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국제학교 설립 3년, 제주도 내 시선들

2013.12.25 21:47

연 학비 5000만원 특권학교, 위화감 조성·공교육 위기 몰아

‘발레와 오케스트라, 승마와 골프를 배우고 로봇공학과 세계 시사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학교.’ ‘맥북과 아이패드로 자율학습을 하며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는 학교.’

제주의 한 국제학교 홍보 글의 일부분이다. 제주 토박이인 현모씨(45) 부부는 지난해 국제학교 홍보 책자를 보면서 딸아이(16)가 보내달라고 할까봐 걱정했다. 부부의 월소득이 900만원 정도이고 영어·수학 과외비로 월 60만원씩 쓰는 중산층이지만, 한두 번 고민해본 국제학교 학비는 엄두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일반고로 진학했다. 현씨는 “그래도 찜찜함은 남아 있다”고 했다. 아이가 국제학교로 간 중학교 친구와 자연스레 멀어졌지만, 먼 훗날 그 친구의 소식을 듣고 박탈감이나 생기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캐나다 명문 여자사학 브랭섬홀의 해외캠퍼스인 브랭섬홀아시아가 개교를 앞두고 2011년 12월 서울 이화여대에서 연 입학설명회에서 한 학부모가 안내책자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캐나다 명문 여자사학 브랭섬홀의 해외캠퍼스인 브랭섬홀아시아가 개교를 앞두고 2011년 12월 서울 이화여대에서 연 입학설명회에서 한 학부모가 안내책자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시에 사는 이모씨(46·공무원)는 “국제학교는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는 곳’이란 생각 때문인지 그저 ‘그런 곳이 있구나’라고 바라본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국제학교 아이들은 ‘강남 패션’이니 뭐니 입는 옷도 다르고, 학원에서 사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고 소문나 있다. 그는 아예 ‘딴 세상’으로 보지만, 속은 좋을 리 없다고 했다. “그런 별천지가 있다는 걸 아는 것부터 애들에겐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해외 조기유학 수요를 국내로 끌어들이겠다며 제주에는 2011년 9월부터 국제학교 3곳이 생겼다. 그로부터 3년, 제주에서는 이로 인한 위화감과 공교육 위기, 사교육 과열의 부작용이 움트고 있다. 제주의 현재가 ‘비싼 특권학교’의 빗장을 속속 풀어주고 있는 한국 교육의 미래일 수 있는 셈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자회사 (주)해울이 운영하는 브랭섬홀아시아(BHA)의 연간 학비는 5498만원, 노스런던칼리지에잇스쿨제주(NLCS제주)는 5361만원이다. 두 곳 모두 수업료만 2600만~2800만원이고, 기숙사비·입학전형료 등 납부금도 비슷한 규모다. 2011년 기준 근로소득자 연평균 급여가 2817만원인 것과 견줘 상류층을 제외하곤 ‘그림의 떡’인 셈이다.

비싼 학비 때문에 학생도 대부분 서울 부유층 자녀들이다. 올해 NLCS와 BHA의 14차례 입학설명회 중 10차례는 서울의 강남·서초·목동과 경기 분당에서 열렸다. 그럼에도 현재 재학생 수는 정원의 50%를 밑돌고 있다.

[빗장 풀린 공공부문 민영화]교육- 국제학교 설립 3년, 제주도 내 시선들

3주에 380만원짜리 영어캠프를 선보인 국제학교는 사교육 시장도 달구기 시작했다. 중2 아들이 있는 권효주씨(40·서귀포시)는 “밭 몇 천평을 팔아 국제학교 지역으로 이사 가고 애를 보내겠다는 사람도 간혹 있다”며 “국제학교 아이들은 아주 고액으로 팀을 짜서 과외한다는 말도 듣는데 별세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2·중3 자녀를 둔 강모씨(48·제주시)는 “국제학교 보내겠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 때 서울에 보내 영어에세이 개인교습을 시키는 학부모들이 있다”며 “제주의 학원가에도 ‘국제학교 입학 대비’라는 광고를 내걸지만 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개인교습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위화감은 공교육에도 그늘과 주름을 낳고 있다. 박모씨(50·택시기사)는 “국제학교가 생겨서 공교육 질이 나아졌다는 말은 없다”며 “제주도 애들은 혜택 보는 것 없이 제주 개발에 쓸 돈을 국제학교에 지원해준다는 학부모들의 불만도 많다”고 말했다. 중학교 교사인 이모씨(47)는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전체 교육체계를 흔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제학교가 받는 특혜는 비싼 사립학교에 대한 특혜로 이어질 것”이라며 “현재의 ‘일반고 공동화’ 현상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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