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가정도 연애도 뒷전···나도 ‘대선 과몰입’ 증후군?

2017.05.04 18:14 입력 2017.05.05 11:52 수정

일도 가정도 연애도 뒷전···나도 ‘대선 과몰입’ 증후군?

·언론사에 항의 문자하고 검색순위 위해 반복검색

·다들 욕하는데 혼자 두둔, 한동안 수영장 쉬고 우울

·타후보 지지 여자친구와 매일 논쟁하다 결별 위기

이상현씨(가명·대학원생·32)는 최근 잠자리에 들었다 분한 마음에 일어나 벽을 차는 일이 잦아졌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 후보가 다른 여자친구와의 갈등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자인 이씨는 4일 “여자친구가 매번 ‘안철수는 남자 박근혜’라고 조롱한다”며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날은 자려고 누웠다가도 억울해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안 후보가 3차 대선후보 TV토론회에 나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 발언을 한 이후 이씨의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이씨는 “사람들은 ‘자폭’을 했다고 조롱했지만, 예전부터 안 후보의 팬이었던 사람 입장에선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나 싶어 안쓰러웠다”며 “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오는 9일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면서 이씨처럼 각 후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덩달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른바 ‘대선후보과몰입 증후군’이 늘고 있다.

시민들이 대선에 몰입하면서 지지 후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울감을 호소하고, 지인들과 갈등도 빚는 등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현상이다.

일도 가정도 연애도 뒷전···나도 ‘대선 과몰입’ 증후군?

·토론회 보다 술 진탕 먹고 “그 열정을 집에”핀잔 들어

·내 후보 공격한 쪽에 분노, 그 후보 지지 페친들 삭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자인 김진영씨(35·주부)는 각종 ‘가짜뉴스’로 “말도 못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일 SBS가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인양 지연이 문 후보와 관련 있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낸 날 힘든 하루를 보냈다.

보도 직후 SBS에 항의 문자를 보낸 후엔 스마트폰으로 포털 검색을 시작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문재인 세월호’ 키워드를 끌어내리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순위에 오른 다른 키워드를 반복해서 눌렀다. 김씨는 “하다 하다 세월호를 문 후보와 엮어 공격할 줄은 몰랐다”며 분개했다.

그는 “험지를 걷고 있는 문 후보를 보면 짠한 마음에 눈물이 날 때도 있다”면서 “가짜뉴스 대응하랴, 후보 알리랴 문 후보 지지자로 사는 게 피곤하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게 한 표를 주기로 한 정모씨(38·회사원)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특히 지난 2일이 괴로운 날이었다.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날 출근한 정씨는 업무는 제쳐두고 하루종일 ‘유승민’을 검색해서 기사를 읽고 분노했다. 그는 “배신자들을 응징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TV토론회에서 정씨의 분노는 폭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유 후보에게 “비열하고 덕이 없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날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고 귀가한 정씨에게 아내는 “가정을 위해서 그렇게 열정을 쏟아봐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다음날 정씨는 인근 은행에 들러 유 후보 후원계좌에 돈을 보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정수씨(가명·32)는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심 후보에 대한 특정 후보 지지자들의 공격 때문이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씨는 “성 소수자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뒤 심 후보가 심하게 공격을 받자 ‘정말 질린다’는 말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요즘 회사 일은 뒷전이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심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말하는 자발적 선거운동원이 됐다. 페이스북에선 심 후보를 비난하는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을 일제히 삭제했다. 이씨는 “내가 심 후보를 위해서 왜 이렇게 ‘오버’하냐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의 형태가 일베와 뭐가 다르냐”며 주장했다.

홍준표 후보 지지자인 임종섭씨(가명·63)의 기분도 요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는 다니던 수영장을 최근 쉴 만큼 우울했던 때가 있었다. 홍 후보 자서전의 ‘돼지흥분제’가 논란이 되자 수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홍 후보를 거세게 비난한 것이다. 임씨는 이런 얘기가 듣기 싫어 대선이 끝날 때까지 수영장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홍 후보가 상승세를 타면서 신이 난다고 한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선은 국가의 중대사인 만큼 시민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행동에 나서는 건 긍정적인 것”이라면서도 “이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대선 이후까지 그 영향이 미칠 수 있어 매체나 인터넷을 다소 멀리하고 일상활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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