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라면, 지금 무슨 말을 할까

2021.12.28 03:00

살다보면, 매일 마주하는 얼굴이 있다. 내겐 김근태이다. 햇수로 5년째, 책상 위에 김근태재단이 만든 달력을 세워놓았다. 세월 가도 64세 청춘에 떠난 그의 기억이 애틋하고 새로워서일 게다. 사색하고, 싸우고, 경청하고, 사자후를 토하고, 환하게 웃고…. 달력 속 김근태의 눈은 열두 달의 온도와 빛깔과 메시지가 다르다. 아니, 그도 그런 눈으로 미련이 많았을 세상과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2011년 12월30일, 그가 죽고 10년이 흘렀다. 김근태는 2012년 영화 <남영동 1985>로 그려졌다. 10번이나 전기와 물로 그를 할퀸 고문은 전두환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조종이 됐다. 2013년 김근태재단이 새로 출범하고, 2016년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이 제정됐다. 그를 칠성판에 묶은 남영동 대공분실 ‘대장방’(515호실)은 2018년 민주인권기념관이 됐고, 지난 4일 도봉산 자락에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세워졌다. 김근태는 그렇게 세상에 녹아들고 함께 숨쉬는 역사가 됐다.

그는 “서서 죽길 원한” 민주주의자였다. “평화가 밥”이라던 평화주의자였다.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따뜻한 시장경제를 위해서”라고 했다. ‘소(小)미국’보다 ‘큰 스웨덴’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 김근태도 정치는 소수의견일 때가 많았다. 2002년 정치자금을 양심고백할 때도, 2006년 분양원가 공개와 사회적 대타협(뉴딜)을 주창할 때도 그랬다. 풍파를 마다않고 너무 앞섰으니까…. 그때마다 그는 외로웠다. 묵직했지만 늦고, 함께 갈 담론과 사람이 많은 ‘시대의 햄릿’이었다. 살아 있다면, 김근태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플까. 고개부터 저을 것이다. 미래·민생 토론은 뒷전이고 ‘사과밭’이 된 대선에 그의 생각과 지론을 쏟아낼 듯싶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줘야 = 김근태는 “경제 성장이 인간의 삶에 복무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경제만 크고 시민은 힘겨운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민주주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온다는 데 공감했고, 먹고사는 답과 믿음을 못 주는 쪽은 여도 야도 선택받을 수 없다고 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 = 그는 2008년 총선에서 졌다. 그런 뒤에도 부단히 희망버스에 올랐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대통령도 구의원도 다 직업으로 보면 안 된다.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왜 나여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범띠 새해가 설레는 사람들이 새길 말이다.

#주먹 쥐고 악수할 수 없다 = 그는 2007년에 먼저 대선 출마를 접고 ‘민주대연합’의 물꼬를 텄다. 결행 소식이 얼핏 들린 날, 김근태의 사람들은 밤새 부인했고, 신문 제작이 끝난 새벽에야 맞다고 실토했다. 옥신각신한 끝에 그 뉴스를 싣고 끝내 인쇄되지 못한 그해 6월12일자 경향신문 1면 마지막 판을 다시 꺼내 본다. 김근태는 “우리가 뭉쳐야 용서해달라, 지지해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2022년을 점령하라 = 김근태는 병마와 싸우던 2011년 10월18일 블로그에 “2012년을 점령하라.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썼다. 세상에 보낸 유언이었다. 그러나 2012년은 박근혜가 점령했고, 그의 뜻은 혼군(昏君)이 탄핵된 5년 뒤에 이뤄졌다. 김근태라면, 세상의 방향을 정할 2022년을 다시 점령하라고 했을 테다.

생전의 그는 ‘희망’이란 말을 좋아했다. 긴 수감 시절 기적에 놀라 깬 새벽에(서대문구치소), 발목 부러진 비둘기의 아픔을 공감하며(강릉교도소), 면회 온 자녀들이 불러준 ‘등대지기’를 듣고(홍성교도소) 아내 인재근에게 희망을 놓지 않는 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정치하며 쓴 에세이 <희망은 힘이 세다>에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김근태스러운 것은 늘 속도보다 방향이었다.

대나무가 마디마디 오르듯 시간은 매듭지으며 흐른다. 김근태를 보내고 첫 10년이 지났다. 꺾이는 5년마다 그는 더 소환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기일(忌日)이 늘 대선 70일 전이므로…. 하늘이 파랗던 12월 어느 날, 도봉산·수락산이 다 보이는 김근태도서관에 들렀다. 특별전시전 ‘가야 할 미래, 김근태’가 열리고 있었다. 제목이 명료했다. 김근태의 민주주의는 더 확장하고 진화해야 한다. 정치에서 경제로, 기후·생태로, 여성과 청년으로…. 29일 10주기 추도식이 열릴 마석에도 오늘처럼 따뜻한 볕이 들었으면 한다. 도서관을 나서며, 오랜만에 그의 이니셜을 읊조렸다. “GT! 당신이 옳았습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