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 강사진에…미래부·특허청·한림원도 깜빡 속아 후원

2015.11.02 06:00 입력 2020.02.28 16:45 수정
강진구 기자

김흥기 ‘가짜 수료증 장사’ 전말

‘국정원 댓글부대’ 의심을 받는 용역업체에 회장으로 영입된 김흥기 카이스트(KAIST) 겸직교수(53)가 중국과학원의 이름을 팔아 2년간 ‘가짜 수료증’ 장사를 하는 사이 누구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정·관·재계에 넓게 뻗어 있는 그의 인적네트워크와 강사로 동원된 전·현직 장차관들을 보고 정부 고위직들도 포함된 수강생들은 사기극에 ‘들러리’만 선 것이다. 김 교수가 카이스트 홈페이지에 모스크바국립대 초빙교수로 소개한 약력도 가짜로 확인된 상태다.

김 교수가 2013년 9월 서울 강남에 개설한 ‘중국과학원(CAS) 지식재산 최고위과정’은 모집요강만 보면 마치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과정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모집요강을 보면 중국과학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공동 주최기관이고, 미래창조과학부·특허청·중소기업청이 후원했다. 강사진으로 정운찬 전 총리와 전·현직 장차관, 국회의원 등이 나섰다. 1~4기까지 13주씩 운영된 최고위과정은 교육비가 1인당 600만원이다. 수강생 대부분이 인적네트워크 구축에 목마른 중소기업 대표들인 점을 보면 가장 효과적인 ‘장사’를 한 것이다.

<b>박사 학위도 가짜 </b>지난해 12월 ‘국정원 댓글부대’ 의심을 받고 있는 용역업체 회장으로 영입된 김흥기 카이스트(KAIST) 겸직교수(왼쪽)가 자신을 모스크바국립대 초빙교수로 소개하면서 동영상에 올린 사진. 김 교수가 2011년 12월에 받았다는 명예박사 학위는 모스크바국립대와 무관하고, 초빙교수 약력도 가짜로 밝혀졌다.

박사 학위도 가짜 지난해 12월 ‘국정원 댓글부대’ 의심을 받고 있는 용역업체 회장으로 영입된 김흥기 카이스트(KAIST) 겸직교수(왼쪽)가 자신을 모스크바국립대 초빙교수로 소개하면서 동영상에 올린 사진. 김 교수가 2011년 12월에 받았다는 명예박사 학위는 모스크바국립대와 무관하고, 초빙교수 약력도 가짜로 밝혀졌다.

공공기관들이 김씨의 사기극에 말려든 단초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제공했다. 정길생 한림원 이사장은 “2013년 5, 6월쯤 이상희 전 과기처 장관이 김 교수를 소개하면서 중국과학원과 공동으로 지식재산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부탁으로 한림원이 타이틀 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이후엔 일사천리였다.한림원의 공신력만 믿고 발명진흥회는 특허청에 사업계획을 보고했고, 특허청은 후원기관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한림원에 타이틀 후원을 부탁한 이 전 장관은 처음부터 중국과학원의 승인을 얻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중국과학원과의 접촉은 김 교수 쪽이 진행했는데 ‘합의서’가 만들어지기 전 양해각서 체결 상태에서 사업이 시작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기관들은 황당한 해명만 내놓고 있다. 특허청은 후원뿐 아니라 매 기수 5명씩 우수 수료자에게 상장까지 수여했음에도 “입학식 때 중국과학원 교수가 참석까지 했다”며 ‘사기극’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특허청이 지목한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 쓰용 교수는 “중국과학원과 전혀 상관이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공식 수료증이 발부됐다는 얘기에 “한국 수강생들이 (우리 센터를) 방문하면 소정의 코스를 밟은 데 인증을 주는 것이고 그것도 비공식 교류일 뿐”이라며 펄쩍 뛰었다.

지난 5월 발급된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 4기 수료증에 중국과학원  도장이 찍혀 있으나 가짜로 판명됐다.

지난 5월 발급된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 4기 수료증에 중국과학원 도장이 찍혀 있으나 가짜로 판명됐다.

한림원 정 이사장과 박규택 수석부원장도 쓰용 교수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이들은 “중국과학원과의 공동주관은 아닌 것 같았지만 취지가 좋아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주변에서 간곡한 부탁이 있어 강연하긴 했는데 다시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김영민 전 특허청장은 “비서가 김 교수가 보낸 편지를 보여주면서 강의를 가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서 갔던 것뿐”이라고 밝혔다. 미래부 최재유 차관은 “국장 시절 동료가 소개해서 강의를 들었을 뿐인데 그게 뭐 큰 문제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가짜 약력과 수료증 장사를 해명하라’는 문자메시지에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가 활동했던 블로그나 사이트도 대부분 폐쇄되거나 비공개로 전환됐다.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반론보도문>

경향신문은 원고에 대하여 2015. 11. 2. 보도한 [(단독)‘댓글용역’ 김흥기, 장 차관 동원해 ‘가짜 수료증 장사’] 기사, 2015. 11. 2. 보도한 [장, 차관 강사진에…미래부, 특허청, 한림원도 깜빡 속아 후원] 기사 등에서 ‘원고는 중국 과학원 명의를 도용한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을 개설하여 수강료로 1인 600만 원을 받음으로써 가짜 수료증 장사를 하였다’는 내용, ‘원고가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처럼 행세하였다’는 내용을 보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고는 위 각 보도에 대하여 원고가 운영하는 ‘지식센터 주식회사’는 중국과학원의 쓰용 교수가 부원장으로 재직하던 ‘중국과학원 가상경제 및 데이터과학센터’로부터 운영에 관한 정식 승인을 받아 ‘중국과학원 지식재산권 최고위과정’을 개설, 운영하면서 그 수료자에게 ‘중국과학원 가상경제 및 데이터과학센터’가 발급한 수료증을 교부하여 주었고, 원고는 ‘유라시아 무브먼트’로부터 명예이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는 반론을 제기하므로, 이를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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