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사망자 ‘선 화장 후 장례’ 지침 “법적분쟁 소지”

2020.03.03 22:47 입력 2020.03.03 22:48 수정

메르스 사태 이후 ‘예방법’ 근거 마련…복지부, 유족에 권고

최근 법원 ‘적법’ 판단했지만 최종 사인 동의 없었다면 문제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4일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을 발표했다.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려고 유족에게 ‘선 화장 후 장례’를 권고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정부 장례 지침은 적법할까. 화장, 자연장 등 장사 방법을 결정할 권한은 개인에게 있다. 감염병이 유행하면 정부는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위험이 있는 시신을 신속히 화장해 감염병 확산을 방지해야 할 필요와 의무도 있다. 여기서 개인의 장례결정권과 국가의 장례결정권이 충돌한다.

정부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이후 국가가 공중보건이라는 공익 목적으로 개인의 장례결정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근거법령을 만들었다. 2015년 12월 개정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20조의2(시신의 장사방법 등) 1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 환자 등이 사망한 경우 감염병의 차단과 확산 방지 등을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그 시신의 장사방법 등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단 유족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2항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1항에 따른 제한을 하려는 경우 연고자에게 해당 조치의 필요성 및 구체적인 방법·절차 등을 미리 설명해야 한다”고 돼 있다. 정부는 유족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화장 등으로 장례 방법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족이 화장에 동의하지 않을 때다. 사망 원인이 감염병 때문인지, 기저질환 때문인지 불확실한 때도 개인의 장례결정권과 정부의 장례결정권이 부딪힐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정부가 강제로 화장을 하면 법적 분쟁을 겪을 수 있다. 메르스 80번째 환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 등을 대리했던 이정일 변호사는 “만약 정부가 유족에게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경우 동의에 갈음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며 “최종 사망 원인이 감염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해준다든지 하는 절차 없이 바로 정부가 화장을 한다면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사건을 두고 법원은 정부의 장례결정권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했다.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심재남)는 메르스 80번째 사망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장례를 화장 등으로 제한한 정부 지침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유족 동의를 얻은 이후 장례절차가 진행됐으므로 적법했다는 것이다. 설령 유족 동의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시민 안전을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80번째 환자 유족은 사망 선고 직후 바로 화장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통보받았다”며 “유족이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해 전체 가족 중에서 배우자만 방호복을 입고 얼굴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감염병 유족은 정부 조치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는 것도 국가의 의무다. 정부가 유족을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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