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추상화가 7인 재발굴 ‘에이도스를 찾아서’···삼원색 사이 간색을 좇아간 작가들

2022.01.23 14:42 입력 2022.01.23 15:48 수정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 전을 관람한 미술사학자 최열은 색채 이야기부터 꺼냈다. 정확히는 간색(間色)이다. “보통 전통 색깔로 여기는 오방색은 원색이다. 한국의 색은 원색보다는 삼원색 사이의 간색이라고 봐야 한다. 그 은은하고, 그윽한 간색이 사람 마음을 울리고, 떨리게 한다. 원초적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다. 간색을 잘 구사한 작가들 작품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의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회화의 역사를 되짚고, 잊힌 작가의 미술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려 마련했다. 이봉상(1916~1970), 류경채(1920~1995), 강용운(1921~2006), 이상욱(1923~1988), 천병근(1928~1987), 하인두(1930~1989), 이남규(1931~1993) 등 작고 작가 작품 57점이 나왔다.

이봉상, 해바라기, 1962, 캔버스에 유채, 82x102 ㎝. 학고재 제공

이봉상, 해바라기, 1962, 캔버스에 유채, 82x102 ㎝. 학고재 제공

이남규, 작품, 1969, 캔버스에 유채,  59x43㎝. 학고재 제공

이남규, 작품, 1969, 캔버스에 유채, 59x43㎝. 학고재 제공

이중 간색이 두드러지는 작가들이 이봉상, 이상욱, 이남규다. 최열은 “원색을 쓰더라도 순도·채도를 낮춰 탁한 색감을 낸다. 숨어 들어가는 듯한 간색을 만들어낸 것이다. 감성을 몰아가는 작품을 그린 작가들”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총괄 기획을 맡은 김복기(경기대 교수, 아트인컬처 대표)는 전시 서문에서 이봉상의 색 구사와 정감을 두고 “색채와 형태를 한층 단순하게 요약한다. 청색과 회색, 보라색과 갈색을 연하게 칠한 화면은 차분히 가라앉아 쓸쓸한 우수의 정감까지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이들 작품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복기의 평을 빌리면, 하인두는 “불화, 단청, 민화, 무속화를 원용해 한국 문화의 원형”을, 이남규는 “생명, 자연, 우주 속에 그것이 있게 하는 질서”를 추상화에 표현했다. 김복기는 “한국의 추상회화는 서양 미술의 추상 계보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다. 한때 동시대 추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많은 작가는 자기화의 길을 걸었다. 추상회화에서 우리는 한국 미술의 치열한 자생의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상욱, 점, 1973, 캔버스에 유채, 90.5x72.5㎝. 학고재 제공

이상욱, 점, 1973, 캔버스에 유채, 90.5x72.5㎝. 학고재 제공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회화 역사와 미술시장 흐름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최열은 “지금 한국 미술시장은 극사실에서 넘어온 미니멀(단색화)이 주류다. 재고품을 꺼내 신상품처럼 포장하는 일도 일어난다. ‘블루칩’ 같은 주식 용어까지 빌려와 과도하게 판 게 문제지, 화랑(갤러리)의 이런 상술은 발굴 측면도 있어 그 자체를 무조건 나쁘게 볼 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미니멀에서 색채 추상으로 더 나아가 한국 회화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점인데, 저평가되고 숨겨진 색채 추상을 새롭게 드러내는 일은 평가할 만하다. 국공립 미술관이 이 역할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안팎에서 단색화 열풍을 주도한 국제갤러리에 대항하는 성격의 기획전이기도 하다. 김복기는 “단색화의 성공을 의식하면서 한국 추상회화의 역사를 되짚는다. 잊힌 작가를 다시 소환하고, 묻힌 작가를 새롭게 발굴해, 그들의 작품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는다”고 했다.

에이도스는 철학에서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복기는 “사상(事象)의 본질을 좇는 추상회화의 속성을 에이도스라는 개념에 빗댄 것”이라고 했다. 작가들의 생전 기록, 상호 교류, 전시 활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는 아카이브 섹션도 마련했다. 대전·광주미술관 소장품도 대여했다. 전시는 2월6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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