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산불 악몽…‘천수답 대응’ 언제까지

2019.04.07 22:31 입력 2019.04.07 23:03 수정

① 헬기, 야간 진화 시스템 갖춰야 ② 발화 전기시설 지중화 서둘러야

③ 소나무 대신 활엽수림 늘려야 ④ 재난 방송, 속도·실효성 높여야

강원도 산불 발생 나흘째인 7일 오전 초록빛이었던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야산이 불에 타 온통 시커멓다. 푸른빛을 잃은 산악의 풍경이 저 멀리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룬다.  연합뉴스

강원도 산불 발생 나흘째인 7일 오전 초록빛이었던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야산이 불에 타 온통 시커멓다. 푸른빛을 잃은 산악의 풍경이 저 멀리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룬다. 연합뉴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강원도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군 등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산림 530㏊(530만㎡)를 초토화했다. 재산피해만 수천억원대였다. 태풍급 강풍 속에서도 신속한 진화에 나서 피해를 줄였지만,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위력을 실감케 한 화재였다.

4월의 동해안 대형 산불의 ‘악몽’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다.

1996년 3762㏊를 태운 고성 산불을 비롯해 1998년 강릉 사천(301㏊), 2000년 동해안 4개 시·군(2만3138㏊), 2004년 강릉 옥계(430㏊), 2005년 양양(1141㏊) 등지에서도 대형 산불이 이어졌다. 한동안 잠잠했던 동해안 산불은 2017년 삼척(765㏊)과 강릉(252㏊), 지난해 3월 고성 간성(356㏊)에서도 발생해 막대한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주로 3~4월에 동해안지역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양간지풍(襄杆之風)’으로 불리는 초속 10~30m의 국지적 강풍을 타고 급속히 확산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05년 4월 산불이 천년 고찰인 낙산사를 집어삼켰을 당시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32m에 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형·기후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반복되는 산불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천수답식 대응이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각종 진화장비를 보강하고, 방화수림을 조성하는 등 대형 산불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로드맵을 마련해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4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사흘 만에 진화가 완료된 동해안지역 산불은 야간에 취약한 산불 대응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국에서 산불 진화에 동원할 수 있는 헬기는 산림청 47대, 소방청 28대, 국방부 20대, 경찰청 3대, 국립공원 1대, 자치단체 임차 헬기 66대 등 160여대다. 초속 20m 안팎의 강풍에도 이륙해 진화할 수 있는 초대형 헬기와 대형 헬기는 각 4대와 30대에 불과하다. 산불 진화에서 헬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이지만, 야간 투입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산불현장에 투입된 진화 헬기는 일몰 후 철수한다. 방재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진화 헬기 동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야간에도 투입할 수 있는 첨단헬기를 서둘러 도입해야 산불을 조기에 진화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산림과 인접한 노후 전기시설 등 발화요인이 될 수 있는 각종 시설을 정비하고 지중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번에 고성·속초 지역을 초토화한 산불은 지난 4일 오후 7시17분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주유소 맞은편 전신주 개폐기 주변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발생했다. 강풍을 타고 날아온 이물질이 개폐기에 연결된 전선에 부딪쳐 아크(전기불꽃)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3월28일 축구장 500개 면적에 해당하는 357㏊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고성 산불’도 채석장 업체의 ‘전선 단락’(끊어짐)에 의한 실화로 드러나 업체 대표 등이 업무상 실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기 설비시설 기준에 따른 안전조치를 미흡하게 한 것이 발화의 빌미가 됐다”고 밝혔다.

강원도 동해안지역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침엽수림이 많은 것도 산불 대형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 이젠 새 로드맵 짤 때다

소나무는 테레핀이라는 기름 성분이 20%를 차지해 불이 오래 잘 타고, 가벼운 솔방울에 불이 붙으면 바람을 타고 수백m를 날아가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해마다 소나무 등 침엽수가 대형 산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으로 복구 과정에서 활엽수 비중을 늘려 산불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산림청의 ‘2018 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에서 산림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은 강원도로 전체의 22%를 차지한다. 2015년 기준 강원도의 침엽수림은 43만6591㏊로 전체의 31% 정도지만, 실제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인 혼합림을 합치면 60%에 이른다. 이번 산불 피해 지역의 80~90%는 소나무 등 침엽수가 밀집한 곳이다. 이에 따라 산불 등 각종 재해에 잘 견디는 건강한 숲으로 조성하기 위해선 산림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법은 활엽수림을 늘리는 것이다. 상수리나무나 참나무 같은 활엽수는 물을 많이 머금고 잎이 넓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화재에 잘 견딘다.

대형 산불은 재난 보도의 민낯도 드러냈다. 산림청은 지난 4일 오후 10시에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그러나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는 오후 10시53분에야 특보를 내보냈다. 이마저도 약 10분간 특보를 내보낸 뒤 오후 11시5분 정규 편성된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하다가 20분 만에 다시 특보체제로 전환했다. MBC와 SBS도 정규편성 방송을 내보내다 각각 오후 11시7분, 11시52분쯤 특보를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특보 방송도 함량 미달이었다. 2017년 개정된 재난방송 관련 고시에 따라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재난상황을 효율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했지만, 이날 특보 방송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는 성명을 내고 “4일 밤 화재가 발생한 지역의 청각장애인들은 열 시간 가까이 제대로 된 재난 대피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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