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비극’이 몰려든 공간, 부산···버림받은 일본 여성들도

2023.07.28 15:36 입력 2023.07.28 20:09 수정

1947년 9월16일 부산 포구 배경

참혹한 시기, 악인도 영웅도 아닌

역사 뒷전으로 밀린 귀향자 이야기

·

강제징용·위안부 등 증언 참고

부산 실제 지역사 녹여 소설로

김숨은 1947년 9월 16일 부산을 배경으로 “죽자 살자 살아도 오늘 하루 살기가 힘든” 이들의 삶을 그려낸다. 남빈 어시장(자갈치) 등 부산 여러 곳 작은 역사도 복원한다. 사진은 1954년 초 참전 미군병사들이 촬영한 부산항 제1부두.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누리

김숨은 1947년 9월 16일 부산을 배경으로 “죽자 살자 살아도 오늘 하루 살기가 힘든” 이들의 삶을 그려낸다. 남빈 어시장(자갈치) 등 부산 여러 곳 작은 역사도 복원한다. 사진은 1954년 초 참전 미군병사들이 촬영한 부산항 제1부두.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누리

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664쪽 | 2만원

소설 시공간 배경은 ‘1947년 9월16일 동이 튼 때부터 일몰 후까지 단 하루, 부산’이다. 한국 현대사에선 이승만이 남한 단독 선거를 주장한 날이다. 미 군정 시기 이념 대결이 치닫던 때다. 이날은 소설 등장인물들에겐 “그저 깃털처럼 무수한 날들” 중 하나다. 김숨은 그날 하루 부산 바닥에서 오가다 만난 이들 하나하나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웅’이니, ‘악인’이니 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그 인물들의 배경과 뒷전으로 밀려나고, 숫자나 집단으로 처리되며 역사에서 가려진 이들을 불러낸다.

이들에게 깃털 같은 나날들은 먹고살기 힘들었다. “죽자 살자 살아도 오늘 하루 살기가 힘든 게 사는 거”였다. 도떼기시장에서 썩은 안남미 사다 죽을 쒀 먹고, 배급받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떠서 먹으며 살았다. “성냥 한 개비를 구걸하다 나막신 신은 발에 급소를 맞아 죽는” 일이 일어날 정도로 끔찍한 나날들이기도 했다. 장애아인 외손녀를 ‘공양 제물’인 양 지게에 짊어진 채 동냥하는 할아버지를 두고 “병신 여자애가 또 동냥질을 나왔네”라고 손가락질하고 시비를 걸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일본 열도의 제련소에, 탄광에, 조선소에 끌려갔던 귀환 동포와 그 가족들이다. 열아홉 살 때 히로시마로 징용 가 군수품 만드는 공장에서 잡부로 일하다 원자탄이 떨어질 때 섬광에 화상을 입은 이의 가슴과 배엔 “이빨처럼 생긴 뼈들이 살을 찢고” 나왔다.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도끼’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전 재산인 고깃배를 징발당했다. 나가사키 제강소에 잡부로 끌려갔다. 원자탄이 떨어질 때 입은 화기에 얼굴과 손이 문드러졌다. ‘진해 형님’도 배를 빼앗기고 징용당했다. 일본에서 술만 마시면 “그물을 걷으러 가야 한다”며 벌떡 일어서 그물 걱정을 했다.

백씨 아내는 히로시마에서 세탁소 빨래 일을 하다 화풍(火風)을 맞고 죽었다. 백씨는 귀환한 뒤 아들을 데리고 살 수 없어 ‘대청정(현 대청동) 고아원’에 아들을 맡겨뒀다. 여긴 일본과 만주에서 온 아이들이 살았다. “부모가 죽었거나, 버렸거나, 부모를 잃어버려서” 갈 데가 없는 아이들이다. ‘고아원’ 밖 아이들은 장수통(현 광복동 거리)에서 구걸을 하곤 했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전염병이 돌아 죽고” 하던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승선권을 빨리 준다는 말을 듣고 시체 치우는 일을 하고 돌아왔지만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40년 경 부산 자갈치 해안. 출처 :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누리

