, 깃발, 대포, 장총, 어뢰 등이 그려져 있어 어린이들에게 ‘멋진 군인’의 환상을 심어줬다.

사람은 누구나 놀이를 한다. 심지어는 전쟁할 때도 놀이를 한다. 아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필사적(必死的)으로’ 논다. 유럽 동부전선 참호 속에서 카드게임하는 병사들의 사진은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일본 역사상 유명한 장군들이 그려진 20세기 초 멘코(面子) 딱지(왼쪽)와 군인을 그려넣은 ‘한국판 멘코 딱지’.

일본 역사상 유명한 장군들이 그려진 20세기 초 멘코(面子) 딱지(왼쪽)와 군인을 그려넣은 ‘한국판 멘코 딱지’.

후방에서도 사람들은 놀이를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내 옆집에 살던 이웃이 전방으로 징용되어 죽어 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후방에 머무는 사람들은 잘 몰랐다. 각국 정부는 전쟁을 숭고하고 신나는 게임인 것처럼 선전했고, 어린아이들은 빨리 군인이 되고 싶어 했다. 아직 어려서 징용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장군과 병사들이 그려진 딱지놀이를 하고, ‘우리나라 군대’가 점령한 땅을 그린 보드게임을 했다. 20세기 초에 일본 어린아이들이 놀던 멘코(面子)라고 하는 딱지에는 전근대의 유명한 장군들이나 근대 전쟁의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멘코는 원형이나 사각형 등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이 중 한반도에서는 둥근 딱지가 주로 유행했다

일본 역사상 유명한 장군들이 그려진 20세기 초 멘코(面子) 딱지(왼쪽)와 군인을 그려넣은 ‘한국판 멘코 딱지’.

일본 역사상 유명한 장군들이 그려진 20세기 초 멘코(面子) 딱지(왼쪽)와 군인을 그려넣은 ‘한국판 멘코 딱지’.

인형 옷 입히기 놀이의 원형격인 메이지 시대의 종이인형 놀이에서도 전쟁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는 1896년에 인쇄된 종이인형 놀이판을 소장하고 있다. 메이지 일본이 1894~95년의 청일전쟁에서 청나라 군대에 승리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이듬해에 만들어졌다. 메이지 일본의 기마병과 보병, 깃발, 대포, 장총, 어뢰 등이 그려진 종이인형 놀이판을 오려서 놀면서, 일본의 남자아이들은 바야흐로 세계 열강의 자리에 오르고 있는 ‘우리나라’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자기들도 이런 ‘멋진 군인 아저씨’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종이인형 놀이판도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에 소개돼 오늘날까지도 어린아이들의 놀이로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에 제작됐을 것으로 생각되는 ‘재일교포 미스리’라는 종이인형 놀이판에서는 당시 한국 시민들이 재일교포를 화려하고 부유한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한 1940년대에 아이들에게 새로 획득한 영토를 각인시키고 야망을 키우게 한 ‘대동아’ 보드게임.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한 1940년대에 아이들에게 새로 획득한 영토를 각인시키고 야망을 키우게 한 ‘대동아’ 보드게임.

일본이 최대로 영토를 확장하여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한 1940년대가 되면, 새로이 획득한 영토를 일본의 아이들에게 각인시키고 야망을 키우게 하는 보드게임이 여럿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대동아’라는 이름의 보드게임이 흥미롭다. 게임판 뒷면에는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가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이 놀이는 대동아공영권의 지리와 물산을 소국민(小國民, 어린이)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재미있는 지혜 완구입니다.”

5명이 하는 ‘대동아’ 보드게임은 오른쪽 아래의 노란색 ‘시작(振出し)’ 칸에서 출발한다. 수마트라, 남부 중국(南支), 태국, 위임통치, 자바, 만주, 필리핀, 셀레베스, 보르네오, 말레이, 하와이, 중부 중국(中支), 인도, 연해주,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중국(北支), 뉴질랜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버마, 뉴기니, 지금의 내몽골 지역에 해당하는 몽강(蒙疆), 일본, 북부 사할린을 거쳐, 마지막에 시베리아에 도착하게 돼 있다.

플레이어들은 각 지역에서 특산물 카드를 구입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 필자가 보드와 함께 일본의 옥션에서 입수한 특산물 카드에는 각각의 특산물 이름과 모습, 그 가격이 인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남부 중국 40점짜리 목화(綿)와 80점짜리 비단(絹)을 거래할 수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임인 만큼 일본에서 거래되는 물자의 종류가 가장 많고 또 가장 비싸다. 비단과 금이 100점, 석탄과 동이 80점, 소금과 유황이 40점이다. 이런 구성은 대동아공영권에서 어떤 물자가 나는지를 아이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대동아전과학습회도(大東亞戰果學習繪圖)’라는 지도에도 대동아공영권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주변 지역의 상세한 지명과 생산물이 그려져 있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한 <사회과부도>에서도 이런 그림을 본 기억이 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남방연구회라는 단체에서 발행한 사진엽서첩 ‘빛나는 일본-대동아공영권 안내(輝く日本 大東亞共榮圈案內)’에는 필리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말레이, 태국, 동인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의 풍속과 해설을 수록한 엽서 8장이 ‘대동아공영권’을 그린 지도가 인쇄된 겉봉에 싸여있다

