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옆 주물공장 등 5000여개 밀집… 유해물질 배출, 생존권 위협

2014.03.31 21:44 입력 2014.03.31 23:21 수정

김포 대곶면 르포… 주물공장 등 몰려와 난립, 중금속 먼지·소음피해 심각

“그렇게 살기 힘들면 팔고 이사 가라고 하더군요. 근데 이런 집이 팔리겠어요?”

경기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김의균씨(51)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김씨의 담벼락 이웃은 특수강을 생산하는 주물공장이다. 작업하는 소음이 쉴 새 없이 들렸고 금속을 가공할 때 나는 매캐한 냄새도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 주물공장 입구에는 ‘박근혜 대통령 힘내세요. ㄱ사는 창조경제를 적극 지지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박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김씨가 옥상에서 먼지를 채취해 전문기관에 보내 분석해보니 알루미늄·카드뮴·납·아연 등이 무더기로 검출됐다. 서울의 지하철 터널 내 먼지보다 중금속 함량이 더 높았다. 민원을 제기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이사 가라”였다. 김씨 집안은 이 지역에서만 400년째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는 이런 풍경이 흔하다. 김씨 2층집 옥상에서 바라본 거물대리 일대는 산업단지처럼 보였다. 공장 건물 사이로 보이는 논과 밭이 계획관리지역(농촌지역의 촌락 마을 주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공장의 상당수는 금속을 가공·생산하는 주물공장이다. 김씨는 “ㄱ사가 거짓 공문서를 시청에 제출하고, 주물공장이 아니라고 속인 뒤 입주했다. 밤만 되면 몰래 특정유해물질을 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ㄱ사는 “적법한 방법으로 인허가를 얻어 입주했다”며 “과도한 민원으로 오히려 공장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경기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에서 주민이 트랙터로 밭을 갈고 있다. 밭 왼편에 자리잡은 주물공장에 태극기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마을도로에는 주물공장 설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 서성일 기자

지난 25일 경기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에서 주민이 트랙터로 밭을 갈고 있다. 밭 왼편에 자리잡은 주물공장에 태극기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마을도로에는 주물공장 설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 서성일 기자

▲ MB 때 입지규제 풀리며 주택·농지 옆 공장 들어와
천식 등 각종 질환 늘고 암 환자 속출 ‘역학조사’
농민들 민원엔 “이사가라”

김포시 대곶면 일대에 공장이 밀려온 것은 1994년 준농림지역 제도가 운영되면서부터이다. 비도시지역 일부를 주택과 공장용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수도권과 가까운 김포가 적지가 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공장입지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공장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2004년 마련된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을 보면 인근 주민과 농경지에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했지만 2008년 고시 개정으로 이 조항을 삭제했다.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라도 주민의 집 옆에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또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공장총량제 적용대상을 200㎡ 이상에서 500㎡ 이상으로 확대했다. 소규모 공장은 총량제의 적용을 받지 않아 자유롭게 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김포시도 고용창출을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기업 유치에 나섰다.

이 결과 공장은 인근 대곶면 초원지리, 월곶면 고양2리와 갈산리 등으로 확산됐다. 김포시 자료를 보면 2009년 12월 말 3959개였던 사업장은 지난 2월 말 5078개로 늘어났다. 4년 만에 1119개(28%)가 증가한 것이다. 그나마 산업단지에 있는 기업은 768개로 전체 사업장의 15%에 그친다. 85%는 집이나 농지 주변에 있다는 의미다. 공장 대부분은 주물·플라스틱·알루니늄 창틀 등을 제조하는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이다.

시민단체 모임인 ‘김포시 환경피해 공동대책위’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김포시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은 2094곳, 수질오염물질 배출사업장 533곳, 소음진동 배출사업장은 2220곳에 이른다. 2009년쯤부터 거물대리 일대에서는 암환자가 속출했다. 공대위가 파악한 거물대리와 초원지리 일대의 각종 질환자는 34명으로 이 중 20명이 사망했다. 위암 7명, 폐암 3명, 간암 2명, 대장암 2명 등이었고 뇌졸중, 뇌종양, 심장질환, 천식 등 각종 질환이 발병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포시는 지난해 1차 환경역학조사를 했고 올해 2차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거물대리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월곶면 고양2리는 주민들이 주물공장 가동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81가구 2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이 마을에는 올해 대규모 주물공장이 들어섰다.

인삼밭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주물공장 터는 산에서 마을로 물이 내려오는 위치이다. 주민들은 공장설립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며 거부했다. 마을 어귀에는 ‘주물공장 결사 반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공장은 완공됐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자 아직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이춘선씨(72)는 “땅주인이 허락도 안 했는데 일부 부지를 일방 편입해 공장 진입도로를 만들었다”며 “거대한 주물공장이 가동되면 밥 맛 좋기로 이름난 김포미와 국내 최대 우유조합에 원유를 대던 청정지역이 결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공장 업주들은 난감해 하고 있다. 경기주물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월곶면, 대곶면뿐 아니라 김포시 전역이 다 비슷한 상황”이라며 “계속 집진시설을 설치하고 있고, 일부 기업은 산업단지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들이 산업단지보다 마을 주변 입지를 선호하는 것은 땅값이 싸기 때문이다. 산업단지는 3.3㎡당 200만~300만원이지만 마을 주변은 3.3㎡당 70만~80만원이면 된다. 산업단지에 비해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것도 이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취약 시간을 틈타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장이 들어와 망가진 농촌은 갈등도 심해졌다. “집값과 농산물값이 떨어지니 조용히 있자”는 사람들과 “끝까지 문제를 제기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다.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사람 중 일부는 지자체의 보복 단속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물대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번도 찾아오지 않던 단속반이 어느 날 정화조를 들춰보고는 규정 위반이라고 하더라”며 “어이가 없어 그냥 웃었다”고 말했다.

김포시 측은 특별히 공장에 특혜를 주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공장주들이 입지를 선호해 밀려들어오는데 막을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또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단속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포시 관계자는 “법적 절차에 맞춰 허가신청을 하면 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며 “우리도 환경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정부가 앞으로 공장설립허가를 적극적으로 해주라고 하니 그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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