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허구·모순 지적한 ‘전라도 천년사’에 식민사관 비난

2023.05.21 14:54 입력 2023.05.22 13:02 수정

전라남북도와 광주시 세 군데 광역단체가 함께 추진한 사업 결과물이다. 2018~2022년 5년간 역사·문화·예술 각 분야의 전문가 213명이 참여했다. 34권 1만3559쪽 분량의 책 집필진엔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비판하고, 윤석열 정권의 대일 정책이 친일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다수 들어갔다. 이들이 모여 만든 <전라도 천년사>가 ‘친일사관’ ‘식민사관’에다 ‘민족 반역’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최근 비난 행렬엔 최근 광주, 전남북 지역의 민주당 의원과 진보당 의원까지 가세했다.

여러 단체와 민주당 의원들이 시위와 기자회견을 하며 문제라고 지적한 내용을 <전라도 천년사>에서 직접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식민사관’ ‘친일사관’이라는 지적은 오독이나 오해이거나 근거 없는 비난, 침소봉대 왜곡에 가깝다. <전라도 천년사>는 되레 식민사관에 관한 문제를 따로 한 장으로 정리해 비판한다.

<전라도 천년사> 홈페이지www.jeolladohistory.com). E-BOOK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화면 갈무리

<전라도 천년사> 홈페이지www.jeolladohistory.com). E-BOOK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화면 갈무리

<전라도 천년사>는 홈페이지(www.jeolladohistory.com)에 E-BOOK으로 올랐다. 키워드 검색도 가능하다. 누구나 식민사관 주장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논란에서 고대사나 동학 혁명에 관한 몇몇 부분은 쟁점이다. 지역 간, 학자 간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그것도 학술 토론과 논의 대상으로 삼아야지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매도할 일은 아니다.

<전라도 천년사>엔 분명한 오류도 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다. 전북의소리는 최근 1권 ‘총설’에서만 오·탈자 30여 개, 띄어쓰기 틀린 곳 200군데를 찾은 교열 전문가 정혜인씨 기고를 실었다.

여러 시민단체와 민주당 의원들이 지적한 문제를 하나씩 확인해봤다.

야마토 왜가 영산강 유역을 지배했다?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 500만 전라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와 민주당 광주, 전남북 의원들의 핵심 주장은 ‘<전라도 천년사>가 <일본서기>를 인용하며 야마토 왜 세력의 영산강 지배 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야마토 왜의 한반도 남부 식민지론과 임나일본부설’을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광주·전남·전북 국회의원들이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라도 천년사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타당한 절차를 통해 바로잡으라”  “식민사관에 근거한 역사서술을 바로잡고, 민족사관에 입각한 천년사를 정립하라”고 했다. 연합뉴스

광주·전남·전북 국회의원들이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라도 천년사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타당한 절차를 통해 바로잡으라” “식민사관에 근거한 역사서술을 바로잡고, 민족사관에 입각한 천년사를 정립하라”고 했다. 연합뉴스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이병훈 의원은 지난 12일 광주MBC ‘시사인터뷰 오늘’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전라도 천년사>) 곳곳에 식민사관에 근거한 부분이 존재를 해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일본서기의 기술 내용을 사용해서 쓴 부분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은 영산강 유역을 뭐 야마토가 지배했다, 야마토 왜가 전라도에 있었다, 뭐 이런 얘기가 막 나와 있고요. 영산강 유역의 석실 장고분은 왜인들이 전라도를 지배하면서 이렇게 했던(무덤을 만든) 것이다….”

<전라도 천년사> ‘선사·고대 3권’ 149쪽 내용으로 야마토 세력의 전라도 지역 영역화를 근거 없다고 지적한다. 책 갈무리

<전라도 천년사> ‘선사·고대 3권’ 149쪽 내용으로 야마토 세력의 전라도 지역 영역화를 근거 없다고 지적한다. 책 갈무리

이 말과 관련된 부분은 <전라도 천년사> ‘선사·고대 3권’에 나온다. ‘야마토 정권이 지배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그 반대다. ‘야마토 세력의 전라도 지역 영역화’를 두고 “전혀 근거가 없다”고 못박는다.

