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토론’서 언급된 인천내항 가보니… 주민들은 “소음·먼지 심해 수년째 창문도 못 열어”

2014.03.31 21:43
홍재원 기자

공원 만들기로 한 인천내항, 이전하게 된 기업들이 ‘규제’로 몰아

인천내항 인근 주민들은 들끓고 있었다. 인천내항 재개발이 갑자기 이슈로 재부각되면서 기업 이익에 밀려 주민 생존권이 다시 위협받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27일 현지에서 만난 김상은 내항살리기시민연합 대표는 “그게 무슨 토론이냐. 기업 쪽만 초청해 일방적으로 민원을 듣고 TV 생중계 해준 것 아니냐. 반대편 의견이 없는 토론을 토론이라 부를 수 있느냐”고 따졌다.

발단은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이었다. 심충식 선광 부회장이 “인천내항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월미산(월미도)에 올라 직접 진두지휘해서 만든 곳인 만큼 재개발 계획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내항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일종의 기업 규제라는 논리였다. 월미도에 올라 인천내항을 살폈다. 인천내항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의 특성을 고려해 갑문식으로 만들어진 항구다. 마치 거대한 인공호수처럼 보여 내항으로 불릴 만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조수 간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두가 인근에 속속 등장하면서 공간이 좁은 인천내항의 화물 처리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27일 인천 중구의 한 건물에서 바라본 인천 내항. 아파트 단지 옆 항만 시설에서 발생한 소음과 분진 공해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27일 인천 중구의 한 건물에서 바라본 인천 내항. 아파트 단지 옆 항만 시설에서 발생한 소음과 분진 공해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 경쟁력 떨어진 1, 8부두 작년, 정부와 친수공간 합의
기업들 이전 상황 닥치자 대통령에 일방 민원

월미도 전망대에선 인근 남항과 북항도 한눈에 보였다. 탁 트인 바다에 바로 노출돼 있는 이들 인근항과 달리 내항은 답답해 보였고 항구를 이용 중인 선박도 항만 시설의 20% 선에 그치고 있었다. 오히려 부두에 쌓아놓은 벌크 화물과 하역 기계들이 흉물처럼 보였다.

부두와 가까운 주거지역에 내려가봤다. 바다를 앞두고도 주민들은 부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 주민은 “어릴 땐 지금 갑문이 있는 곳에서 수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들어가지도 못해 아쉽다”고 했다. 신흥동 아파트 단지는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더미 같은 화물에 접해 있었다. 기계와 대형 화물차가 움직여 ‘바다 전망’을 누리기는커녕 소음과 진동·분진으로 인한 공해가 심각했다. 김영숙씨(62·여·중구 사동)는 “소음과 먼지가 심해 창문을 열지 못한 게 몇년째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소음과 분진에 관한 지역 불만이 일자 정부는 지난해 주택가와 인접한 1, 8부두를 시민에게 개방하고 공원 등으로 재개발하기로 했다. 이런 흐름이 토론회 한방으로 ‘기업 규제’로 몰린 것이다.

취재팀이 인천내항을 방문한 날 해양수산부는 “내항 재개발은 불가피하다”고 결론냈다. 해수부는 “인천 시민 7만2000명이 재개발 요구 서명을 해 이를 외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심충식 부회장은 “우리 업체는 5부두를 사용하고 있어 1, 8부두 규제와 직접 관련도 없다. 인천 전체가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김상은 시민연합 대표는 “항만을 사용하는 대기업이 대통령에게 직접 규제 완화를 호소해 지역 여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며 “주민 서명이 없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느냐. (기업의) 이 같은 시도가 계속 나올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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