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영리화·대기업 체인병원· 기업약국’ 해석 놓고 충돌

2013.12.19 22:19

정부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대책’ 3대 쟁점

①“병원의 영리화” Vs “영리병원 아니다”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보건의료 서비스 분야 투자활성화 대책 중 가장 크게 논란이 된 대목은 의료법인에 상법상 회사인 자(子)법인 설립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848개 의료법인 중 상속·증여세법상 성실공익법인은 장례식장·주차장은 물론이고 의료관광호텔(메디텔)이나 회장품·건강보조식품 개발·판매회사, 의료기기 개발·구매·임대 회사, 온천·목욕장업, 체육시설, 서점 등을 세울 수 있다. 길병원과 강북삼성병원, 분당차병원 등이 후보군에 포함된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을 영리법인으로 전환시키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의료법인은 수익을 고유목적사업인 의료업에 재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영리 자법인을 세우면 배당 등을 통해 수익을 외부로 빼낼 수 있다. 박형근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법인들의 회계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수익이 자법인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거나 자법인이 유치한 투자자본이 의료기관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연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에 참석한 의사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연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에 참석한 의사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정부는 자법인이 의료법인의 수익기반을 확충해 의료비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병원협회는 “의료법인병원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는 경영난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수익기반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반박한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김종명 의료팀장은 “자법인 회사가 의료기기 임대사업을 할 경우 모법인 병원에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장비를 임대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고, 병원에서는 과잉검사로 자법인에 수익을 몰아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대사업의 주대상이 환자들이어서 의료비가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다.

[빗장 풀린 공공부문 민영화]‘병원 영리화·대기업 체인병원· 기업약국’ 해석 놓고 충돌

②“대기업 체인병원 공공성 훼손” Vs “병원의 경영합리화”

의료법인 간 합병 허용은 의료기관의 영리화와 규모의 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자본력 있는 수도권 대형병원이 지역의 중소병원을 하나씩 사들이면서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체인병원을 출범시킬 수 있다. 합병으로 몸집이 커지고 자본력을 갖추면 자법인을 세워 부대사업을 벌이기도 수월해진다. 병원 합병이 자법인 설립 허용 정책과 결합해 영리화의 상승효과를 내는 것이다. 현재는 의료법인이 파산하면 국민건강보험을 주 수입원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의 지위 등을 고려해 그 재산이 국고로 회수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병원 간 인수·합병을 가능하게 한다는 건 이제 정부가 비영리법인인 병원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적자 폭이 너무 커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중소병원은 종전대로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형병원만 살아남고 중소병원은 대형병원에 인수되거나 파산해 의료의 다양성·공공성과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된다. 김철웅 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익성 없는 병원을 누가 인수하겠다고 할지 의문”이라며 “결국 대기업 병원이 경쟁력 있는 지역의 거점병원을 인수해 프랜차이즈로 만들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③“자본이 동네약국 싹쓸이” Vs “약사들만 설립 가능”

법인약국 허용은 동네상권을 잠식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약국의 출현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약사면허 소지자들만 법인의 사원으로 참여할 수 있어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지만 보건의료계는 자본이 침투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본다. 중소자본으로 차린 동네약국이 사라지고 미국이나 호주처럼 월급 약사들이 대형 프랜차이즈 약국에 취직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19일 “(투자자본이 법인약국을 세운다면) 그 영리적 속성 때문에 국민건강보험의 약제비 인상을 초래할 것이고 조제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약사회도 성명을 통해 “법인약국은 자본에 의한 독점과 편중 등 당초 기대와는 다른 역효과로 인해 국민에게 위해요인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전문인들과의 소통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보건의료서비스의 영리화를 추진한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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