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사회로 가기 위하여

2021.08.17 03:00 입력 2021.08.17 03:01 수정

[박래군의 인권과 삶]노동존중 사회로 가기 위하여

“포스 아세요?” 요즘 청소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 후배 활동가가 갑자기 물었다. “그걸 왜 몰라?” 내가 아는 포스는 ‘힘’(force)이었다. 포스가 느껴진다고 할 때의 그것 말이다. 그러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포스기가 뭔지 모르는 나를 타박했다. 그러면서 요즘 청소년들은 대부분 포스기를 안다고 했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알바를 많이 하기 때문이란다. 포스기를 다룰 줄 모르면 알바 구하기도 어렵단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일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올해 청소년 통계를 보면, 13세에서 24세 사이 청소년 10명 중 4명(39.9%)은 알바 경험이 있다. 중·고생도 10% 가까이 알바를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노동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노동현장에 나간다. 포스기를 다루는 방법은 쉽게 익힐지 몰라도 정작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적이 없이 험한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다.

위험한 일일수록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5년 전 사망한 구의역 김군은 만 19세였고, 김용균은 만 24세였고, 이선호는 만 23세였다. 이들은 하청업체 소속이었고, 비정규직이었다. 그 노동현장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 위험을 알았다 해도 어쩔 수 없이 위험한 노동에 내몰렸다. 오늘도 거리를 내달리는 라이더들은 언제 부상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노동은 신성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노동은 천한 것, 불온한 것이었다. 그러니 노동교육을 하자고 하니까 즉각적으로 나오는 반응이 극우단체의 “노동권은 공산주의자들의 사회주의화 전략”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노동교육은 사실상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이다. 학교에서는 1년에 2시간의 단기 교육밖에 없으며, 그것도 외부 강사의 특강으로 때운다. 겨우 근로기준법 정도를 설명하면 시간은 다 끝난다. 한때 ‘노동존중’을 슬로건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지만,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다행인 것은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적극적으로 내년에 마련될 국가교육 총론에 노동교육이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하고, 13개 광역시·도에서 노동교육과 관련한 조례를 제정하거나 교과서를 만들어 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노총도 학교 현장에서 노동교육 도입에 적극적이고, 국회에는 법안도 발의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 한 요소인 노동에 대한 교육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한국노동교육원이 2018년 12월에 낸 ‘노동교육의 진단과 합리화’란 보고서는 326개 학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준다.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94.8%”로 나타났고,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한 이유로 ‘노동의 가치와 인권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고 하지만, 응답학교의 42%는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노동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 노동교육을 하기에는 난관이 너무 많다.

독일에서는 1976년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라는 교육 3대 원칙을 치열한 토론 끝에 이끌어냈다. 강제적 교화나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학교 수업시간에도 쟁점들을 회피하지 말고 논쟁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판단하게 하며, 정치적인 상황들을 고려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객관화하는 능력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독일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일본 등 우리가 아는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노동교육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다루어진다. 프랑스는 단체협약이나 파업 전략에 대해서도 학교에서 교육한다. 노동교육이 당장 어렵다면 우리도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위한 대토론이라도 시작했으면 좋겠다.

노동교육의 목적은 노동의 가치와 역사 배우기만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노사 간의 관계 맺기에 있다. 노동교육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노동교육을 실시한다고 해서 당장 노동천시 사회가 노동존중 사회가 될 리는 없다. 그렇지만 미래에서라도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발 떼기는 될 것이다. 2022년에는 학교 교과과정 개편 과정에 노동교육이 들어감으로써 유엔의 인권규약 보고서 심의 때마다 후진적인 노동 문제들로 지적받는 창피한 국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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