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호스 하나로 50가구 지킨 의인들

2019.04.07 18:15 입력 2019.04.07 22:20 수정

속초시 공무원·문화예술단체 회원들, 3시간여 사투 벌여 주택 밀집지로 확산 막아

“소방차 등 각종 장비와 진화 인력은 가스충전소, 주유소 등 위험시설물에 집중 배치돼 산자락 마을을 지킬 여력이 없었어요. 속초시문화예술회관을 지키던 문화예술단체 회원과 공무원들이 달려오지 않았다면 아마 마을 전체가 불에 탔을 겁니다.”

7일 오전 강원 속초시 번영로 105번길 야산 자락. 마을의 피해상황을 살펴보던 속초시 문화체육과 김재호 체육진흥계장(54)과 김희 체육시설마케팅계장(48)은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흘 전 화마가 휩쓸어 다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능선의 소나무숲과 인접해 있는 주택 3채는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돼 있었다.

일부 뼈대만 남은 주택의 잔해 속엔 숯덩이로 변한 기둥과 흉측하게 찌그러진 철제 양동이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반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 50여채는 그을린 자국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화마에서 마을을 구한 것은 소방호스 하나에 의지한 ‘의인’들의 사투였다.

지난 4일 자정 무렵. 속초시 금호동 영랑호 쪽 숲에서 번지던 산불이 인근에 위치한 옛궁도장 주변 주택·창고 11채와 전통사찰인 보광사의 부속건물 2동을 집어삼킨 뒤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야산 자락의 이 마을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마을 길 건너 속초시문화예술회관 건물을 방어하기 위해 물뿌리기 작업을 하고 있던 김 계장 등 공무원 12명과 문화예술단체 회원 8명이 이를 목격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이들은 급수전에 소방호스 7개를 연결하기 시작했고, 이후 소방호스를 들고 좁다란 골목을 따라 언덕 맨 위에 위치한 집 쪽으로 200m가량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이미 주택 3채에 불이 붙은 상황이었다. 진화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강한 수압으로 인해 소방호스가 이리저리 튕겼다. 소방호스를 잡고 있던 공무원과 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은 수압을 이겨내지 못해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온몸으로 소방호스를 부여잡고 3시간여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나머지 주택 50여채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만약 이들이 불길을 잡지 못했다면 이 마을뿐 아니라 동명동 주택 밀집지역으로 불길이 넘어가 자칫 참사가 빚어질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김희 계장은 “물을 뿌리며 불길을 잡느라 기진맥진해 있는데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시민이 갑자기 나타나 호스 끝을 잡고 진화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함께 힘을 보탰다”며 “마을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모두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투를 벌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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