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 폐지·자율고 전환 논란

2009.10.20 17:55

“선발방식 학교에 맡겨라” “점수로 줄 세워 사교육비만 늘렸다”

이명희 - 교육욕구는 본능… 성적우수생 갈 길 터줘야한다

이종태 - 애초부터 잘못된 출발이었다, 어학영재가 어딨나

토론자 | 이명희 공주대교수·이종태 한국교육연구소장

외국어고등학교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외고의 집단 반발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나라당 등 여권이 ‘외고 폐지 후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전환’을 주장하자 전국 외고 교장들이 반발, 영어듣기 평가시험 폐지 등의 새 입시전형안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나라당에서 외고를 자율고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사교육비 경감 차원이다. 외고 입시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될 정도로 과열돼 사교육비를 팽창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발시험이 없고 내신성적과 추첨 위주로 학생을 뽑는 자율고로 전환하면 외고 입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반면 외고 측에서는 외고를 폐지하면 평준화 보완 차원에서 수월성 교육을 추구해 온 순기능마저 없앨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정부와 여당이 사립학교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바꿀 수 없다며 입시제도를 고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폐지보다는 외고의 입시제도를 개선하면 해결된다” “외고의 개선 노력을 지켜봐가며 결정하자” “외고를 아예 일반계 고교로 전환하자”는 등 다양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지난 15일 ‘선발방법 개선을 통한 외고 존치’를 강조하는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학)와 ‘외고를 폐지한 뒤 일반계 고교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이종태 한국교육연구소장이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외고 폐지론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왼쪽)와 이종태 한국교육연구소장이 지난 15일 논란이 되고 있는 외국어고 폐지와 관련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정근기자

이명희 공주대 교수(왼쪽)와 이종태 한국교육연구소장이 지난 15일 논란이 되고 있는 외국어고 폐지와 관련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정근기자

이종태 한국교육연구소장(이하 이종태) = 외고 관련해 정책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외고가 어떤 배경을 갖고 설립됐는지를 살펴보면 외고는 애초에 특수목적고가 아니라 학부모들의 선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평준화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학교’로 분류됐던 외고를 정식 교육과정으로 채택하고 특목고로 지정했습니다. 선발 욕구를 반영한 결과인 셈이죠. 사실 어학영재란 표현은 어색합니다. 어학영재를 어떻게 판별하겠습니까.

이명희 공주대 교수(이하 이명희) = 외고가 외국어 영재라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설립된 것은 인정합니다. 외고는 평준화를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특목고로 인정되고 확대됐습니다. 계급적 시각에서 접근하면 중산층 수요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74년 평준화 이후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이 변했습니다. 교육 수요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이를 수용해야 했는데, 다양한 학교에 대한 국민 수요를 반영해서 탄생한 것이 외고입니다.

이종태 = 학생 선발과정을 보면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고를 설립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외고 입시를 보면 성적순으로 공부 잘하는 상위권 학생만 뽑겠다는 것이죠. 서울지역에서 기존 외고 4개를 합법화하고 2개를 더 설립하면서 처음부터 내신성적 석차백분율 3% 이내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했습니다. 말은 어학영재를 기르겠다고 해놓고 내신성적으로 학생들을 줄세운 것입니다. 중학교 교육과정을 뛰어넘는 영어듣기 평가는 이미 다양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외고 입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비가 증가한 것이지요.

이명희 = 외고 입시가 사교육비를 높이는 주범이라는 데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외고를 없앤다고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고를 없애면 분명 다른 형태로 사교육비가 늘어날 겁니다. 외고가 사교육 진원지이기 때문에 무조건 외고를 없애면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단순논리입니다. 서울대를 없애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대학입시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교육받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입니다. 외고를 없앤다고 교육열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외고가 아니더라도 상위층의 사교육비가 집중되는 이유는 교육열 때문입니다. 돈이 있든 없든 공부를 잘하면 부모가 투자하는 게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입니다.

이종태 = 외고를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논리에 100% 공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서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정책은 낮은 수준의 정책이라 생각합니다.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원천적으로 다양하고도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정책입니다. 문제는 수월성 교육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필답고사라는 유일한 기준만으로 뽑는 데 있습니다. 외고를 문제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외고 입시가 성적경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고를 북돋지 않고 선행학습을 통해 시험점수만 올리도록 유도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 측의 자율형 사립고 전환에도 반대합니다. 자율고 역시 내신성적으로 줄을 세워 상위권을 선발합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성적에 의한 선발은 교육 미래를 어둡게 할 뿐입니다.

이명희 = 선발방식이 더욱 교육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획일적인 점수로 평가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선발방식을 다양하게 개선하면 됩니다. 소외계층을 위해 외국처럼 부모의 직업적 다양성, 소득 등을 다양하게 선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선발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외고 자체를 반대해서는 안됩니다. 일반 국민도 자녀를 보내고 싶어하는 학교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명품 학교’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왜 외고만 우수한 학생들을 뽑게 하는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외고와 과학고밖에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이종태 =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견해를 밝히고 싶습니다. 선발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생각이 같습니다. 하지만 점수로 선발하는 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선 외고나 자율고나 모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명희 = 자율고 전환에는 반대합니다. 현 정부가 끊임없이 학교 자율을 강조해왔는데 획일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이에 어긋납니다. 또한 지금처럼 여러가지 규제가 있는 상태에서 자율고로 전환해봐야 의미도 없습니다. 학교가 최소 필수 교육과정 요소를 줄이고 나머지 교육과정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다 풀어줘야 합니다. 모든 학생이 똑같은 교육을 받는 한 사교육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종태 = 그렇다면 외고로 인한 지금의 사회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요즘 외고 졸업생의 사회 진출 상황을 보면 서울대 등 주요 대학 입학 비율, 사법시험 합격 비율, 중앙정부 관료층 점유비율이 평준화 이전 명문고가 존재했던 시절보다 심합니다. 곧 외고가 학벌사회를 조장할 개연성이 큽니다. 외고를 그대로 두면 계층화를 부추기는 역작용이 일어납니다.

이명희 =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 개개인의 선택을 국가와 사회가 존중해주는 분위기여야 합니다. 외고가 학생을 시험점수로 획일적으로 뽑지 않고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선발방식을 취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잘못됐으니 외고를 없애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문과 중에서 외고가 가장 인기 있다는 현상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같은 현상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종태 = 물론 개인 선택은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외고가 잘못된 길로 운영되고 있지만 외고를 선호하는 현상은 존중돼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운영을 제도적으로 올바르게 고쳐야 합니다. 지금까지 외고 운영자들의 교육 소신과 안목으로 봤을 때 스스로 옳은 방향으로 고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외고라는 제도는 문을 닫고 새로운 길로 가야 합니다. 외고는 존속해서는 안됩니다. 또 현재와 같은 자율고 전환은 당장의 인기만 노린 포퓔리슴에 다름없습니다.

이명희 =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교육계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국가의 일은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배정하는 겁니다. 나머지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하게 둬야 합니다. 좋은 제도로 운영될 수 있게 자율성을 주면 외고 문제는 완화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외고보다 더 많은 특성화 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런 가능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논의의 초점이 그런 방향으로 봐져야지 외고를 살리거나 죽이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가 아닙니다.

이종태 = 교육이 잘못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고는 어학영재를 기르는 게 아니라 대학을 가는 지름길로 인식됐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외고에서 정말 외국어를 흥미있게 가르치도록 운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면 인정할 수는 있지만 이미 학교를 믿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반고로 바꿔서 운영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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