‘대동아’ 보드게임에서는 오른쪽 아래 귀퉁이의 ‘시작’ 칸에 걸리면 한 번 쉰다. 나머지 세 귀퉁이에는 남만주철도의 특급열차 아시아호(あじあ號), 그리고 일본 열도와 대륙을 오고 가던 항공기와 유람선이 위치해 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기계 문명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초록색 바탕이나 전체적인 구성에서 이 ‘대동아’와 유사한 인상을 주는 한국의 어떤 보드게임에서는 ‘시작’ 대신 ‘무인도’에 걸리면 한 번 쉬고, 열차·항공기·유람선 대신에 미국의 우주왕복선이 그려져 있다. 또 ‘대동아’에는 판의 한가운데에 초록색 바다와 이 너른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상징하는 컴퍼스(운전대)가 그려져 있다. 한국의 그 보드게임에는 마찬가지로 초록색 사각형이 가운데 놓여 있고, 둥근 지구를 만국기가 둘러싼 형태가 그려져 있다.

한편, 한국의 그 보드게임에서는 ‘시작’ 칸에서부터 세계를 한바퀴 돌아 마지막에 ‘서울 올림픽’에 도착하게 되어 있는데, ‘대동아’에서는 ‘서울 올림픽’ 자리에 ‘시베리아’가 놓여 있다. 필자는 1980년대 초에 잠실 1단지에 살았는데, 길 건너로 올림픽 주경기장이 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한국의 그 보드게임을 할 때마다 초등학교 시절의 필자는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열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대동아’ 보드게임을 하던 1940년대 일본의 어린아이들도 언젠가 일본군이 소련군을 무찌르고 광활한 시베리아를 정복할 날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베리아에 대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판타지는 오늘날까지도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있다. 시베리아 철도에 대한 환상, 이른바 ‘한민족’의 고향이 바이칼호 주변이라는 환상 등이 그러하다.

‘대동아’ 말판에 보이는 지역들 가운데 만주 지역에는 만주국이 수립되어 있었고, 몽강에서는 뎀치그돈로브(Demchigdonrov)와 같은 내몽골 독립운동가들이 관동군의 힘을 빌려 몽고연합자치정부(蒙古聯合自治政府)를 수립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태국에는 쁠랙 피분송크람(Plaek Phibunsongkhram)의 친일 정권이 수립되어 있었고, 필리핀에서는 일본군이 1940년대 초에 미군을 축출하고 형식적으로 독립국을 수립해 호세 라우렐(Jose Laurel)을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중국 지역에서는 일본군이 중화민국 및 공산당 세력과 전쟁을 하고 있었고, 인도에 대하여는 일본 군부의 힘을 빌린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s Chandra Bose)가 인도국민군(Indian National Army)을 수립하여 영국에 맞서는 중이었다.

일본 제국의 수뇌부는 ‘대동아공영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동아 신질서’와 같이 서구적 질서에 저항하는 개념을 고안해 선전했다. 내몽골, 필리핀, 인도의 일부 독립운동세력은 이러한 일본 세력을 끌어들여, 장기간 자기 지역을 지배한 서구 세력을 축출하고자 했다. 한반도처럼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가 된 지역과는 달리, 이들 지역은 일본 점령 기간보다 훨씬 긴 수백년 동안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였다.

1945년 8월15일에 일본 제국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 국가는 독립했지만, 이들 옛 대동아공영권 영역 및 인도 일대는 승전국인 서방 세력의 식민지로 남았다. 이들은 1945년 이후에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 끝에 독립국이 되었다. 그렇기에 한반도와 달리 이들 지역에서 일본 제국주의는 절대적인 악(惡)이 아닌, 서구 제국주의와 비교하면 짧은 기간만 존재했던 상대적인 악(惡)으로서 인식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자, 러시아와 서구의 압박에 시달리던 터키, 인도 등에서는 “아시아인도 서구인을 이길 수 있다”면서 일본의 승리를 기뻐한 역사가 있다. 러일전쟁의 결과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물러나면서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지만,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이 러시아에 이긴 것을 기뻐했다. 똑같이 ‘아시아’라고 불리지만, 근대기에 한반도가 경험한 역사의 기억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한반도가 서구 세력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대 한국인들은 유럽과 미국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여타 아시아 지역에서는 수십년에서 수백년간 자신들을 혹독하게 지배한 서구 세력에 대해 한국인과는 정반대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는 현재 지리 구분상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한반도 사람들은 다른 아시아인들과는 구분되는 역사적 경험을 거쳤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들 사이에 한반도의 이러한 특수성은 자각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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