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도시의 그늘···슬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16.02.21 13:27 입력 2016.02.21 13:33 수정

슬럼(Slum)은 도시화가 낳은 지극히 현대적인 공간입니다.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의 도시는 유례없는 폭발적인 인구성장을 감당해왔습니다. 2014년 유엔이 집계한 세계의 도시화 비율은 54%. 전 세계 도시인구는 1950년 7억4600만 명에서 현재 39억 명까지 급증했고, 2045년에는 6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됩니다.

미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최첨단 고층빌딩이 즐비한 풍경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에서 “21세기의 도시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는 도시가 아니라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로 둘러싸여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도시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거리에 빨래가 널려 있는 1888년 뉴욕 빈민가의 풍경

거리에 빨래가 널려 있는 1888년 뉴욕 빈민가의 풍경

슬럼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고, 특히 저개발국에서 그렇습니다. 초거대도시 옆에는 예외없이 메가슬럼이 생겨났습니다. 도시가 발전하면 슬럼은 자연스레 사라질 거란 믿음이 있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깨진 지 오래입니다.

슬럼은 분명 낙후되고 거칠고 비위생적이며 안전하지 않은 곳입니다. 하지만 슬럼에 사는 주민들의 불안정한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와는 별개로, 도시화의 부산물인 슬럼을 칼로 도려내듯 없애 버리기는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많은 대도시에서 없애 버리고 싶어 하는 슬럼의 거주자들은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도시의 성장을 함께해 온 주체이며 도시의 구성원입니다. 슬럼은 시스템의 밖에서 새로운 실험을 펼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슬럼의 탄생


슬럼이라는 단어는 도시화가 진행되던 19세기 초반에 처음 생겨났다고 합니다. 현대적 의미의 슬럼이 처음 생겨난 것도 이 시기의 일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슬럼을 형성했습니다.

세계 도시-농촌 인구 변화 그래프. 2000년대에 이미 도시인구가 농촌인구를 추월했다. /유엔 보고서

세계 도시-농촌 인구 변화 그래프. 2000년대에 이미 도시인구가 농촌인구를 추월했다. /유엔 보고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배경이 된 미국 뉴욕의 파이브포인츠에는 가난한 시골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거대한 슬럼을 이뤘죠.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골칫거리도 군데군데 퍼져 있는 슬럼이었습니다.

20세기 중후반부터는 저개발국에서도 도시화가 진행되며 슬럼이 만들어졌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저개발국 도시인구 중 33%는 슬럼에 삽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도시인구 중에서는 무려 61.7%가 슬럼에 살고 있죠.

지난 세기 동안 성장한 저개발국의 도시 중에 중국이나 독일, 대만처럼 강력한 공산품 수출동력이나 외국 자본의 대규모 유입으로 탄탄한 경제기반을 갖춘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도시화는 산업화와, 혹은 개발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진행됐습니다. 도시경제의 규모는 커지지 않고 인구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제3세계의 도시는 가난한 공간으로 변해갔습니다.

철로가 지나가는 케냐 나이로비 키베라 슬럼 /(cc) Trocaire at wikipedia.org

철로가 지나가는 케냐 나이로비 키베라 슬럼 /(cc) Trocaire at wikipedia.org

슬럼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만듭니다. 과거 선진국에서는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도시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슬럼에 둥지를 틀었다면, 지금 저개발국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 생계를 유지하러 도시의 슬럼으로 향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농업의 붕괴입니다. 인도에서는 1954년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52%를 차지했지만 2014년에 그 비중은 17%로 뚝 떨어졌습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같은 문제가 생겼죠.

지난 50년간 전 세계 인구는 2.5배 늘었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30% 줄었습니다. 몰락한 농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향했고, 주거비용을 아끼기 위해 슬럼에 정착했습니다. 농업의 몰락과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슬럼이 커지는 건 이 때문입니다.

슬럼이 낙후될수록 도시 공간은 양극화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빽빽한 슬럼에 몰려 사는 동안 부자들은 철통 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개인 공간을 마음껏 이용하죠. 케냐의 나이로비 한복판에는 아프리카 최대 슬럼인 키베라가 있습니다. 여의도 절반만한 넓이에 50만~100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나이로비에는 이런 슬럼만 여러 군데가 있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경비원이 마을 앞을 지키고 정원과 주차장이 딸린 부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슬럼의 주거환경


유엔은 슬럼을 ‘삶의 질이 낮으며 오염돼 있는 쇠락한 도시, 혹은 도시의 한 지역’이라고 정의합니다. 사실 태생부터 그런 공간이 많습니다. 아시아 최대 슬럼 중 하나인 인도 뭄바이의 다라비 슬럼을 살펴볼까요.

