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랭킹에서 나오라

2019.01.11 20:43 입력 2019.01.11 20:44 수정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겐트 대학은 세계 대학 순위 50위에 드는 유수한 대학이다. 이 대학의 총장은 올해 초 연설에서 새로운 대학 모델로의 전환을 내걸면서 무의미한 “랭킹” 경쟁에서 빠져나오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큰 방향은 “대학을 관료들의 손에서 학자들의 손으로”라는 것으로서, 연구자들, 여러 학과, 다른 대학과의 무의미한 순위 경쟁으로 인해 낭비되는 시간과 자원 그리고 진정한 지식 탐구를 방해하는 온갖 관행들을 철폐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조치의 하나로 2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개인, 학과, 대학에 대한 각종 평가를 5년 단위로 늘리는 개혁을 약속하였다. 이 사례에서 고무된 우리들은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학의 혁신과 개혁이 현행의 “랭킹”이라는 관행과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읽기]대학, 랭킹에서 나오라

먼저 대학이라는 곳이 이른바 순수한 진리 탐구의 장이므로 지고지순한 영구불변의 모범을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부터 걷어내자.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의 형성 과정은 그 나라의 권력 구조와 지배 계급의 형성 과정과 불가분으로 엮여있으며, 특히 20세기 이후에는 자본주의와 산업 사회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온 제도이다. 자본주의도 산업 사회도 또 한 번의 큰 변화의 물결로 요동치고 있는 21세기의 오늘날 대학은 또다시 사방에서 혁신과 변화를 요구하는 안팎의 함성 소리에 휩싸여 있으며, 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만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의 두 바퀴를 어떻게 바꾸고 개선하고 또 새롭게 이어나갈지에 대한 혁신의 아이디어와 사례들도 사방에서 축적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존재하는 대학에서 이러한 변화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뽕밭과 바다가 뒤바뀔 정도로 크게 변했건만 대학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은 실로 놀랄 만큼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적지 않은 원인이 “랭킹”이라는 관행에 있다고 믿는다. 모든 평가는 보수적 성격을 본성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평가의 가치나 그것을 평가하는 방법이나 모두 철학자 피어스가 말한 바 있는 기존 사회의 “사유 습관”이라는 것에 철저하게 근거를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0년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방송 데뷔는 어느 TV 방송국의 신인 경쟁 프로그램이었다. 파격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던 그들의 무대에 대해 기존 가요계의 시각을 대표하는 이들이라 할 심사위원들이 각종 혹평을 쏟아냈던 것이 기억에 선하다. 대학 순위를 평가하는 구체적인 기준과 평가 방식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그 근거라는 것이 기실 황당하고 근거 없는 천편일률의 통념을 그럴듯하게 표준화해 놓은 것에 불과한 경우를 왕왕 발견한다.

대학은 이 어처구니없는 줄세우기에 미친 듯이 달려들 수밖에 없다. 뻣뻣하고 근엄하게 권위와 위엄을 내세우는 대학이라는 시스템 전체가 이 “랭킹” 앞에서는 팬티만 입고 선착순 뺑뺑이를 도는 이등병만큼 초라하고 비굴해진다. 그래서 억지 영어 강의와 유학생 유치를 필두로 오만가지 코미디 소재가 무궁무진하게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도 없는 일이다. 학생 모집과 등록금 수입은 물론 각종 연구의 수주를 포함한 대학의 모든 수익 사업이 여기에 절대적으로 달려 있으니까. 이 상황에서 혁신이 벌어질 수 있을까. 있기도 하다. 혁신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지수화하여 “혁신”이라는 평가 항목을 만드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게 정말로 현재의 산업 사회가 요구하는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혁신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또 하나의 멋진 코미디 소재가 나왔다고 반길 이들은 많을 것이다.

이런 제안을 해보고 싶다. 아예 순위에서 멀찍이 밀려나 있는 대학들은 “1등만 기억하는 야박한 세상”에서 별 희망도 없는 순위 경쟁에 뛰어들어 용쓸 일이 아니라 차라리 후련하게 “랭킹 탈출”을 선언하는 게 어떨까? 그래도 건물과 교수와 학생과 도서관과 실험실 등 모든 교육 자원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대학 교육의 일신을 위한 온갖 혁신과 실험의 기회이다. 이제는 한국 학부모들의 로망이 되어버린, 고전 100권 읽고 졸업하는 대학이 꼭 세인트존스뿐일 이유도 없으며, 전 세계를 돌면서 역동적으로 세상과 지식과 부닥치는 대학 교육을 꼭 미네르바 대학에서 받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혁신은 기존 것의 파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진부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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