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에 완패한 호텔신라… ‘위기대처법’부터 배우세요

2011.04.21 20:58 입력 2011.04.22 00:10 수정
글 유민영 http://goodcomm.khan.kr

‘한복 사건’ 거짓 사과로 첫 대응, 사태 더 키워…‘정직’이 최고 전략

[e-세상 속 이 세상]1인 미디어에 완패한 호텔신라… ‘위기대처법’부터 배우세요

지난 12일 오후 6시40분, “한복은 부피감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식사를 방해할 수 있는 위험한 옷”이라며 호텔신라의 뷔페식당 파크뷰의 매니저는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의 출입을 막았다. 재차 확인했지만 한복과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은 출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저녁 9시에 트위터에 이씨의 지인이 이런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취재에 들어간 파워 트위터러에게 파크뷰 직원은 “점심때까지는 금지였는데 총지배인 지시로 한복 입장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이혜순씨는 이를 보도한 <위키트리>에 전화를 걸어 “호텔신라의 거짓말에 어이가 없다,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지자 호텔신라 측은 이씨의 지인까지 동원해 호텔 최고위급에까지 보고했다며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사건 내용은 천리, 만리를 달렸다. 트위터는 걷잡을 수 없었고 파장은 컸다.

[e-세상 속 이 세상]1인 미디어에 완패한 호텔신라… ‘위기대처법’부터 배우세요

다음날 주요 포털은 메인화면에 기사를 올렸다. 실시간 이슈 검색어로 이 내용은 더 널리 알려졌다. 최단시간에 최다 댓글이 붙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는 13일 오전 당사자를 찾아가 “민망해 고개를 못 들겠다”며 사과하고 용서를 받았다. 호텔 측은 임직원 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뷔페 특성상 지난해부터 한복을 입은 고객에게 일일이 주의점을 안내하고 있다” “직원의 착오로 미숙하게 안내됐다”고 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2009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알아냈고, 거짓 사과에 더욱 분노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격한 비판과 한 국회의원의 쇼 같은 제스처가 뒤를 이었다.

그 후 일간지와 방송에서는 호텔신라 기사가 다소간 잦아들었다. ‘돋보이는 감성경영’이라는 부제를 단 인터넷 경제지의 호텔 홍보성 기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는 멈추지 않았고 해외토픽에도 올랐다. 그러자 17일 호텔신라는 “왜곡된 내용이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다” “마녀사냥처럼 일방 매도되는 것이 당황스럽다”고 했다. 최악의 패착이다.

AFP의 호텔신라 보도기사

AFP의 호텔신라 보도기사

왜 그랬을까? 이번 사건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무기로 한 1인 미디어’와 ‘움직이지 않는 성을 가진 호텔신라’의 대결이었다. 단계별 위기관리와 이슈에 대한 인식, 미디어전략 등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가장 먼저, 이혜순씨 사건이 초기에 윗선에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호텔신라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개설되어 있지 않았고 전통적 미디어 관리에만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징후가 포착되면 정확한 사실을 살펴 위기의 단계를 정하고 메시지를 통일한 다음 스피커(의사소통의 통로)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첫 대응부터 잘못됐다. 전화받은 담당자는 너무 당황했거나, 잘못된 지침을 그대로 전했을 것이다. 상황이 이미 발생했는데 왜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거짓말은 사건을 예측할 수 없는 단계로 발전시키는 휘발유다.

최고의 전략은 정직이다.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 최고경영자는 이씨에게 사과했지만, 임직원 명의의 사과는 애매하다. 규정은 없었고 직원의 착오라는 얘기다. 앞서 있었던 금지가 풀렸다는 직원의 답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네티즌 수사대의 ‘신상털기’가 시작됐고 곧바로 유사사례가 등장했다. 모든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청중은 호텔신라의 사과를 거짓으로 규정했다. 더욱이 호텔신라는 이슈를 정확히 인식하지도 못했다. 문제는 효율성-영업 원칙이 아니라, 한복 무시가 재벌가 삼성의 특권의식과 오만함으로 비춰졌다는 데 있다. 상식과 가치, 문화의 문제로 폭발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거짓말’ 문제는 말끔히 해명되지 않았다. ‘잘못된 규정’은 없었고 ‘직원의 잘못’만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부진 대표는 당사자에게만 사과했을 뿐, ‘청중(대중)’에게는 임직원 명의의 사과문만 발표됐다. 위기가 어느 단계 이상이 되면 책임은 CEO가 지고 가야 한다. 호텔신라 문제를 왜 삼성그룹 트위터를 이용해 사과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삼성가의 문제로 보는 상황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전통 미디어는 이부진의 사과를 호평했지만 새로운 미디어의 대중은 그렇지 않았다. 17일 개설된 호텔신라의 트위터는 18일 오전 직원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응원가로 한창이다. 굳이 이때 왜? 이것은 아니다. 게다가 ‘마녀사냥’이란 메시지는 나오지 말았어야 할 단어이다. 맞을 때는 맞고 지나가는 것이 좋다. 그런 뒤 이미지 관리, 제도적 개선, CEO 브랜딩 프로그램을 차차 가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글 유민영
■ 블로그 주소 http://goodcomm.khan.kr
글쓴이는 피크15커뮤니케이션 대표 컨설턴트로, 정부에서 일하고 기업 컨설팅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민영의 커뮤니케이션 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