케냐 나이로비 키베라 슬럼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 /출처: (cc) genvessel from Waco, TX, United States at wikipedia.org

케냐 나이로비 키베라 슬럼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 /출처: (cc) genvessel from Waco, TX, United States at wikipedia.org

19세기 후반, 인구밀도가 런던의 10배에 달했던 뭄바이에서 전염병이 퍼지자 영국 식민지 정부가 도시 외곽의 다라비로 오염시설과 그 종사자들을 쫓아내 버렸던 게 슬럼의 토대가 됐습니다. 식민지 정부는 이후에도 다라비에 인프라 투자를 하지 않았고, 다라비는 위생시설이나 배수시설, 식수, 도로 등 기본 인프라 없이 성장만 거듭했습니다.

인프라도, 경제기반도 없이 어떤 특정한 이유로 인구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슬럼에서의 삶의 질은 매우 낮습니다. 슬럼을 키우는 또 하나의 원인은 분쟁입니다. 10년 넘게 분쟁으로 고통받아온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매일 400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도 카불에는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이 만든 거대한 슬럼이 생겨났습니다.

토레 데 다비드의 2011년 외관 /제공: 미메시스

토레 데 다비드의 2011년 외관 /제공: 미메시스

2012년 국제앰네스티 보고서가 전한 카불의 슬럼 풍경은 처참합니다. 진흙과 합판, 비닐로 지은 임시 거처는 비바람을 막아주기 역부족이라 2012년 1월 한 달 동안에만 5세 이하 영유아 20명이 동사했습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물은 10리터에 불과하고요.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합니다. 끊임없는 강제퇴거의 압박에도 시달려야 하죠.

슬럼은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슬럼 주민들은 마약 밀매나 성매매와 같은 지하경제로 돈을 법니다. 멕시코의 티후아나와 콜롬비아의 보고타 같은 남미 도시의 슬럼들은 마약 갱단이 장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강력범죄의 온상인 곳도 많습니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슬럼 치안유지를 위해 군을 투입할 정도입니다.

질병과 전염병도 큰 문제입니다. 높은 인구밀도와 열악한 위생상황, 낮은 예방접종률, 의료 인프라의 부재 등 병을 불러오는 요인들은 셀 수도 없죠. 아이들에게서는 영양실조가 나타납니다. 인도 뭄바이와 뉴델리의 슬럼에 사는 5세 미만 영유아 중 절반은 나이에 맞게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슬럼에서 벌어진 실험


유리 벽재가 붙어있지 않은 토레 데 다비드의 한쪽 벽면 <제공: 미메시스>

유리 벽재가 붙어있지 않은 토레 데 다비드의 한쪽 벽면 <제공: 미메시스>

슬럼이 더럽고 살기 어렵고 위험한 곳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도시의 주류문화와 경제논리에서 비껴난 슬럼은 인프라 문제를 해결한다면 가장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으로 변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쪽으로 가장 유명한 슬럼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중심가의 ‘토레 데 다비드’일 겁니다.

‘토레 데 다비드’는 ‘다비드의 탑’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금융센터로 지어졌던 이 초고층빌딩은 1993년 주요 투자자가 죽고 1994년 베네수엘라에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완공 직전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해 공사자금을 댈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골조 공사와 외벽 유리 일부를 붙이는 작업까지 끝낸 상태였습니다. 한때 석유로 쌓은 부의 상징이 될 뻔했던 마천루는 실패한 자본주의의 증거로 남았고, 정부 소유로 넘어간 채 10년 넘게 방치됐죠.

이 건물은 2007년쯤 도시 빈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무허가 점거를 시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슬럼이 됐습니다. 2014년 이곳에 살았던 주민은 750가구, 3000명에 이릅니다. 슬럼 주민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맞게 자치기구를 꾸리고 공간을 재배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슬럼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건물은 도심의 폐허에서 새로운 도시건설의 실험장으로 변해갔습니다.

주민들은 수도와 전기를 끌어 왔고 하수처리시설과 쓰레기처리시설도 마련했습니다. 곳곳에 공중화장실, 샤워시설도 만들었죠. 지하에는 교회가, 지상에는 농구코트가 마련됐습니다.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8층 발코니에는 공사부품으로 만든 운동기구를 갖춘 작은 헬스장이 생겼고요. 미용실이나 세탁소, 식료품점, 병원 같은 시설도 들어섰습니다.

