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사람들은 비오면 잠 못자요”

2011.07.28 21:44

작년 이어 또 침수 피해 신월동 르포

“새벽에 빗소리에 깼어요. 이 동네 사람들은 비가 오면 잠을 못 자요.”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반지하방에서 10년째 살아온 박화자씨(52)는 28일 딸과 함께 흙탕물에 젖은 컵, 그릇 등을 닦고 있었다. 박씨는 지난해 추석 연휴 때에 이어 이번 폭우에도 침수를 겪었다.

“지난해엔 명절이라 시골에 내려가서 손도 못 쓰고 당했어요. 어제(27일)는 집에 사람이 있어서 물이 들어올 때 바로 물건들을 싱크대와 책상 위로 올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b>가재도구 말리기</b> 집중호우로 침수된 서울 양천구 신월동 주민들이 28일 가재도구를 내놓고 청소를 하고 있다. 신월동 일대는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도 많은 집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 권호욱 선임기자

가재도구 말리기 집중호우로 침수된 서울 양천구 신월동 주민들이 28일 가재도구를 내놓고 청소를 하고 있다. 신월동 일대는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도 많은 집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 권호욱 선임기자

27일 새벽 5시, 허리춤까지 물이 차올랐다. 잠시 물이 빠지나 싶더니 오전 9시쯤 되자 다시 물이 허리까지 찼다. 28일 오후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전날 같은 폭우는 없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딸 김은희씨(35)는 “바닥의 물기를 다 닦아내도 이불을 깔면 다 젖는다. 그래도 또 비가 들이칠까봐 집을 비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 가족들은 “몸이 가렵다. 하수구에서 역류해 올라온 물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28일 오후 3시 현재 신월1동에서 침수피해를 당한 집은 420여가구에 이른다.

이날 비가 조금 뜸해지자 침수피해를 당한 반지하방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물건들을 꺼내놓고 정리하고 있었다. 장판을 걷어내고 보일러를 틀어놓은 집은 복구가 빠른 편이었지만, 방안 가득 흙탕물의 흔적이 어지럽게 남아있는 집들이 더 많았다.

반지하방 2개를 전세 준 집주인 이홍순씨(71)는 출근한 세입자들 대신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씨는 손가락으로 물이 찬 흔적이 남은 반지하방 벽을 가리켰다. 이씨의 허리를 훌쩍 넘는 높이였다. 방안은 후끈했다. 이씨는 “아침부터 방을 말리기 위해 보일러를 켜놓다가 더워서 잠시 껐다”고 말했다. 선반에 놓인 옷에는 여기저기 흙탕물이 튄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싱크대 안에도 진흙이 보였다.

이씨는 지난해 침수를 당하고 600만원을 들여 펌프도 새로 달고 내부도 고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비가 와서 걱정돼 새벽부터 일어나 현관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았지만 손도 못쓰고 당했어요.”

펌프는 물에 젖어 바로 망가졌다. 동사무소에서 빌려온 양수기로 물을 퍼내도 퍼낸 만큼 금세 찼다.

침수피해를 당한 주민들은 의식주 문제 해결이 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이사왔다는 박영수씨(56)는 “교회에서 도둑잠을 자다 새벽 예배 보기 전에 몰래 나왔다. 점심도 교회에서 얻어 먹었다”고 말했다.

신모씨(56)도 “피해를 입어서 잠잘 곳,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 아무 대책도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1공수여단 소속 병사 47명이 팀을 나눠 복구작업을 돕고 있었다. 반지하 가구 거주민들은 노년층이 많기 때문이다. 김모 중사(28)는 지난해 침수피해를 입은 집을 다시 찾아왔다.

“지난해 피해를 당한 곳이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된 걸 보니 안타깝습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제대로 조치가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심광식 양천구의회 의회운영위원장은 “상습 피해지역이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하수관이 낡고 좁아서 교체를 해야 하는데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민 김이성씨(48)는 “양수기도 소용없었다. 하수가 역류해서 퍼내도 다시 하수구에서 올라왔다. 배수처리 시설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희씨는 “복구지원금으로 100만원, 200만원 주는 것보다 배수공사를 완벽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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