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출과 압축’ 물체의 특성만 화폭에 담는다

2011.09.15 21:41
유인화 선임기자

‘추출 작가’ 김정향· ‘압축의 조각가’ 이환권 개인전

압축과 추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작업을 거부하고 물체의 특성만을 화폭에 담는 작가들이 가을 화단을 장식한다. ‘추출작가’ 김정향의 개인전 ‘Spiritoso’가 20일부터 10월30일까지 서울 한남동 갤러리bk에서 열리고, 압축의 조각가 이환권의 개인전 ‘Scenes from the Ordinary Days’가 10월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컨템포퍼리에서 이어지고 있다.

■ 자연의 이미지를 추출한 연금술

서양화가 김정향(56)은 상상력의 정거장에 자연을 담는다. 하늘·구름·바람·꽃·빗방울·햇빛 등 자연의 풍광에서 다양한 느낌들을 추출해 추상적 언어로 녹여왔다. 뉴욕타임스가 “굉장히 시각적이면서도 다양한 이야기와 시적 감동, 아름다움을 동시에 구현한다”고 평가할 만큼 그의 작품은 잠재적 세계와 흔적의 세계를 시적 감흥으로 풀어낸다. 구상과 추상, 음과 양의 대비가 겹치면서 화려한 추상으로 극대화된다.

자연의 속삭임을 풍성한 색채로 해석한 김정향 작가의 ‘살랑거림(Stirring)’(2011), 152×213㎝

자연의 속삭임을 풍성한 색채로 해석한 김정향 작가의 ‘살랑거림(Stirring)’(2011), 152×213㎝

“최소한 15번 이상 겹치기 작업을 해야 작품이 탄생됩니다. 내가 원하는 시적 공간을 찾다보니 칠하고 깎아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미지의 세계, 잠재의 세계가 충분히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15겹’ 작가의 작업은 매우 ‘비경제적’이다. 채색한 부분을 샌드페이퍼로 갈고 그 위에 오일스틱이나 오일파스텔로 꽃·별·눈꽃 패턴 등을 밝은 색으로 덧칠한다.

채색 부분이 마르면 다시 칠해진 부분을 지우거나 다른 색으로 덧칠하고, 꽃씨나 원 모형을 그려가며 덧칠하고, 다시 부분적으로 갈아내고 덧칠하며 15겹 이상을 만든다. 작품이 무거운 이유도 15겹의 물감 무게 때문이다. 230호(152×213㎝), 150호(180×131㎝) 등 사다리에 올라가 그려야 하는 대작들이지만 15겹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색감 때문인지 편안하고 부드럽다.

“가끔 작업이 막힐 때도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20겹을 칠해도 완성되지 않습니다. 힘들지만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작업이 술술 풀리기도 하고요. 4년 걸려 완성한 적도 있지요.”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후 뉴욕에서 30년 동안 활동해 온 그가 서울에서 대규모 전시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선 오는 10월4일부터 파리 갤러리 카플란 마티뇽에서 열릴 김정향 개인전에 출품할 보라색 작품 ‘숲 속의 향기’도 선보인다.

대작을 해 온 작가는 공공미술 작업 규모도 스펙터클하다. 2006년에 완공된 뉴욕지하철 브루클린 노선의 크레센트 스트리트역에 그의 유리작품 7개가 설치됐다. 300명의 공모자를 물리치고 따낸 프로젝트였다. 지난 4월 사천 LIG연수원의 진입로에 설치한 47m 길이의 대형 모자이크 벽화 ‘활짝 핀 채로’와 18m 길이의 유리 작품 ‘희망 꽃 피움’에도 ‘편안한 그림’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이 담겨 있다. (02)790-7079

■ 영화장면을 3차원으로 압축한 왜곡작업

“고깃덩어리, 즉 욕망을 향해 잽을 날리는 록키의 압축된 모습을 통해 동시대인의 고단한 삶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이환권 작가.

“고깃덩어리, 즉 욕망을 향해 잽을 날리는 록키의 압축된 모습을 통해 동시대인의 고단한 삶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이환권 작가.

조각가 이환권(37)은 압축으로 왜곡시킨 사물의 형태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부각한다. 이환권 작가는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 설치된 조각상 ‘장독대’(2008)로 친근한 작가다.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 등 6인 가족상을 위에서 무거운 돌로 짓눌러 원래 키의 3분의 1로 만들어 장독대처럼 오순도순 모여 있는 단란한 가족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선 사물을 양옆에서 압력을 가해 찌그러트렸다. 자연스레 물체는 위아래로 길어졌다. 이번 시리즈 조각의 키워드는 ‘영화’다. 작가가 어릴 때 인상 깊게 본 영화 장면 속 인물들을 가늘고 길게 플라스틱 소재로 작업해 대상의 움직임, 시간의 흐름, 상황이 벌어지는 공간의 차이를 선사한다.

“영화관의 와이드스크린에서 상영되던 영화가 TV로 방영될 때 스크린과 달리 변형된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 영화 장면 자체만을 변형했어요. 사실 가지 않은 길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으나 과연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심리적으로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 실베스터 스탤론이 푸줏간에 걸린 도살육을 샌드백처럼 치던 장면을 FRP 소재 조각으로 재현해 영화를 보며 느낀 아찔함을 관람객과 공감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링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록키보다 고깃덩어리에 훅을 날리며 트레이닝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것이다.

<록키> <블래이드 러너> <레옹> <천국의 아이들> <쟝고> <내이름은 튀니티> <삐삐롱스타킹> 등 7편이 동원됐다. 10월20일부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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