건축가 그룹 어번 싱크탱크는 토레 데 다비드의 주민들이 만든 이 삶의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2012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 출품했고 최고상인 황금사자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토레 데 다비드의 실험은 점령 8년 만에 끝났습니다. 종종 강력범죄가 발생한 이 슬럼을 치안불안 요소로 간주한 베네수엘라 정부가 2014년 강제퇴거를 시작했거든요. 퇴거는 2015년까지 모두 끝난 상태로, 이 건물은 곧 문화센터가 된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왜 슬럼을 떠나려 하지 않을까


세계 각국 정부는 호시탐탐 슬럼을 없앨 기회를 노립니다. 무허가 불법 거주지인 슬럼이 토지 소유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리죠. 때로는 도심 슬럼을 제거하기 위해 도시 외곽의 대체 주택으로 주민들을 이주시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토레 데 다비드의 주민들을 도시 바깥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쫓아낸 것처럼요.

리우데자네이루의 고층빌딩촌 옆에 자리 잡은 호싱야 슬럼 /출처: (cc) Alicia Nijdam at wikipedia.org

리우데자네이루의 고층빌딩촌 옆에 자리 잡은 호싱야 슬럼 /출처: (cc) Alicia Nijdam at wikipedia.org

하지만 슬럼 주민들을 도시 외곽으로 이주시키면 이들은 살 수 있을까요? 남미에서 가장 큰 슬럼 중 하나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호싱야는 화려한 고층빌딩이 즐비한 해변가의 부유한 지역과 인접해 있습니다. 부촌의 허드렛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콜롬비아 메데인의 언덕 슬럼과 도심지대를 잇는 케이블카 /출처: (cc) Camilo Sanchez at wikipedia.org

콜롬비아 메데인의 언덕 슬럼과 도심지대를 잇는 케이블카 /출처: (cc) Camilo Sanchez at wikipedia.org

슬럼이 도시 부근이나 도심지에 형성된 이유는 슬럼 주민들이 도시의 일원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의 강제이주는 슬럼 주민들의 수많은 삶의 차원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위생시설과 도로, 공원, 조명, 하수처리시설 등을 보급해 슬럼을 ‘업그레이드’ 하려는 시도도 많았습니다. 마약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본거지로 잘 알려진 콜롬비아의 메데인은 도시의 중심부와 언덕지대 슬럼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건설해 빈민들의 도심 이동을 쉽게 하고 실제 소득개선에도 기여한 모범사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인프라만 깔아주는 형태의 해결책은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1990년대 슬럼 업그레이드를 위해 공중화장실 등을 공급했지만 결국 주민들이 관리에 손을 놓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개발국의 구조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슬럼만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없을 것 같네요.

■“가난을 팝니다” 슬럼투어


최근 ‘슬럼투어’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이드와 함께 유명한 슬럼을 돌아보면서 구경하는 프로그램이죠. 200루피(약 3600원) 정도의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다라비 슬럼을 방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슬럼투어는 19세기 후반 런던과 뉴욕의 부유층들이 런던 이스트사이드 빈민가와 뉴욕 파이브포인트 등 슬럼을 찾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인 1980년대 백인들이 ‘흑인의 삶’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슬럼투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인종분리정책을 관찰하고 싶었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합세했죠.

1885년 뉴욕의 부유층들이 파이브포인츠 슬럼을 구경하는 모습 /출처: The Library of Congress

1885년 뉴욕의 부유층들이 파이브포인츠 슬럼을 구경하는 모습 /출처: The Library of Congress

전 세계 유명 슬럼이 관광객들을 끌어당기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거센 논란을 빚고 있는 중입니다. 슬럼투어는 제3세계의 빈곤문제를 환기시키고 실제로 슬럼 주민들에게 도움도 됩니다. 다라비의 슬럼투어 여행사인 ‘리얼리티 투어’는 수익의 80%를 다라비 마을을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합니다.

하지만 슬럼투어는 필연적으로 슬럼 주민들을 대상화해 전시물로 만듭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까지도 상품화하는 여행업계의 상술이라는 비판도 거세죠. 케냐 나이로비의 슬럼 키베라에서 성장한 케네디 오데데는 뉴욕타임스 칼럼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처음 슬럼투어 관광객들을 목격했을 때 나는 16살이었고 집 밖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틀이나 굶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엇인가 갈망하며 그들을 지켜봤다. 갑자기 한 백인 여자가 내 사진을 찍었다. 나는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관광객은 떠나버렸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분명 있겠지만 그게 슬럼투어는 아니다.”

한 인도 여행사의 뭄바이 다라비 슬럼투어 광고

한 인도 여행사의 뭄바이 다라비 슬럼투어 광고

인도의 건축가 지타 베르마는 “슬럼화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부의 끄트머리라도 붙잡으려는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그 열망의 집합체가 슬럼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전 세계의 메가시티는 이미 도시의 일부가 돼버린 슬럼과 어떻게 공존해 나가야 할까요. 슬럼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아마도 21세기 도시들이 받아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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