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첫 보도 → 자체조사로 문건 확인 → 15개월 만에 수사 착수

2019.02.11 14:16 입력 2019.02.11 22:49 수정

첫 의혹 제기부터 양승태 구속 기소까지 2년

거짓대응·부실조사로 일관하다 김명수 취임 후 “수사 협조”

판사 블랙리스트 이어 재판거래 드러나 ‘사법농단’으로 확대

영장 기각으로 제 식구 감싸기…검찰 수사팀 키워 증거 수집

사법농단 수사팀을 이끈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사법농단 수사팀을 이끈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사법농단은 첫 의혹 제기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의 구속기소까지 2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조금씩 민낯을 드러냈다. ‘양승태 대법원’은 2017년 3월 경향신문의 첫 의혹 보도 후 거짓 대응과 부실 조사에다 추가 조사 요구도 거부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진행된 추가 조사로 ‘재판거래’ 일단이 드러났다. 지난해 6월 김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입장 발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법원은 ‘릴레이 영장 기각’으로 응수했다. 검찰은 8개월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관여 법관들의 진술과 핵심 증거들을 끌어모았다.

경향신문은 2017년 3월6일자 1면에 “‘판사들 사법개혁 움직임 저지하라’ 대법, 지시 거부한 판사 인사 조치”라는 제목으로 대법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축소 지시, 이탄희 판사의 지시 거부와 사표 제출, 이 판사에 대한 대법원의 부당 인사 조치 소식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그해 4월7일 대법원이 인사 불이익을 주려고 특정 판사들의 성향·동향을 파악했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했다. 공고했던 사법행정권의 성역에 균열을 낸 순간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거짓과 외면으로 일관했다.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3월7일 “행정처는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해 어떤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자제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거짓말이었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4월18일 연구회 학술대회에 대한 견제는 있었지만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행정처 컴퓨터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이듬해 검찰 수사에서 블랙리스트는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등으로 실재했다는 게 확인됐다.

법관들은 법원별로 판사회의를 열었다. 전국법관회의는 자신들이 직접 추가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개별적으로 시민 청원(차성안), 사직서 제출(최한돈), 금식 기도(오현석)로 추가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그해 9월 임기가 끝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고 나서야 그해 11월부터 두 차례 추가 조사가 진행됐다. 2차 조사에서 판사 동향 파악 문건이 나왔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선개입 사건의 항소심 선고를 전후해 대법원과 청와대가 교감한 문건도 발견됐다. 이듬해인 2018년 2월 시작된 3차 조사에서 확인한 문건에는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을 비롯해 옛 통합진보당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건 등 다수 재판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한 흔적이 담겼다. 이때 사법행정권 남용은 국정농단과 맞닿은 사법농단 사태로 커졌다.

김 대법원장은 관여 법관 13명을 징계 절차에 회부했다. 다수 법관들은 검찰 수사보다 법원의 자체 해결을 원했지만 여론은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들끓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1일 ‘놀이터 기자회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보름 뒤인 6월15일 김 대법원장은 장고 끝에 고발이나 수사의뢰는 하지 않지만 검찰 수사에는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3일 뒤인 18일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사건을 배당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수사는 곧 암초에 부딪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는 퇴직 후 디가우징(강력한 자기장으로 물리적 파괴)돼 있었다. 영장 판사들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 외엔 전·현직 법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검찰과 법원의 갈등도 심해졌다. 9월 대법원 문건 유출 의혹을 받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례적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직접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우회해 사법농단에 개입한 법관들을 일일이 불러 확인했다. 수사팀 규모는 중앙지검 특수 1·2·3·4부가 모두 달라붙을 정도로 커졌다. 전·현직 법관들의 진술이 쌓이면서 성과도 생겼다. 임 전 차장에게서 확보한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 행정처 문건이 대거 발견됐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공관으로 법원행정처장(차한성·박병대)을 불러 일제 강제징용 사건 재판 지연을 모의한 정황이 포착됐다.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도 재판거래 관련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업무수첩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 내용이 확인됐다. 이런 진술·증거를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임 전 차장이 구속됐다. 지난해 말 끝날 것으로 예상된 수사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영장 기각으로 다시 한 번 고비를 맞았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 개입 증거를 수집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달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 심사에서 영장 발부라는 결론이 나면서, 사법농단은 2년 만에 전직 대법원장·대법관들이 피고인석에 서는 재판 절차로 접어들게 됐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요 혐의

재판 개입·비판세력 탄압·법관비리 은폐 등 47개

검찰이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71·구속)을 재판에 넘기며 적용한 범죄 혐의는 47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등 재판 개입, 법관 인사 불이익 조치, 법관 비리 은폐,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등에 관여했다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직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공전자기록등 위작·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1.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①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직권남용)
③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직권남용)
④ 파견법관을 이용한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정보 및 동향 수집(직권남용)
⑤ 현대차 비정규노조 업무방해 사건 관련 청와대를 통한 헌재 압박 시도(직권남용)
⑥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법률신문 대필 기사 게재(직권남용)
⑦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 사건에 대한 재판개입(직권남용)
⑧ 매립지 귀속 분쟁 관련 재판개입(직권남용)
⑨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개입(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2. 대내외 비판세력 탄압

① 법관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정당한 비판 및 독립된 재판 억압(직권남용)
②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와해 시도(직권남용)
③ ‘이판사판야단법석 카페’ 와해 시도(직권남용)
④ 대한변호사협회 압박(직권남용)
⑤ 긴급조치 국가배상 인용 판결 법관 징계 시도(직권남용)
⑥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추천 개입(직권남용)

3. 부당한 조직 보호

① 전 부산고등법원 판사 비위 은폐·축소(직무유기, 직권남용)
② ‘정운호 게이트’ 관련 판사 비위 은폐·축소 및 영장재판개입(직권남용)
③ 집행관사무소 사무원 비리 수사 확대 저지를 위한 수사기밀 수집 지시(직권남용)
④ 영장청구서 사본 유출 지시(직권남용)

4.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공전자기록 등 위작·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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