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만의 천국

2018.09.28 20:31 입력 2018.09.28 20:32 수정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오기를 원하십니다.” 한때 열심히 부르며 은혜받았던 복음성가다. 그러나 더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개뻥’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하나님은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에게 더 가까이 오길 원하신다 해도 그 중간에 선 교회와 ‘일부’ 그리스도인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시선]당신들만의 천국

지난 9월8일 인천 북 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축제 전날부터 광장을 사수한 반퀴어 활동가들은 축제에 참여하려 모인 퀴어 활동가와 참가자들을 고립시켰다. 그 과정에서 행사 차량은 훼손되었고, 고립된 사람들은 물이나 음식도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반퀴어 활동가들이 내건 구호는 이랬다. “사랑하니까 반대한다.” 사랑해서 미안하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대중가요 가사나 통속극 대사는 들어봤어도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말은 30년 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나조차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정반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참담한 풍경이 단지 그날, 그 광장에서만 벌어진 건 아니었다.

그다음 주부터 진행된 개신교 주요 교단의 총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동성애 혐오로 연합과 일치를 이루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NAP(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 “차별금지와 성평등이라는 독소조항”이 있다며 ‘NAP 반대’를 별다른 이견 없이 결의했고, “동성애자의 주례를 거부할 수 있으며, 동성애자를 추방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을 신설했다. 성소수자들을 위해 활동하며 <퀴어 주석> 번역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도 있다. 교단 바깥은 또 어떤가. 어느 신학교에서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무지개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을 징계했다. 교단과 (신)학교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할 신학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그 바깥에서는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을 신앙이고 사랑이라 감히 명명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동성애 혐오에 집착할까?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동성애 때문에 교회가 망하고, 피땀 흘려 세운 나라가 무너지고, 창조질서가 망가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이들의 혐오에 신학·신앙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얼마 전 내한한 퀴어 신학자 테드 제닝스(시카고신학교)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기독교가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 사랑이란 가치를 스스로 죽이고 권력기구가 되면 결국 교회는 사라질 겁니다.” 슬프게도 테드 제닝스의 경고가 한국 교회에는 예언이 되고 있다.

만약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말한 대로, 성소수자처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망가뜨리는 이들이나, 성평등을 주장하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이들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상상해보자. 그 천국에는 누가 살게 될까? 여러 명의 여성 교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벌도 받지 않고 여전히 목회하고 있는 목사가 살게 될까? 아들에게 대기업 같은 교회를 물려준 것도 모자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마귀라고 말하며 영적전쟁을 선포하는 목사가 살게 될까?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해서 반대한다”며 폭력을 휘두르고 저주 기도를 한 집사, 권사, 장로들이 살게 될까? 그들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나는 거부하겠다. 차라리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 천국에서 탈출시켜 함께 지옥에서 살겠다.

그날 그 광장에 갇힌 사람들이 ‘퀴어’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혐오하며 핍박하는 자신들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텅 빈 예배당이라는 ‘당신들만의 천국’에 고립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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