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쉬는 날, 전통시장은 ‘봄날’… “나들이족까지 생겼어요”

2014.03.05 21:50 입력 2014.03.05 21:51 수정

(6) 건전한 규제는 시장질서 회복… 활기 찾은 전통시장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마포의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300m 남짓 길이로 이어진 두 시장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넷째주 일요일인 이날은 주부는 물론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친구들과 나온 청년 등 고객 연령층도 다양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박모씨(49)는 “대형마트 영업규제 후 손님이 확연히 늘어났다. 젊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재래시장을 꺼렸지만 몇 번 와보니 생각보다 괜찮은지 많이 온다”고 전했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 이수진씨(36)는 “홈플러스 쉬는 날 장 볼 데가 없어 왔었는데 막상 와보니 가격 흥정도 하고 비교해서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더라”며 “계란이나 쌀, 채소 등 웬만한 먹거리는 시장에서 산다”고 말했다.

망원, 월드컵 시장 반경 1㎞ 이내에는 홈플러스 상암점·합정점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2곳이 있다. 지난해 3월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서기 전까진 상인들이 1년여간 입점 반대 투쟁을 벌였다. 지역 상인들은 끈질긴 노력 끝에 홈플러스 측으로부터 합정점을 여는 대신 시장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서 영업 중이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을 폐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익스프레스 망원점은 지난해 말 문을 닫았다. 2012년 5월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 의무휴업이 도입되고, 지난해 초부터 시장 상인들이 적극 마케팅을 펼치면서 매출도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

일요일인 2일 서울 마포구의 전통시장 중 한곳인 망원시장이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일요일인 2일 서울 마포구의 전통시장 중 한곳인 망원시장이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시장상인들, 선물·할인행사 청년층도 재래시장에 발길
“장 볼 데 없어 왔다가 단골”
대형마트 의무휴업지역은 소상공인 매출 15% 늘어나

매출 증가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시장 상인회는 대형마트 영업규제 도입 전후의 매출 상황을 비교하기 위해 지난해 입점 점포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했다. 대형마트 측이 영업규제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반론 근거를 법원에 제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 ㄱ청과는 2011년 1억8600여만원이던 매출액이 2012년 2억4300여만원으로 30% 정도 늘었고, ㄴ철물점은 2011년 710여만원이던 매출 규모가 2012년 1130여만원으로 60% 가까이 커졌다. 같은 기간 ㄷ인삼가게는 1190여만원에서 1690여만원, 식품 가게인 ㄹ상회는 1억3900여만원에서 1억4200여만원, ㅁ떡집은 2560여만원에서 2670여만원으로 각각 늘었다. ㅂ마트는 2012년 1월 하루 평균 1426명이던 고객 수가 1년 뒤에는 1454명으로, 또 1년 뒤에는 1480명으로 증가했다.

[규제 완화의 덫]대형마트 쉬는 날, 전통시장은 ‘봄날’… “나들이족까지 생겼어요”

월드컵시장 상인회 김재진 이사장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맞춰 전략적으로 선물도 주고 할인행사 등을 집중적으로 했더니 이를 기다렸다가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시장에 직접 와서 장보기가 어려운 손님들을 위해 전화 주문을 받고 도우미가 대신 장을 봐 배달까지 해주는 배송센터 서비스도 시작했다. 매출 신장이 대형마트 의무휴일제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규제 도입을 계기로 시장 상인들도 “잘해보자”며 고객 행사나 마케팅 등 자구노력을 적극 펼치는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망원시장 상인회 서정래 회장은 “체인스토어협회 쪽에선 의무휴업을 해도 재래시장 매출에 별 영향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전혀 실상을 모르는 얘기”라며 “시장은 마케팅을 열심히 한다고 즉각 반응이 오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변화가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SSM 의무휴업일에 중소 소매업과 전통시장의 매출액과 고객이 늘어났다는 건 한 공공기관이 최근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의무휴업일인 지난 1월26일 대형마트·SSM 주변 중소 소매업체 384곳, 전통시장 내 점포 153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의무휴업일이 아닌 전주 일요일(1월19일)에 비해 전체 평균 매출은 12.9%, 평균 고객 수는 9.85% 증가했다. 특히 전통시장의 평균 매출은 18.1%, 평균 고객 수는 17.4% 증가했고, 의무휴업이 실시되는 지역(14.8%)이 자율휴업을 하는 지역(9.8%)보다 매출액 증가폭이 크게 나타났다. 서울·부산·대구·인천 등은 전부 의무휴무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울산과 경기·경북·강원 등 일부 자치단체는 자율휴무제를 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절반 이상은 대형마트·SSM 의무휴업 규제 강화가 “골목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고 느끼고 있었다.

[규제 완화의 덫]대형마트 쉬는 날, 전통시장은 ‘봄날’… “나들이족까지 생겼어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노화봉 조사연구부장은 “대도시의 경우 의무휴무제가 자리 잡혔고 유동인구도 많아 효과가 있는 반면 중소도시나 산간 지역은 의무휴무제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별 효과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망원시장에서 두부가게를 하고 있는 김진철씨는 “무조건 규제를 풀어줘 돈 있는 사람만 돈을 벌게 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 그들에게 핸디캡(불리한 여건)을 줘야 돈 없는 서민들도 먹고살 수 있다”면서 “서민들이 무너지지 않아야 정부의 복지예산도 덜 들어갈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리즈 끝>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