“최근에는 장고분이 축조되었던 전라도 지역을 국가 간의 경계가 형성되기 이전 시기에 규슈에서 확장되었던 경계지역으로 본다는 견해가 일본에서 나온 바 있는데 이 역시 무리한 견해이다. 장고분이 축조되었던 전라도 지역은 15개 정도의 마지막 마한 소국들이 존재하였고, 야마토 왕권이 일본열도에서 일원적인 지배체제를 확립한 것은 이와이 전쟁 이후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이전 시기에 야마토 세력이 전라도 지역을 영역화하였다는 주장은 문헌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전라도 천년사> ‘선사·고대 3권’ 149쪽)

129쪽에도 같은 취지의 서술이 나온다.

“장고분은 일본의 전방후원분이 야마토 정권의 지배 체제와 직결되는 ‘전방후원분 체계’의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와 구분하기 위해 새로 명명한 것이다. 당시 영산강 유역권이 야마토 정권의 지배 아래 있었다면 전방후원분이라는 명칭을 사용해도 무방하겠지만 모든 자료를 검토해 보아도 그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장고분 피장자는 토착 세력 승인받아 정착한 정치적 망명객

<전라도 천년사>는 ‘장고분이 왜인들의 전라도 지배의 결과물’이라고 쓰지도 않았다. <전라도 천년사>는 장고분 피장자에 관한 한국과 일본의 4가지 견해 ‘망명 왜인설’ ‘토착 세력자설’ ‘야마토 파견 왜인설’ ‘백제 파견 왜인설’을 다 소개한다. 이어 각 설의 가능성을 각각 반박한 뒤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장고분의) 그 주인공은 일본열도에서 들어오되 이 지역 토착 세력의 승인 아래 주변 지역에 정착하였다가 현지에 묻힘으로써 당대에 끝나는 정치적 망명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선사·고대 3권’ 137쪽)

이 서술은 ‘지배 세력’이 망명 왜인이 아니라 토착 세력이라는 걸 분명히 밝힌다. 책은 정치적 망명객이 ‘야마토 세력에 패한 이와이 세력’일 것이라고 본다. 토착 세력은 야마토 세력과 무관했던, 영산강 유역권의 마지막 마한 세력이라고 추정한다. 마한 세력이 이와이 세력의 망명을 받아줬고, 이 세력의 독자적 세력 형성을 방지하려고 분산 수용했다고 봤다.

<일본서기> 인용하면 친일·식민사관?

친일 식민사관을 두고 많이 나온 지적이 ‘임나일본부설 등을 주장한 엉터리 <일본서기>를 인용 기술했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임나 4현’ 기술이다. ‘임나 4현’도 ‘선사·고대 3권’에 나온다. 검색 결과는 모두 13개다. 대부분은 <일본서기> 기사의 ‘임나 4현’에 관한 내용을 전하면서 그 표기를 옮기거나 학설을 설명한 것이다. 도민연대 등은 주로 이 인용과 서술을 두고 <전라도 천년사>의 식민사관을 주장한다. 즉 ‘<일본서기>를 인용했으니 식민사관’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어떤 문헌을 두고 인용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학술 연구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역사 연구자들은 여러 문헌을 비교, 대조한다. 이른바 ‘교차 검증’은 학술 연구의 기본이다. 고대사 학자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없는 부분을 중국과 일본의 문헌과 비교, 검토한다.

다른 논픽션도 이 원칙을 따른다. 최근 출간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사이드웨이) 작가 정아은은 이 논픽션을 쓰면서 <전두환 회고록>과 <전두환 육성 증언>을 파고들었다. 책에 가장 많이 인용한 문헌이 이 두 책이다. 전두환의 말을 분석하며 ‘악의 기원’을 좇고 ‘퇴임 뒤 33년의 안온한 삶’ 문제를 비판하는 이 책을 ‘살인마 전두환’의 책을 인용 기술했다고 ‘친독재’ ‘친전두환’ 책으로 비난하는 논리와도 이어진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많은 홀로코스트 연구자들이 읽으며 ‘히틀러와 나치의 인종주의 문제’를 따진다. 역사학자들은 ‘위서(僞書)’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일본서기> 허구 지적하고, ‘식민사관’ 비판해도 무조건 ‘식민사관’

<전라도 천년사>는 교차 검증을 거쳐 <일본서기>의 허구성을 여러 군데서 지적한다.

