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백꽃 필 무렵’ 손담비의 재발견 “세월이 만든 단단함이 향미와의 공통점이에요.”

2019.11.22 08:00 입력 2019.11.22 09:36 수정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손담비는 자신을 “노력을 안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2007년 가수로 데뷔해 댄스곡 ‘미쳤어’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09년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키이스트 제공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손담비는 자신을 “노력을 안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2007년 가수로 데뷔해 댄스곡 ‘미쳤어’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09년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키이스트 제공

드라마가 끝나도 눈에 밟히는 캐릭터가 있다. 지난 21일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향미가 그렇다. 창문없는 술집 ‘물망초’ 마담의 딸로 태어나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다간 사람. 지저분한 염색 머리에 벗겨진 손톱 매니큐어 등 향미를 더 향미답게 만든 디테일은 배우 손담비(36)의 치열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손담비는 자신을 “노력을 안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지저분하던 노란 머리는 검게 정리된 상태였다. “가수 할 때도 사랑받는 데 6년이 걸렸다. 연기도 그만큼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다”고 덤덤히 말하는 그는 마냥 무르지 않은 단단한 속내를 가졌다는 점에서 향미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2007년 가수로 데뷔해 2009년 SBS 드라마 <드림>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섹시 가수’라는 선입견의 벽을 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인생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며 “배우 엄정화처럼 가수와 배우를 넘나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손담비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향미는 창문없는 술집 ‘물망초’ 마담의 딸로 태어나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다갔다. 지저분한 염색 머리에 벗겨진 손톱 매니큐어 등 향미를 더 향미답게 만든 디테일은 배우 손담비의 치열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KBS 제공

향미는 창문없는 술집 ‘물망초’ 마담의 딸로 태어나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다갔다. 지저분한 염색 머리에 벗겨진 손톱 매니큐어 등 향미를 더 향미답게 만든 디테일은 배우 손담비의 치열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KBS 제공

-향미로 큰 사랑을 받았다. 기분이 어떤가.

“얼떨떨하다. ‘이렇게 사랑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묘하고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주변의 반응이 궁금하다.

“주변 친구들부터 먼 친척들까지 저에게 문자를 보냈다. ‘향미 너무 소화 너무 잘했다’ ‘싱크로율 맞게 너무 잘 했다’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까불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여겼다가 키를 쥐고 있는 여인이라는 게 드러난 6회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향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욕 먹을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연기를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물망초’ 서사가 시작되면서 캐릭터에 많이 몰두해주시더라.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는 결손가정 아이가 동백이를 만나며 닮아가고 싶어하고 동경하는 모습, 그런 짠한 모습이 대중분들께 와닿은 것 같았다. 다행히 너무 불쌍하게 여겨주시고, 제가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해주셔서 감사했다.”

-캐릭터를 분석은 어떻게 했나.

“저는 외동딸인데다 살아온 삶도 많이 달라 공통점이 많지 않다. 그래서 캐릭터 분석을 더 철저히 했다. 향미는 천천히 곱씹으며 말하는 아이다. 맹하고 눈빛은 초점이 없는데, 눈치는 빨라서 멍청하지 않아야 했다. 말의 속도를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높낮이 없이 천천히 말하다 한 방에 터뜨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고 발음도 또박또박하려 노력했다. 다만 향미도 저도 단단해 보인다는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 부분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저도 처음부터 단단했던 건 아니고 1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단단해졌다. 단단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더라. 향미도 마찬가지 아닐까. 세월이 그를 단단해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손담비는 2007년 가수로 데뷔해 2009년 SBS 드라마 <드림>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섹시 가수’라는 선입견의 벽을 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며 “<동백꽃 필 무렵>을 “인생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정리했다. 키이스트 제공

손담비는 2007년 가수로 데뷔해 2009년 SBS 드라마 <드림>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섹시 가수’라는 선입견의 벽을 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며 “<동백꽃 필 무렵>을 “인생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정리했다. 키이스트 제공

-고운이란 본명 대신 향미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삶에 우여곡절이 많다보니 고운이란 이름이 자신과 안 맞는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고운이는 곱게 살아야 하는데, 향미는 그렇지 못하고 사랑을 갈망하지 않았나. 여기에 대해서도 분석을 해봤다.”

-<동백꽃 필 무렵> 초반에 연기력 지적이 있었다.

“엄청 속상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여기서 흔들리면 대중에게 흔들리는 사람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제 페이스를 끝까지 가져갔다. 언젠가 향미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 생기겠지 생각했다. 다행히 그런 지점을 만났고, 향미 캐릭터를 이해해주셔서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느꼈다.”

-향미의 서사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이 정도일 줄은 모르고 들어갔다. 중요한 역할이고, 죽는 것까지는 알았는데 이렇게 내면을 깊숙이 건드리는 서사가 있는 줄은 몰랐다. 작가님이 글을 잘 써주신 덕이다. 작가님에 대한 신뢰도가 워낙 높아서 이렇게 중요한 인물인지는 몰랐지만, 좋은 캐릭터일 것이란 믿음은 있었다.”

