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예술가들의 사랑과 질투’

2010.10.27 21:32
임영주 기자

2인조 웹아티스트 ‘장영혜중공업’ 6년 만의 국내 전시

관객들 정신을 빼놓는 빠른 화면, 그 안에 뭔가 연인 갈등 느껴지는데…

주도권은 전적으로 작품이 갖고 있다. 작품을 오래 쳐다보거나, 특정 부분을 뚫어지게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2인조 웹아티스트그룹 ‘장영혜중공업’의 작품 앞에서는 가질 수 없다.

프로젝터가 비춘 화면이나 LED 모니터 등 크고 작은 화면에 ‘HOW’ ‘TO’ ‘YOU’ ‘수요일 밤 그는 술에 절었다’ ‘그는 정신이 나가서 자기를 떠나지 말라고 빈다’ 등의 영어와 한글 단어·문장들이 번갈아 등장한다. 글자 크기는 크게 또는 작게 변하고, 글자가 화면에 등장하는 속도와 모양 또한 제 맘대로다.

이번 전시 내용을 소개하는 ‘예고편’.

이번 전시 내용을 소개하는 ‘예고편’.

관람객이 따라가기가 다소 벅찬 속도로 앞서 지나가는 단어와 문장은 조용한 듯하면서도 비트있게 깔리는 재즈풍의 음악과 어울려 관람객의 정신을 빼놓는다. 예측할 수 없는 패턴으로 지나가는 텍스트와, 텍스트의 움직임과 한 몸을 이루는 음악의 능수능란한 향연에 관람객은 질질 끌려가듯 작품의 흐름을 일방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작품과의 기싸움에서 지고, 작품에 복종하기로 체념하고 나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구체적인 배경을 알지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화려한 작품이 넘치는 이 시대에 단색의 텍스트와 음악만으로 관람객을 이토록 강렬하게 붙잡아두는 작품이 있었던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영혜중공업의 개인전 ‘다운 인 후쿠오카 위드 디 벨라루시안 불르즈(DOWN IN FUKUOKA WITH THE BELARUSIAN BLUES)’에는 플래시 프로그램을 이용한 텍스트 애니메이션 8점이 전시되고 있다.

작품 ‘총알은 아직 내 왼손목에 박혀 있다’.

작품 ‘총알은 아직 내 왼손목에 박혀 있다’.

1999년 설치작가였던 장영혜와 중국계 미국 작가 마크 보주가 함께 만든 장영혜중공업은 2004년 로댕갤러리 전시 이후 6년 만에 국내 전시를 열었다. 당시 삼성을 포함,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자본·욕망 등을 비판하는 작업을 삼성이 운영하는 전시공간인 로댕갤러리에서 선보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엔 동성애 관계였던 19세기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폴 베를랭 사이의 사랑과 질투, 갈등 이야기를 현 시점의 예술가 두 명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텍스트와 음악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0년과 2001년 두 차례 웹아트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웨비상(Webby Awards)을 수상했고 2003년에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하는 등 해외에서 더욱 인정을 받고 있는 이들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총 16개 언어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신작을 제외한 작품은 웹(yhchang.com)에서도 볼 수 있다. 11월7일까지. (02)228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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