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그릇에 담긴 ‘뜨끈한 행복’

2003.01.08 15:53

◇쫄깃한 면발·담백한 국물…추울때 ‘딱 좋아’

우동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쫄깃하게 씹히는 면발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담백한 국물 한사발. 바람찬 겨울일수록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들이키는 우동 맛은 더 달콤하다. 원래 우동은 일본에서 시작됐으나 이미 세계적인 음식이 됐다. 서울의 우동집을 돌아보기 전에 일본 전통우동을 짚고 넘어가자.

일본에는 지방마다 우동 맛이 다르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시코쿠 지방의 사누키 우동이다. 사누키(讚岐)는 가가와현의 옛이름. 사누키 우동의 역사는 1,200년이나 됐다. 서기 806년 당나라에서 공부를 한 홍법대사가 일본에 돌아오면서 밀가루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워왔는데 그것이 바로 사누키 우동의 시초이다. 당시에는 수제비처럼 손으로 뚝뚝 뜯어서 삶은 뒤 소금에 찍어 먹었다고 한다.

사누키가 일본에서도 가장 유명한 우동의 고장이 된 것은 옥토에서 질 좋은 밀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는 해외순방을 할 때에도 전용기에서 사누키우동을 먹었다고 한다. 가가와 출신의 오호히라 전 총리는 고향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사누키 우동을 찾았다고 한다.

가가와현 주민들에게 사누키 우동은 자랑거리이자 관광상품이다. 얼마 전 가가와현을 찾았을 때 식사 때마다 우동이 빠지지 않았다. 하루 세끼 꼬박 우동을 먹었지만 질리지 않고 맛이 좋았다. 가가와 지방에는 ‘우동먹는 배는 따로 있다’는 속담까지 있다. 가가와현의 현청소재지인 다카마쓰에만 20여개의 우동학교가 있다.

우동은 크게 국물에 말아먹는 가케우동, 간장에 찍어먹는 자루 우동, 우동을 삶은 육수와 함께 먹는 가마우동 등이 있다. 예의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일본사람들이지만 우동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를 내어 먹는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본고장 우동을 맛볼 수 있는 우동집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일본까지 소문난 집…수타면발 일품-

◇서울 종로 1가 ‘겐조앙’

종로 1가 대로변의 자그마한 건물 2층에 자리잡은 겐조앙. 테이블은 고작 10여개 정도인 그리 크지 않은 우동집이지만 일본 특파원, 대사관 직원, 서울 주재 상사원 등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 우동맛이 일본에까지 소문이 퍼져 지난해에는 니혼게이자이 신문에도 소개됐다.

국물을 얹은 가케우동뿐 아니라 소스에 찍어먹는 자루우동, 생계란을 넣은 다마고도지우동 등 우동과 소바 종류만해도 20여가지나 된다. 손으로 직접 반죽해 만들어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수타면발도 일품.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달여 만든 쯔유(간장)도 짜지 않고 단맛이 배어있다.

집주인 원영민씨(47)는 “한가닥씩 소스에 찍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맛이 난다”면서 기자의 우동먹는 법을 타박했다. 우동 가락을 젓가락으로 툭 잘라 단면을 보여주며 좋은 면발은 십자성 모양이 나온다고 했다. 소바(메밀국수)는 간장을 많이 묻히지 않고 목으로 넘겨야 메밀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단맛이 나는 기쯔네우동에 여우(기쯔네)란 이름이 붙은 것은 여우가 단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등 우동에 얽힌 이야기들을 줄줄 풀어냈다.

