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보지 않는 ‘돌봄노동자’

2010.03.08 00:46

‘희망대회’서 쏟아진 증언

간병·보육·장애인 보조인 등 대부분 여성

저임금에 조건 열악… 노동자 인정도 못받아

“여성에게만 전가 말고 사회가 책임 나눠야”

김모씨(49·여)는 자폐아동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시급 6000원을 받고 있지만 노동강도와 전문성에 비해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라고 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일을 하게 돼도 시급은 똑같고,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시급은 6000원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일은 보람이 있지만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육교사 심선혜씨(33·여)는 점심시간이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은 7~10분 만에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돌본다. 만성 위장장애에 시달리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심씨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보육교사는 없다”면서 “하지만 보육교사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이라며 울먹였다.

‘세계 여성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전국여성대회의 사전행사로 열린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에선 요양·간병·보육 등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돌봄의 책임과 노동이 근래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았지만 저임금에다 여성들만의 열악한 일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b>“평등 사랑, 평등 노동”</b> 간병인,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등 여성들이 대부분인 ‘돌봄노동’ 종사자들이 지난 6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에 참가해 “평등한 사랑, 평등한 노동”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날 “돈을 더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돌봄이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한 사회서비스를 만들자”는 내용을 담은 ‘돌봄노동자 희망선언’을 발표했다. | 정지윤 기자

“평등 사랑, 평등 노동” 간병인,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등 여성들이 대부분인 ‘돌봄노동’ 종사자들이 지난 6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에 참가해 “평등한 사랑, 평등한 노동”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날 “돈을 더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돌봄이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한 사회서비스를 만들자”는 내용을 담은 ‘돌봄노동자 희망선언’을 발표했다. | 정지윤 기자

주민순씨(58·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주씨는 그러나 “벌써 10년은 흐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양성된 요양보호사는 80만명이 넘지만 일자리는 7만개 수준이다. 시급제인 요양보호사들의 급여는 월평균 55만원이다. 주씨는 “요양 이외에도 내가 담당해야 하는 잡무가 너무 많다”며 “실제로는 설거지에서부터 속옷 다림질까지 다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간병인 정금자씨(60·여)는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고 했다. 유료소개소를 통해 환자·보호자에게 고용된 처지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정씨는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시급 2500원을 받으며 24시간 노동을 견딘다”면서 “이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지 않는 동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참석한 노동자들은 희망대회를 준비한 3·8 세계여성의날 공동기획단·공공서비스노조 등과 함께 ‘돌봄노동자 희망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돌봄노동은 여성과 가족에게 전가하지 말고 사회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면서 “시장에 모든 것을 떠넘긴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을 반대하며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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