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미동맹의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2019.01.07 20:53 입력 2019.01.07 21:01 수정

2018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사람들 상당수는 그것이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한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적인 언행은 장삼이사의 이야기 소재로 오래 회자됐다. 한반도에 핵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바야흐로 열릴 것으로 모두 가슴이 부풀었다. 그땐 그랬다.

[세상읽기]누가 한·미동맹의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이젠 한·미동맹이 위기라고들 수군거린다. 비핵화를 놓고 북한과 샅바를 잡고 혈투를 벌이는 데 ‘아마추어’ 인사들이 국가안보 주요 자리를 꿰차고 있어 한·미 간 의견조율이 제대로 되질 않아 핵협상 교착을 자초했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외교부 ‘워싱턴스쿨’로 대변되는 인물들의 대거 퇴진이 동맹위기 지표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불이 났는데도 유능한 소방수가 없다는 장탄식도 함께 터져 나온다. 진실의 실체에 얼마나 근접한 주장인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통으로 불리는 외교부 고위급 인사 다수가 약속이나 한 듯 세종로 청사를 떠났거나 한직으로 밀려난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1·2차장 모두 이전부터 북핵과 한·미 문제에 천착한 전문가들이 아니기에 ‘청와대 정부’에 미국통이 없다는 주장을 억견(臆見)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전성시대를 향유한 ‘워싱턴스쿨’이 당시 한·미관계를 얼마나 견고하고 촘촘하게 다져놓았던가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판 내지 검증의 잣대가 적용되어야 이치에 맞다. 이 시기에만 무려 다섯 차례의 북한 핵실험이 실시됐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를 추수(追隨)한 것 이외에 비핵화 관련해서 어떤 진전을 이루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재정립은 워싱턴스쿨의 유무와 관계없이 ‘기후변화’처럼 불가피하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정의와 공정성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이상을 무시하고 미국 우선주의 깃발만 높이 치켜든 트럼프시대에 일방주의가 강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이 어떻게 결말을 짓든 트럼프 외교정책은 예비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 방향은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이다.

역외균형은 고립주의를 지향하지는 않지만 지역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당국이 스스로 해결할 것을 주문한다. 정글로 불리는 국제 문제에 미국이 사사건건 해결사로 나서주길 기대하지 말고 자국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것이다. 동맹이라도 안보 무임승차를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장사꾼 트럼프는 동맹국들에 주는 방위비 보조금을 ‘부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에 비유했다.

주류 외교정책 엘리트들에게 적대적인 트럼프는 동맹국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하는 막대한 자원을 국내 인프라, 교육 그리고 연구·개발 분야 등에 투자하는 것이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여긴다. 그래야 미국의 우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스티븐 월트 교수처럼 역외균형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미군의 해외 주둔 역시 특정 국가가 해당 지역 패권국가에 의해 중대한 안보위협을 받을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국익을 철저히 따져 극단적 위기상황이나 전쟁이 이미 발발한 경우가 아니라면 선택적 개입만 하자는 입장이다.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 접근법이다.

또한 역외균형론자들의 주된 관심이 새로운 패권국가의 등장임을 감안할 때, 미국에는 중국의 부상이 가장 큰 도전이자 위협요소이다. 중국을 여타 국가들과 연합내지 동맹을 유인할 경제·군사적 능력을 갖춘 잠재적 패권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처럼 중국을 견제할 감제고지(瞰制高地) 역할을 한국이 나서서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시대 한·미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담대한 결심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100쪽이 넘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을 정독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오롯이 문재인 정부가 떠안고 가야 할 형틀일 수 있겠다는 비감(悲感)이 새해 벽두부터 떠올랐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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