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성과급제 확대 땐 되레 저임금 유지 수단 악용될 가능성

2015.03.30 21:56 입력 2015.03.30 22:33 수정
강진구 기자

(4) 임금 유연성 강화의 덫

▲ 비정규직, 별도 직무로 묶어 기존 정규직도 저임금 고착
지급기준따라 성과급 고무줄… 인사평가 놓고 내부 분란 소지
친사용자 노조 만들기 활용도

“욕먹을 각오를 하고 임금체계를 꼭 고치겠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지나친 연공형 임금체계를 손보는 것이 시급하다”며 직무·성과급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향해 강한 의지를 내보이면서 한 말이다. 과연 이 장관의 바람대로 직무·성과급이 확대되면 신규 고용창출과 임금격차가 줄어들 수 있을까.

이마트노조 조합원과 노동·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마트 직무급제 도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직무급제 도입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고착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마트노조 조합원과 노동·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마트 직무급제 도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직무급제 도입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고착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장관이 인터뷰한 지 3일 후인 지난 26일 이마트 노조 조합원들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저임금의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신인사제도를 폐지하라”고 외쳤다. 이마트가 지난 1일 도입한 신인사제도는 종전 3개의 직군과 직군별 5~6개의 직급, 직군 내 선임직책을 모두 없애고 ‘밴드’라는 새 개념을 도입해 사원들을 배치관리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다단계 직급체계를 없애 연공서열식 임금 격차를 축소하고, 동일직무·동일노동 원칙에 가까운 임금체계로 보인다.

하지만 이마트 노조는 “신인사제도는 직무급 제도 적용을 통해 저임금을 고착화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과거에는 직군·직급·직책 승진에 따라 단계적으로 임금상승 기회가 주어졌지만, 신인사제도에서는 매장 직원 대부분을 한 밴드에 묶어 장기간 승진 기회와 임금 상승이 억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마트는 2007년 비정규직 캐셔 6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홍보했지만, 별도의 직무급제도를 적용해 이들은 10년 가까이 최저임금 수준에 임금이 묶여 있다.

국민체육관리공단도 2007년 경륜·경정 경기장에서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운영직이라는 직군 분리를 통해 정규직의 50%도 안되는 임금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두 사례는 직무급 제도가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 전환자의 임금 차별을 합리화하고, 단순 노무종사자들에 대한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이미 청소·경비 노동자는 사회적 직무급이 적용돼 저임금 일자리로 낙인찍혀 있는 상태”라며 “직무급이 확대되면 무기계약직이나 단순노무 종사자들의 저임금과 임금차별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꾸로 가는 노동 개혁]직무·성과급제 확대 땐 되레 저임금 유지 수단 악용될 가능성

연공급 폐지 후 또 하나의 대안으로 홍보하는 ‘성과급’ 제도 역시 노동자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인사평가의 객관성을 놓고 내부 분란이 일어날 소지도 높다.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경주마를 관리하는 마필관리사 조모씨의 지난해 9월 급여명세서를 보면 기본급 108만원에 성과급은 155만원이다. 다행히 9월에는 마방의 출주 상금이 많아 100만원 이상 성과급을 가져갔지만 성과급이 한 푼도 나오지 않는 달도 있다. 그럼에도 근로계약서상 성과급 지급기준에는 달랑 한 줄, ‘갑의 경영성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적혀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도 매년 3월 연봉액수가 결정될 때마다 술렁인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전 계열사에 ‘인사평가 시 전 직원의 10%는 의무적으로 4~5등급인 NI 또는 UN 등급을 주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우리사주 배정권 침해 문제를 놓고 집단소송 중인 삼성웰스토리의 한 직원은 내부 인터넷카페에 “더 이상 더러운 꼴을 보기 싫어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부서장이 ‘그럼 너한테 NI등급을 줘도 괜찮겠니’라고 물어보더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직원은 “정년 60세 시행을 앞두고 주로 50대 후반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최하등급을 받아 연봉이 한 해에만 600만원 깎였다”고 밝혔다.

특히 복수노조 시행 후 성과급은 사용자가 친사용자노조를 과반노조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2011년 노조설립 후 숱한 조합원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를 남발하다 부당노동행위로 벌금형까지 받은 일본계 기업 아데카코리아가 대표적이다. 아데카코리아는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일부 직원에 대해 연봉의 20~3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불이익을 본 직원 대부분은 노조 조합원들이었다.

일부 조합원들이 탈퇴하면서 과반노조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직무·성과급 도입에 앞서 노사 간 힘의 균형 회복과 노동3권에 대한 실질적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300인 이상 대기업의 79.7%가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성과배분제도(75.5%)와 연봉제(46.8%) 등 임금체계도 함께 시행하고 있다”며 “경력 초반에는 연봉제, 후반에는 성과급제, 말기에는 임금피크제로 임금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노동자 전반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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