겐조앙이 문을 연 것은 3년 전. 은행원으로 있다가 IMF 구조조정으로 퇴사한 뒤 우동집을 내볼 생각을 했다. 한국의 우동집에서 6개월 일을 배운 뒤 일본인들을 많이 아는 아버지의 주선으로 후쿠오카의 이름난 우동장인을 소개받았다. 일본에서 3개월 동안 우동기술을 배웠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대 1로 전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스승 야마오카 게이이치는 마부치 가메타로(작고)의 제자로 그가 3대째 우동기술을 대물림했다. 원씨가 서울에 겐조앙을 개업할 때는 스승이 3주 동안 일을 도왔다. 규슈에 딱 1권밖에 없다는 사누키우동에 관한 고서, 낡고 큰 양은냄비, 식당 앞에 세워두는 깃발도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수타로 쫄깃한 면발을 만드는 데만 네가지 과정을 거친다. 밀가루는 물론 소금물도 보름이상 숙성시킨 것을 쓴다. 소금물 하나도 염도계로 직접 잰다. 국물맛을 내는 데 쓰는 가쓰오부시(참다랑어포)도 3종류. 쯔유(간장)도 그가 직접 만든다. 겐조앙(元場菴)이란 가게 이름은 화계사 조실인 숭산스님의 제자 견양스님이 지었다. 글씨는 서예가 유성준씨가 썼다. 종로 1가 아시아나 빌딩 맞은편, 청진동과 제일은행 사이에 있다. 3,500~7,000원. (02)722-8233

◇집에선 이렇게 만드세요

가가와현 고토히라의 나가노 우동학교의 교장 마쓰나가 스미코(50·松永登子). 14세 때부터 우동을 만들었다는 그의 우동학교에는 만화 ‘철완 아톰’을 그린 데쓰카 오사무 등 명사들이 우동 만드는 법을 배우는 사진이 가득 붙어있다. 우동 강습을 시작한 것은 27년 전부터. 그가 얘기하는 사누키 우동의 장점은 쫄깃한 면발이다. 밀가루와 소금물 외에는 다른 것을 섞지 않는 것이 특징. 전분을 집어넣으면 쫄깃하긴 하지만 뒤끝이 담백하지 않다. 재료는 2인분 기준 중력분 250g, 물 150g, 소금 5g이 필요하다. 국물은 다시마 한조각과 국멸치와 가쓰오부시(참다랑어포). 가쓰오부시는 요즘 대형 할인매장에 가면 살 수 있다.

◇가볼만한 우동집 여기

서울 시내와 근교에 우동의 깊은 맛을 볼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값은 4,000~1만원대. 이중에는 일본에서 직접 솜씨를 배워온 우동집들도 있다.

서울 대학로의 기조암(02-766-6100)은 이름난 우동집. 우리밀로 만든 우동, 육수에 건져먹는 생우동 가마뎅, 찍어먹는 자루우동 등 다양한 우동을 즐길 수 있다. 손으로 직접 반죽한 수타우동이라고 자랑하는 만큼 쫄깃한 면발이 특징이다. 특히 간장소스에 찍어먹는 우동은 면발의 쫄깃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양천구 목동 아소산(02-2606-6667)은 사누키 우동 스타일을 고집하는 곳이다. 일본에서도 상등품으로 인정받는 고급재료를 쓴다고 한다. 기스네 우동, 우동정식, 아소산정식 등을 맛볼 수 있다. 우동 체인점 중에서는 삼성동 기소야(02-556-7739)가 유명하다. 특히 우리 스타일로 변형시킨 김치우동을 가장 많이 찾는다.

장충동 타워호텔의 한식당 아리수(02-2250-9256)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되는 맛있는 우동집이다. 돌냄비 우동이 일품인데 값이 1만5천원으로 약간 비싼 편이다.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동부이촌동에도 맛집들이 많다. 동문우동(02-798-6895)은 줄을 서서 먹는 집으로 자그마하지만 우동맛이 일품이다. 임권택 감독이 자주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삼익상가 지하에 있는 미타니우동(02-797-4060)은 일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현대아파트 11동 상가에 있는 보천(02-795-8730)도 우동맛을 보기 위해 서울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고양시 일산 경찰서와 현대밀레니엄 사잇길 단독주택가 맞은편에 있는 이즈미(031-914-0136)도 별미집. 10년전 삼청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3년전 일산으로 옮겨왔다. 주인 정선일씨가 오사카 우동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가쓰오부시에 우루메 등 고급식자재만 사용하며 삼청동 시절에는 총리는 물론 장·차관 등 고위관료, 재벌회장 등도 곧잘 들렀다고 한다. 소설가 함정임씨 등 문인들이 단골이다. 나베(냄비)우동과 가케우동, 자루우동이 별미다.

/최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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