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자다 뜨거운 느낌에 깨고…타는 냄새만 맡아도 철렁”

2019.04.07 22:24 입력 2019.04.07 22:27 수정
권순재 기자

트라우마에 생활고까지

<b>망연자실</b> 7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마을 주민 김순례씨(70)가 화마에 전소된 자신의 집을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원암리는 고성 산불 최초 발화지점에서 2㎞ 정도 떨어진 마을이다.  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망연자실 7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마을 주민 김순례씨(70)가 화마에 전소된 자신의 집을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원암리는 고성 산불 최초 발화지점에서 2㎞ 정도 떨어진 마을이다. 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자려고 누우면 화재로 집을 빠져나올 때가 떠올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겨
30년 그린 그림 불타 눈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회관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화가 정광섭씨(64)는 참담한 표정으로 현재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원암리는 고성 산불의 최초 발화지점에서 2㎞ 정도 떨어진 마을이다. 산불이 번진 정씨의 집은 형체만 남은 채 전소됐다. 그는 “대피 당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며 “불이 집으로 옮겨붙는 것을 봤지만 화염의 기세가 너무 강해 소화기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술의 힘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술을 마셔도 잠이 잘 안 온다”며 “30년 넘게 그린 그림을 집에 두고 나온 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불길 속을 뚫고 나온 이재민들은 집을 잃은 충격과 함께 대피 당시 느꼈던 공포감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회관에서 이번 화재로 집을 잃은 마을 주민 14명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윤명숙씨(77)도 “놀란 마음이 아직도 진정이 안된다”고 말했다. 윤씨는 “타는 냄새만 맡아도 가슴이 철렁한다”며 “자꾸 떠오르는 화재 당시 기억으로 잠을 못 자고 뜬눈으로 지새우는 주민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재민 임경수씨(59)는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난다”며 “사람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돼 임시대피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고성군 토성면 천진리 천진초등학교 체육관 임시대피소에서 의료지원을 하고 있는 홍인숙 정다운심리상담연구소장은 “밤에 잠을 자다가 뜨겁다며 깨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재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재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정신적인 충격 외에도 살아갈 일에 대한 걱정이다. 강원 산불 발생지역들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불에 타버린 주택을 재건축하고 살림살이를 다시 장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전원생활 꿈꾸며 귀촌해
기와집 2채 짓고 살았는데
산불로 모든 걸 잃고 쪽박”

8년 전 서울에서 퇴직한 후 전원생활을 하려고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집을 지어 귀촌했다는 장홍기(67)·박영희(61)씨 부부는 “산을 좋아해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는데 쪽박을 차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 부부는 빨간 벽돌의 기와집 2채를 만들어 생활했지만 이번 산불로 모든 것을 잃었다. 장씨는 “돈이나 세간이 있으면 오피스텔이라도 구해서 살면 되는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보험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한숨지었다.

“대피소 춥고 불편” 호소도

임시대피소의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천진초 임시대피소에 있는 장씨는 “새벽에 춥고, 허리가 배겨 힘들다”며 “화장실도 남녀 화장실 1곳씩만 있어 양치를 하려 해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샤워를 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차를 타고 목욕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임시대피소에 있는 김순애씨(82)도 “자고 일어나면 허리부터 온몸이 아프고 마땅치 않다”며 “대피소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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