‘선사, 고대 3권’에서 ‘임나일본부’는 세 번(각주 제외) 나온다. 18~19쪽은 일본이 ‘삼한을 정벌해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근거로 삼는 <일본서기> ‘신공기’ 내용을 반박한다. ‘신공왕후가 신라와 가야를 정벌하고 남만 침미다례를 도륙하여 백제에 하사했다’고 근거로 삼는 사료가 ‘신공기’다.

<전라도 천년사>는 이를 두고 “이렇게 인심 좋은 국가가 있을 수 있는가. 특정 지역을 점령해서 그것을 타 국가에 양도해 준 인심 좋은 국가는 역사상에 유례가 없다. 즉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적었다.

도민연대 등이 ‘임나 지명을 인용한 식민사관’이라고 비난할 때 든 사례 중 하나가 ‘남만 침미다례’다. <전라도 천년사>는 <일본서기> ‘신공기’ 기술의 모순을 지적할 때 나온다. <전라도 천년사>는 이 지명을 분석하며 ‘신공기’가 오히려 백제 측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일본 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인 것이다.

“남만은 남쪽 오랑캐라는 의미이다. 왜를 중심으로 남만이라고 하면 가까이로는 큐슈 일대거나 아니면 더 남쪽으로 내려간 오키나와 일대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면 한반도 남쪽 지방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기사(신공기)는 왜를 중심으로 기술되었다기보다는 백제를 중심으로 기술되었다고 보인다. 아마도 백제 측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이사료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왜를 백제로 치환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오게 된다.”(‘선사·고대 3권’ 19쪽)

전라도천년사편찬위원회가 최근 낸 입장문과도 이어진다. 편찬위는 “일본 고대 자료 <일본서기>는 일본의 황국사관에 의해 왜곡, 변형된 대표적인 역사서이고,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의 주요 근거 사료로서 8세기 초에 일본왕가를 미화하기 위해 편찬된 책이다. 더구나 일본으로 이주한 백제 사람들이 쓴 기록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 원사료가 재편찬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조작이 가해졌다는 사실은 전라도 천년사 집필진은 물론 우리나라 역사학자들 대다수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왕인박사 축제는 폐지할 것인가

<전라도 천년사> 편찬위원회는 이런 반박을 내놓았다. “고대 한일관계에서 등장하는 대표적 인물인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박사, 일본에 불교를 전해 준 노리사치계, 일본 세계유산 1호인 법륭사 금당에 벽화를 그린 것으로 전하는 고구려 승려 담징 등등 고대 한일관계사에 나오는 사람들의 기록은 모두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 모든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식민사관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라남도 대표 축제인 ‘왕인박사축제’ 또한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 현창 사업이기 때문에 폐지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라도 영암군 ‘왕인박사유적지’ 안내. 영암군 화면 갈무리

전라도 영암군 ‘왕인박사유적지’ 안내. 영암군 화면 갈무리

도래인이 일본에 문화와 기술을 전파한 기록도 주로 <일본서기>에 나온다. <일본서기> 인용 자체를 문제시한다면 일본에 대한 우월과 자랑의 근거로 삼는 도래인의 존재도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전라도 천년사>는 ‘근대 5권’ 중 ‘식민지배의 유산’에서 ‘식민사관’을 비판한다. 407쪽을 보면 이렇게 나온다.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지배한다. 이들은 식민지의 과거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을 한국사연구에 적용했다.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일본학자에 의한 한국사와 문화의 왜곡이 이루어졌다. 과거 역사를 통해 식민지 조선인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을 ‘식민사관’이라고 한다.”‘근대 5권’ 407쪽)

책은 역사학자 이만열이 식민사관을 두고 분석한 ‘6가지 문제’도 열거했다.

다만 편찬위는 “전북 남원을 기문, 장수를 반파, 전남 강진·해남을 침미다례, 구례·순천을 사타라는 <일본서기> 속 임나 4현의 지명으로 설명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학술적 입장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평가하고 향후 공개토론회에서 관련 문제를 집필자 등이 나서서 충분히 토론하고 상호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편찬위는 <전라도 천년사>의 공람 기간을 7월 9일까지 연장했다. 7월 공개학술토론회를 연다.

이달 26일 광주MBC ‘시사온’에서 편찬위와 연대 측 인사 간 토론이 열린다. 편찬위 쪽에선 이강래 전남대 교수(선사·고대 편찬위원),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가 나간다. 시민단체 측 출연자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박형준 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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