-향미를 연기하는 데 있어 작가가 특별히 주문한 건 없었는지.

“그런 건 딱히 없었다. 잘 되고 나서부터 문자를 보내주시더라.(웃음) 12화 마지막 우는 씬이 끝나고 장문의 문자가 왔다. ‘그동안 우여곡절 많았다고 들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향미밖에 안 물어볼 정도로 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울면서 ‘좋은 글 써주신 덕에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답한 기억이 난다.”

의지할 데 없이 방황하던 향미는 옹산에서 동백이(공효진)을 만나 가족이 된다. 손담비는 자신에게 있어 동백과 같은 존재로 배우 정려원을 꼽았다. KBS 제공

의지할 데 없이 방황하던 향미는 옹산에서 동백이(공효진)을 만나 가족이 된다. 손담비는 자신에게 있어 동백과 같은 존재로 배우 정려원을 꼽았다. KBS 제공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면서 현장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 같다.

“대본 유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16화부터는 대본도 많이 가렸고, 향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쪽대본으로 처리됐다. 까불이가 누구냐에 대한 궁금증이 크다보니 배우들도 대본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했다. 12화 대본을 잃어버렸는데, 다행히 유출은 안 됐다. 배우들은 까불이의 정체를 11화, 12화 대본이 나올 무렵 알았다.”

-공효진·오정세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효진 언니는 개인적으로 친해서 같이 하면서 편안함이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저렇게 하는 건 어때?’ 하는 아이디어와 조언을 많이 해줘서 큰 도움이 됐다. 규태 오빠는 그냥 너무 웃겼다. 만나면 웃음 바다였다. 애드립 등 여러 준비를 많이 해오는 배우이다보니 너무 웃겨서 촬영이 중단 될 정도였다.”

-손담비는 ‘악바리’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노력파’인가.

“저는 노력을 안 하면 잘 안 나타나는 사람이다. 하나를 물고 늘어져야 나중에 빛이 나오더라. 가수 할 때도 우여곡절 많았다. 춤·노래도 못하던 애가 4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솔로로 데뷔했고, 앨범 2장이 망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미쳤어’라는 곡을 만났다. 이 때도 6년을 노력했으니, 연기도 그만큼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했다. 연기자로 돌아선 다음엔 ‘섹시 가수’ 선입견을 떨쳐내는 게 쉽지 않았다. 역할도 부잣집 딸, 센 역할만 들어왔다. 그래도 이미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생각을 하고 시작해서 흔들리는 건 없었다. 언젠가는 나의 캐릭터가 올 것이라는 믿음 하에 밀어붙였고, 지금 때를 만난 것 같다.”

-향미는 동백이를 만나며 삶의 의지를 찾았다. 손담비에게 동백이 같은 존재가 있는지.

“정려원 언니가 그런 존재다. 제가 난항을 겪고 있을 때도 언니가 옆에 있었고, 잘 됐을 때도 있었다. 지금 가장 기뻐해준 것도 려원 언니다. ‘너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게 기분 좋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하더라. 너무 힘이 되고, 언니에게 나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쉬고 싶지 않다”는 손담비는 “최종목표는 엄정화 선배님처럼 되는 거다. 가수와 배우를 넘나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밝혔다. 키이스트 제공

“쉬고 싶지 않다”는 손담비는 “최종목표는 엄정화 선배님처럼 되는 거다. 가수와 배우를 넘나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밝혔다. 키이스트 제공

-손담비에게 <동백꽃 필 무렵>과 향미는 어떻게 기억될까.

“<동백꽃 필 무렵>은 제 인생의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는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지금까지 달려온 게 이걸 얻으려고 달려왔나 싶을 정도다. 대중분들에게 이런 사랑 한 번쯤 받아보고 싶다고 갈망을 해왔기 때문에, <동백꽃 필 무렵>을 기점으로 다른 필모그래피가 또 생기지 않을까. 가수할 때는 그 인기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어렸고, 너무 바빴다. 30대를 넘어가면서 여유를 찾았다.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얻은 인기는 흡수하고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의미 있다. 향미는 안쓰럽고 불쌍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사람. 아직도 향미를 다 보내지 못했다. 다음주 월요일에 실제로 코펜하겐에 화보촬영을 하러 가는데, 거기서 제대로 떠나보낼 생각이다.”

-앞으로 활동계획과 목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쉬고 싶지 않다. 늘 짝사랑하거나 철부지, 사랑받지 못한 캐릭터만 해와서 로맨스를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이다. 가수 활동도 포기해본 적 없다. 연기로 더 인지도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음반 활동을 쉬었지만, 언젠가 꼭 앨범을 낼 거란 생각은 있다. 엄정화 선배님처럼 되는 게 최종목표다. 가수와 배우를 넘나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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