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소년들의 무덤과 과거사

2021.06.22 03:00 입력 2021.06.22 03:01 수정

[박래군의 인권과 삶]선감학원 소년들의 무덤과 과거사

지난주 일주일 동안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책에 쓰기 위한 사진도 찍고, 안 가 본 현장도 가 보고, 몇 년 전 가 본 현장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간 곳은 울주와 부산 지역의 형제복지원 자리였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거나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해 버린 현장들이다. 특히 형제복지원의 거대한 시설이 들어찼던 부산 사상구 주례동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렸다. 복지원의 생존자는 아파트 단지 뒷산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맞아 죽은 이들의 무덤이 있었고, 무덤 위에 십자가가 계속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그냥 야산일 뿐이다. 기록에는 513명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죽어나갔을지 아직은 모른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대전 동구의 산내 골령골(행정 지명으로는 곤령골)에서는 유해 발굴이 한창이었다. 지난해 유해 발굴 때도 들러봤는데 나뭇가지 삭은 것 같은 사람의 뼈들이 엉켜 있었다. 한 차례 총살해서 묻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또 죽여서 묻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총살한 자리를 다시 조사하고 있다. “뒤로 묶어서는 엎어놓고 한 발로 누르고 머리에 총을 쏴서 죽였다”고 당시 미군이 찍은 사진을 분석한 활동가가 설명한다. 그런 크고 작은 무덤들이 1㎞에 걸쳐서 제8학살 추정지까지 있다. 경남 산청군의 외공리에서는 여성과 어린아이 뼈도 엄청 나왔다. 거창 지역에서도 어린아이들까지 학살당했다. 거창 박산골 앞의 공유천에는 물고기들이 그해 따라 살이 엄청 올랐다고 한다. 주민들은 박산골에서 흘러나온 핏물을 먹고 물고기 살이 올랐다며 그해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고 했다. 골령골에서도 사람들이 죽고 난 뒤 심은 고구마며 감자가 사람 머리통처럼 컸다고 한다.

마지막 답사지는 선감학원이었다. 대부도 경기창작센터가 들어선 곳이 1941년부터 1982년까지 선감학원이 있던 자리다. 경기창작센터 건너편 야산, 도로변에 수백 평의 공터가 있다. 그곳에 가 보니 개망초가 뒤덮고, 엉겅퀴가 꽃 피고, 쑥들이 지천이었다. 그 수풀 속에 100명도 넘는 소년의 무덤들이 있었다. 얕게 묻은, 무덤이라고도 할 수 없는 봉분들이 풀에 덮여 있었다. 선감학원에서 맞아 죽은 이들의 시신을 지게에 지고 와서 여기 묻었다고도 하고, 탈출하다 갯벌에 빠져 죽은 소년들을 여기에 묻었다고도 한다.

어디를 가도 수습되지 않은 유골들이 묻혀 있다. 여행지마다 마주쳐야 했던 무덤들은 우리의 아픈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무덤들과 관련된 사건들은 아직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 1987년 이전까지는 감히 무서워서 진상을 규명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국가가 나서서 애도하지도 못하게 했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범죄시했다.

거창 합동묘와 제주 백조일손지묘에 가면 5·16 쿠데타 직후에 군사정권이 깨버리고 훼손한 추모비가 있다. 반공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광범한 학살 위에 건립된 반공국가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형제복지원 연구팀’이 연구결과를 통해 밝히고 있듯이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인신매매국가’의 모습까지 보였다. 그 인신매매국가에서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하여 조사에 착수했다. 1기 위원회가 미처 매듭을 짓지 못하고 종료된 지 10년 만이다. 정근식 위원장은 “진실을 바탕으로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 세대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기 위원회는 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일부, 군사정권 시기에 벌어졌던 유서 대필 조작사건과 같은 여러 사건들의 진실을 규명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럼에도 1기 위원회는 정당에서 추천된 위원들과 보수언론들의 계속된 딴지걸기와 그를 통한 정치화로 인해 조사과정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런 만큼 피해자와 유족들의 고통은 지속되었다.

10년 만에 다시 열린 진실화해위원회가 1기 때의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대전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과 선감학원 소년들의 무덤 앞에서 우리는 제대로 위령제라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한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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