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검찰 장악 본격화… 김기춘 실장 임명 때부터 ‘예고’

2013.09.14 06:00

5월부터 사퇴 압력… 공직사회에 ‘정권에 찍히면 죽는다’ 메시지

이석기·원세훈 등 정치적 파장 큰 사건 외부 입김에 휘둘릴 우려

채동욱 검찰총장(54)이 청와대의 노골적인 사퇴압력에 밀려 사의를 표명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검찰 길들이기’가 본격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을 비롯한 공직사회 전반에 ‘정권과 조선일보에 찍히면 죽는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등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검찰이 외부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채 총장의 중도사퇴는 지난달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이 임명될 때부터 ‘예고된 참사’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검찰의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 수사 때 ‘조정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전임 곽상도 민정수석을 경질한 이유였던 만큼, 채 총장의 검찰 대선배인 김 실장과 홍 수석의 임명은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13일 “지난 5월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 수사 때 황교안 법무장관과 청와대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구속수사를 사실상 막았다”며 “그때 이미 채 총장에 대한 사퇴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채 총장의 사퇴는 청와대가 검찰 인사를 무기로 검찰권을 장악하는 신호탄일 가능성이 크다. 후속 검찰 인사 때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보직에 있는 간부들이 대거 물갈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권의 눈 밖에 나면 죽는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검찰 수사의 독립성도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수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채 총장이 사의를 밝힌 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다수 검사들은 “무섭다” “두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원세훈 전 원장 등의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공소유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검찰 관계자는 “채 총장이 국정원 사건 수사 때문에 물러난 마당에 검찰의 공소유지가 쉽겠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이 향후 인사 때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검찰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법리적으로만’ 접근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정원은 형법상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해 이 의원 등을 구속했지만, 검찰 내부에선 내란음모 혐의로 이 의원 등을 기소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검찰이 이 의원 등을 기소하며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국정원을 비롯한 여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사건을 부풀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법리검토 결과 이 의원 등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해도 검찰이 이를 관철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부재 사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 등 검찰이 수사 중인 다른 정치적 사건의 처리 때도 유사한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검란을 거치면서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검찰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인사와 수사의 독립이다. 청와대가 수사를 입맛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채 총장을 몰아냄으로써 실질적인 검찰 개혁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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