1940년 경 부산 자갈치 해안. 출처 :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누리

‘적기 뱃머리(우암동 일대 해안포구로 지금은 매립됐다) 소막사’는 해방 뒤 일본에서 귀환선을 타고 돌아온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살던 곳 중 하나다. 이 귀환 동포들은 4부두 앞 막사를 개조해 살았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4부두 앞에 전쟁터나 군수공장으로 보낼 조선인들을 묵게 했다. 귀국하고 다시 막사로 돌아온 셈이다. 한때 농부나 어부로 살며 “자연의 지배”를 받던 이들은 지금 부두를 떠돌며 석탄이나 시멘트, 목재 따위를 나르는 일을 하며 “인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김숨은 여성들의 수난사를 이어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귀환 뒤 미군 피해자가 됐다. “일본 이름을 지어준 일본 군인은 그녀의 몸에 그녀가 읽지 못하는 글자를 새겼다. 그리고 지난밤 미국 이름을 지어준 미국 군인은 그녀를 들판에 버렸다.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여자의 입이 벙긋 벌어진다. ‘메리…….’”

김숨은 격변과 고통의 나날을 보낸 이들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묘사하지 않는다. “일인들이 조선인하고 되놈을 오죽 모질게 부려 먹었나. 나는 일인이 조선인보다 일당을 더 많이 받는 게 억울하더군. 근데 되놈이 조선인보다 적게 받는 건 당연하게 생각됐어” “인간 혼자 그 끔찍한 짓을 할 수 있겠어? 타 죽은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 인간이 최고로 무서워. 어지간히 독한 놈 아니고서는 누가 시켜서 한 짓이어도 편히 살지는 못할 거야. 미군 놈 말이야. 애초에 전쟁을 일으킨 건 천황이니까 천황을 원망해야 하나?”와 같은 대사로 참혹한 시기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과 모순을 그려낸다.

김숨 작가. 모요사 제공

김숨 작가. 모요사 제공

김숨은 신분이나 빈부, 국적과 무관하게 이뤄졌던 인간애도 녹여낸다. 해운대 온천욕장에서 일하는 세신사는 할아버지 지게를 타고 동냥을 나가던 소녀를 보름마다 찾아가 우물물로 씻겨준다. 판잣집 “썩은 감자 속 같은 방에서 거지줄 같은 넝마”를 걸치고 누운 아이는 엄마가 온 줄 알고 이 세신사 여성에서 “엄마,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도끼는 원자폭탄이 터지던 날 섬광에 눈이 먼 일본인 노인을 구해줬다. 조선인에게 먹을거리와 잘 곳을 내준 일본인도 나온다.

김숨이 이 소설에서 부각한 건 “쪽발이 년” 소릴 듣고 살던 ‘부산의 일본인 여성들’이다. 이들도 제국주의 전쟁과 강제징용의 희생자였다. 부두에서 소금자루를 나르며 살던 가즈코는 오사카로 끌려온 조선인 남편과 만나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해방 뒤 아들만 데리고 떠났다. 아들 없이 죽을 것만 같아 한국으로 왔으나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외면당했다. 부두 바닥에서 소금자루를 등에 업고는 아들인 양 자장가를 들려주곤 했다.

강제징용 온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 중 자신이 ‘첩’인 줄 모르고 살았던 이들의 삶도 묘사한다. “조선인 마누라는 꿈에 끼고 살고, 일본인 마누라는 품에 끼고 살”던 남성들이 있었다. 조선인 남성은 강제징용 희생자이면서도 젠더 문제에서 가해자였던 셈이다.

김숨은 악질 친일 경찰이 미 군정 때 다시 경찰로 채용된 일, 미 군정 공보관이 기자를 폭행한 일, 우익 청년들이 난동을 부린 일 등 여러 사건·사고도 소설에 녹였다. 부산 지역사이기도 하다. 석탄고 마을(현 영도 봉래1동 해안가), 남빈 어시장(자갈치), 화장막(수정 5동과 좌천 4동의 경계), 곡정(아미동) 등 부산 여러 곳의 역사를 본문과 각주에 담았다.

김숨은 강제징용·위안부·원폭 피해자들의 증언 등 참조 문헌을 미주에 넣었다. ‘가공’의 이야기나 인물인 경우 미주에 밝혔다. 즉 소설은 대부분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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