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아는 형님’의 가수 김희철

2017.12.15 17:21 입력 2017.12.15 17:22 수정
위근우|칼럼니스트

여성의 불편함을 예민함으로 치부?

시스템에 눈 감은 여혐이 더 불편해

어쩌면 그때 불편해하고 문제제기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9년 5월 방영한 MBC <세바퀴>에서 게스트 김희철은 MC 김구라에 대해 “인터넷 방송할 때 되게 재밌게” 봤었다며 “요즘엔 너무 구라 형이 당당하지 못하고 방송에 휩쓸려 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JTBC <아는 형님>에 출연 중인 김희철. 김희철은 이 프로그램에서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않는 ‘프로불편러’들의 민감함을 비판했다.

JTBC <아는 형님>에 출연 중인 김희철. 김희철은 이 프로그램에서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않는 ‘프로불편러’들의 민감함을 비판했다.

그 이후로도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의 인터넷 방송 시절 팬클럽이었음을 강조하던 그에게 과거 김구라가 이효리와 하리수에게 뱉었던 인격모독을 넘어선 극악한 발언들에 대한 윤리적 입장을 요구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8년 반이 흐른 지금,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주옥같은 트집으로 지들만 불편한 벌레 여시들의 안주인 몸”(노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중)이라고. 여초 커뮤니티인 ‘여시(여성시대)’를 콕 집어 저격한 가사에 대해 여성혐오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건 ‘여성시대’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트집을 잡고 자기들끼리만 불편해하는 존재들로서의 여성들. 이것은 그가 자신에 대한 비판, 특히 최근 1~2년간 집중된 여성혐오적 코멘트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혹은 폄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자신이 아닌 저들의 예민함이라는 생각. 반성한다. 8년 전 그때, 나를 비롯해 언론이 민감하게 반응했더라면 지금 이토록 당당한 가사가 나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김희철은 JTBC <아는 형님>에서 크롭톱 체육복을 선보인 서인영에 대해 여성들이 “언니, 이거 나만 불편해?”라는 반응을 보일 거라며 여성들의 민감함을 폄하했다. 또 같은 방송에서 여성 게스트들에게 흡연 여부를 물어 당황하게 하는 개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프로불편러’들에게 잔뜩 찍혀 한동안 안 친 적도 있다”며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예민함의 문제로 치환한 바 있다. 그는 가사가 논란이 되자 본인의 SNS를 통해 “남성이 나쁘고 여성이 나쁘고가 어디 있습니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나쁜 거지 (중략)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상관 안 하고 모두를 존중하며 사는 사람 중 하나”라면서 여성혐오 논란을 일축했다.

김희철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가사 일부.

김희철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가사 일부.

지난해 노래 ‘야동을 보다가’의 가사에 대한 논란이 생기자 “여자친구를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은 여성혐오가 아닌 것 같다고 했던 중식이밴드 정중식의 발언을 붙여넣기 한 듯하다. 여기엔 여성혐오가 단순히 개인의 기분이나 의도 문제가 아닌 구조와 권력의 문제, 문화적으로 누적된 습성의 문제라는 사실이 지워져 있다. 김희철 본인은 <아는 형님>에서 여성 게스트, 남성 게스트, 그리고 남성 고정 멤버들까지 가리지 않고 막말을 하는 ‘돌+I’ 캐릭터를 수행할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남성 멤버들끼리는 서로의 치부를 가지고 놀리며 낄낄대는 게 가능해도, 여성 게스트에겐 흡연이라는 개인의 기호가 부끄러운 흠결처럼 소비된다는 것에 이미 불평등한 전제가 깔려 있다는 지적은 외면한다.

가사의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SNS로 해명하던 김희철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요, 우리”라고 마무리한 건 그래서 필연적이다. 역시 여성들을 향해 전쟁 대신 평화를 외쳤던 유아인이 보여준 이 기만의 언어에도 계보는 있다. 2015년 2월에 방송인 김태훈은 잡지에 기고한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글에서 영화 <설국열차> 속 남궁민수(송강호)의 “난 앞칸에는 관심이 없어. 내 관심은 저 옆문을 날려버리는 거야”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싸워야 될 적은 남녀가 아니라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라고 일갈했다. 흥미롭게도 김태훈의 이 비유는 그가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기만하는지 적절히 보여준다. 원론적으로 그의 말이 옳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착취의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여기엔 젠더를 아우른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스테이크를 써는 앞칸에서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바를 먹는 뒤칸을 향해 우리 싸우지 말자고, 중요한 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밖으로 탈출하는 거라고 말하는 게 온당한가? 착취적 시스템의 수혜자가 착취당하는 이들에게 문제는 시스템이라고 조언하는 것이 정상적인가? 오히려 김태훈의 비유는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김희철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댓글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가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희철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댓글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가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남성혐오가 착취하는 앞칸에 대한 뒤칸의 분노라면, 여성혐오는 그들을 뒤칸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강제적 힘과 열차의 구조 자체다. 이 때문에 여성혐오는 굳이 분노의 얼굴을 할 필요조차 없다.

김희철은 위의 SNS 글에서 “왜 이렇게들 분노가 많아요”라고 질문했다. 광화문에 세워진 차벽 위에 올라가 발로 쿵쿵대는 시위대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과격함을 지적하기 전에 차벽 자체가 불의라는 것, 차벽을 세울 수 있는 이들은 굳이 과격함과 분노의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차벽처럼 불의가 안정적인 구조를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질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발표된 지난주,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의 한 작가는 바로 그 ‘여성시대’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남성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프로그램에서 부당하게 하차해야 했다.

“밥그릇을 걸고 글을 쓴다”던 유아인이 커리어에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고 남초 커뮤니티의 추앙을 받는 동안, 과거 ‘일베’에서 공익 근무나 광우병 발언 같은 것에 대해 부당하게 공격당했던 김희철이 자신에 대한 비난 모두를 ‘벌레(일베)’와 ‘여시(여성시대)’의 동등한 잘못으로 묘사하는 동안, 한 여성은 여초 커뮤니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더 정확히 말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말 밥그릇을 잃을 위기를 겪었다.

이것이 구조로서의 여성혐오, 여성을 설국열차 뒤칸에 태우고 배제할 수 있는 힘으로서의 여성혐오다. 이러한 문제를 외면하고 사랑과 평화를 외치는 건,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들의 예민함만을 문제 삼는 건, 이미 안정적인 불의의 형태를 더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이것이 김태훈, 정중식, 유아인, 그리고 김희철까지 판본만 바뀌며 반복되는 중이다. 그것도 점점 더 당당한 표정으로.

위근우|칼럼니스트

위근우|칼럼니스트

다시, 반성한다. 8년 전 그때 김희철의 발언을 그저 재밌는 4차원 캐릭터의 그것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을, 여성들에게 행해진 언어적 폭력에 대해 지상파에서 웃으며 후일담처럼 주고받을 때 이미 엄청난 권력의 불균형이 작동함을 인식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후회한다.

여성들이 이제 와서 예민하게 구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 언론이 공론장 안에서 민감한 언어로 ‘프로불편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아니다. 사실 그때도 틀렸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한 아이돌은 누굴 공격해도 될지 골라내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는 노련함을 쌓아왔다.

비판받지 않는 견고한 남성연대의 구조 안에서 ‘짬’밥을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듣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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